"과학과 기술은 하나다"

입력 2008. 1. 10. 19:28 수정 2008. 1. 1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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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희정기자][KAIST 서남표 총장의 과기부 폐지 반대론]

과학기술부 폐지 및 조직개편안에 대해 KAIST 서남표 총장이 10일 오후 장문의 발표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원고지 27매에 달하는 분량도 눈에 띄지만 영문 타이핑이 더 익숙한 서 총장이 직접 영문으로 작성한 후 다시 국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차분하지만 논리정연한 발표문이 과학기술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서 총장은 과학과 기술을 분리한 일본의 사례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미국의 신산업 조성이 활발한 이유를 예로 들며 과학기술부 폐지 반대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다음은 서 총장의 발표 전문.

서언

한국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이끄는 새 정부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 지지자들은 한국의 기업들이 재원을 투자하기 시작할 수 있도록 시장경제원칙에 우호적인 정부정책을 수립할 경우에는, 단기적,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요 선진 경제 성장의 동력은 대부분 견고한 과학과 기술 인프라(Infrastructure for Science and Technology, S&T)로부터 얻어집니다. 최근 한국의 경제 발전사를 볼 때, 이와 같은 과학과 기술 인프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며, 고임금 일자리들을 창출합니다.

과거 30여 년 동안, 한국은 과학기술부 (MOST)의 도움 아래 과학의 발전과 기술 혁신을 이루기 위한 튼튼한 기반을 다져 놓았고, 이것이 눈부신 산업 및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성공담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이를 도입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 또한 과학기술부를 설립했고, 홍콩, 일본, 사우디아라비아는 KAIST와 유사한 교육연구기관을 설립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좀 더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해 정부조직을 개편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정부 조직의 개편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새 정부 조직을 마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할 수 있으나, 주요 선진국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 인프라 구축을 강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학과 기술이 분리될 수 있는 관계인가?

21세기 지식산업 시대에는 과학과 기술은 한 몸입니다. 과학과 기술 사이에 명확한 경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분리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예로 집적 회로 (Integrated Circuit, IC)의 개발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발자의 창의력, 호기심, 상상력, 관련 분야에 대한 통찰력 등이 있어야 됩니다. IC는 기술 제품으로 분류되지만, 새로운 IC의 개발자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IC에 관련된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현재의 반도체 기술이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에, 보다 더 깊은 과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만이 개발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인간 게놈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 지식뿐만 아니라 고성능첨단실험장비들과 같은 기술적 요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MIT, IBM 연구소, JPL (Jet Propulsion Laboratory) 등과 같은 과학과 기술을 동시에 연구하는 기관들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기술들은 이미 완숙기에 접어들어, 산업체가 새롭게 기초 연구 및 개발을 수행할 필요가 없이 기술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대부분 기존의 기술들을 변화시켜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이를 더 잘 활용하기 위해 산업체의 개발 연구 과제 대상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국립연구소에서는 이와 같은 연구과제들을 수행하여 산업체와 경쟁을 해서는 안 되며, 산업체가 장래에 필요로 하는 미래 첨단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야만 합니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과학이 진전되고 기술이 보다 더 심화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는 과학과 기술의 다양한 분야들의 경계에서 융합되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한 가지 분야만을 다루는 고도로 획일적인 연구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 이상 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학제 간 (Interdisciplinary)의 전문가 집단이 모여 있는 기관에서 조차, 만일 연구자들 스스로가 서로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연구를 계속할 경우에는 개혁적인 연구문화가 새롭게 탄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는, 새로운 산업, 과학, 제품들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는 매우 힘듭니다.

미국은 왜 새로운 산업을 잘 만들어 내는가?

선진국들 가운데에서 미국 만큼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과학기술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나라도 없습니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 선진국 경제로 도약해 나가고자 하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경험이 시사해 주는 바가 클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에 생겨난 제도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미국 정부는 전쟁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여 전쟁에 사용될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연구중심대학들을 동원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MIT의 교수이자 학장이었던 과학기술연구개발국 (the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OSRD)의 수장이었던 밴너바 부시박사 (Dr. Vannevar Bush)가 주도하였습니다. 과학기술연구개발국의 노력은 많은 새로운 기술들의 개발로 이어져,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연합군의 승리가 분명해지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부시박사에게 보낸 1944년 11월 17일 자 편지에서, 미국을 위한 새로운 전후 과학기술 개발 및 연구 정책을 수립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전쟁 중에 만들어진 연구중심대학의 과학기술인프라를 전후에도 계속 유지시켜 미국이 지속적으로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구상한 이러한 새로운 과학기술정책은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과학 기술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과학 기술을 통해 전후 경제를 강화시키는 데, 대학들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책을 입안 중이던 부시박사는, 1945년 7월 루즈벨트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에 오른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과학: 그 끝없는 프런티어 (Science: the Endless Frontier)"라는 제하의 제안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로서 국내의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재단의 역할을 통합한 것과 같은 미국립과학재단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이 미국에서 설립되었습니다. 미국립과학재단의 총재는 미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하며, 6년 임기제입니다. 미 정부 내에 과학기술관련 부서는 많지만, 직제 상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기관은 미국립과학재단 뿐입니다. 미국립과학재단의 산하에는 모든 회원을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과학기술자문단 (Science Board)이 있습니다.

과거 57년 간 미국립과학재단은 과학과 공학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은 물론, 유능한 과학자와 공학자를 배출하고 국방을 수호하는 한편, 미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과학과 기술 발전 및 혁신, 인재 교육 분야 등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과학기술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고등교육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어서, 미국립과학재단이 수행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성공의 정도는 각기 다르지만, 다른 국가들도 이 시스템을 나름대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미국립과학재단은 MIT, 스탠포드 (Stanford), 캘리포니아 대학 (University of California) 등과 같은 우수한 연구중심대학들을 배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들 대학들은 기초 과학 및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로부터 강력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 왔습니다. 결과로 이들 대학들은 미국 경제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산업체의 지도자들을 탄생시켰습니다. MIT 졸업생들이 설립한 회사들은 많은 국가들의 GDP 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렸습니다. 또한 두 명의 젊은 스탠포드 학생들이 설립한 구글사 (Google, Inc.)의 주가 총액은 현재 2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따라서 한국은 이와 같은 미국의 예를 거울삼아, 기초분야의 연구와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산업기반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중심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과학기술정책 수립을 위한 시사점

새로운 이명박 정부는 과학의 발전과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중심대학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새로운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부의 조직을 개편하여, 한국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미래지향적으로 주도하고, 연구개발 인프라를 향상시키기 위한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만 합니다. 한국은 많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과학 기술 인프라 구축에 성공하였습니다.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 우수한 졸업생들을 배출하는 훌륭한 과학 고등학교들을 만들었고, 세계적인 수준의 이공계대학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그 가운데 일부 국가들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은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자 경쟁력 우위를 제공해 주었던 이 제도를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야만 합니다.

일본처럼 한국도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를 통합해야 한다는 안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이러한 통합은 매우 잘 검토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일본의 과학기술정책이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이 일본식 모델을 따른다면, 한국이 그로 인해 겪어야 할 폐해는 일본이 경험한 것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정부 부처의 수를 줄이는 것이 새 정부가 추구하는 주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목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한국 경제를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꺼번에 정부의 모든 목표를 만족시키는 정부조직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한국은 일반교육제도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공적인 과학과 기술 인프라 (Infrastructure for Science & Technology)의 기반을 무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지금은 과학기술부의 기능을 강화해야 할 때입니다. 교육인적자원부와의 통합은 새 정부의 목표 달성을 더욱 어렵게 할 것입니다.

결언

1. 새로운 산업의 창출과 기존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경제의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은 과학과 기술의 인프라를 더욱 더 강화해야 하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연구중심대학을 필요로 합니다.

2. 과학과 기술 분야의 연구 개발을 주도하고 과학중심의 교육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을 동시에 진작시키는 독립적인 정부 기관이 필요합니다.

3. 21세기에서는 과학과 기술은 한 몸으로 발전할 것이며, 절대로 둘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를 분리하고자 하면 할수록, 이로 인한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과학기술부 기능을 둘로 쪼개어 과학과 기술을 분리하고자 하는 현재의 제안은 결코 좋은 안이 아닙니다.

4. 마지막으로 우리는 인수위원회에서 제기되는 많은 아이디어에 지지를 보내는 바입니다.

김희정기자 donts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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