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밀항선에서 드러난 추악한 욕망의 민낯들

입력 2014. 8. 7. 19:20 수정 2014. 8. 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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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화'랑'] 영화

'코리안드림' 꿈꾼 25명 스러져간2001년 태창호 실화 바탕 '해무'인간성 상실 과정 적나라한 묘사문성근 김윤석 등 출연진 연기 탄탄

2001년 10월1일. 중국동포와 한족 등 60명이 중국 저장성 닝보항에서 100t급 목선에 몸을 실었다. 출발 5일만인 6일 새벽 1시, 이들은 제주도 남서쪽 공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70t급 태창호로 갈아탔다. 태창호 선원들은 해경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기관실 옆 3평 가량의 어구보관용 간이창고에 25명, 물탱크에 35명을 각각 나누어 숨겼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25명은 하루만에 숨진채 발견됐다. 환기구는 물론 유리창도 없는 좁은 간이창고에서 질식사한 것이다. 선원들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대신 그냥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중국돈 6만5000위안(약 900만원)을 주고 밀입국선에 오른 25명의 생명은 그렇게 스러졌다.

봉준호 감독이 기획·제작하고 <살인의 추억>(2003) 각본을 쓴 심성보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해무>(13일 개봉)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태창호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앞서 2007년 극단 '연우 무대'는 <해무>라는 동명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영화 <해무>는 '태창호 사건'을 외피로 두르면서도 이 참극에 집중하기보단 그 안에 도사린 인간 욕망의 밑바닥을 파헤치면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이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전진호 선장 철주(김윤석)는 아이엠에프가 불러온 불황에 직격탄을 맞았다. 바다에선 고기가 잡히지 않고 선주는 배를 팔아버린다며 협박이다. 아내는 무능한 남편을 대놓고 무시하며 바람을 피운다. 모든 것이 바람 앞 등불인 철주에겐 이제 '전진호'가 전부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철주는 전진호를 지키기 위해 밀항사업에 뛰어든다. 전진호에는 사람 좋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충성스런 갑판장 호영(김상호), 선원인 경구(유승목)와 창욱(이희준), 그리고 선원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막내 동식(박유천)이 있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전진호 선원들은 수십명의 밀항자를 배에 싣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며 '전진호'를 중심으로 뭉친 선원들의 관계에는 파열음이 일기 시작한다.

영화는 선원들 사이에 발생하는 균열을 통해 각각이 가진 욕망이 어떻게 인간성을 상실해가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성욕에 집착하는 창욱, 돈에 눈 먼 경구, 배를 살리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철주는 망망대해 한복판, 그리고 좁은 배 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폭주한다. 영화의 제목이면서 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해무'는 바다 안개를 말한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낀 해무처럼, 철주와 창욱과 경구의 욕망은 이들의 인간성을 가려버린다. 동식만이 욕망의 노예가 되는 대신 '인간성의 마지막 자락'을 지키려 애쓰지만, 그 역시 후반부 '사랑'이라는 욕망 앞에 무너진다. 이 장면은 인간 본성의 가장 적나라한 민낯을 폭로한다.

영화는 처절하리 만큼 잔인한 장면을 거리낌 없이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인간의 욕망, 크든 작든 그것이 특정한 상황에서 분출될 때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추악하다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려는 듯 말이다. 이 무간지옥에서 피어난 동식과 홍매(한예리)의 애틋한 연정만이 그나마 숨 돌릴 여지를 준다.

출연 배우들의 호연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지금까지 이지적인 지식인 역할을 주로 해 온 문성근은 허술하지만 사람 좋은 완호로 완벽히 변신하고, 김윤석은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광기에 사로잡힌 철주에 100% 녹아든다. 김상호와 이희준, 유승목도 뒤를 받친다. 무엇보다 아이돌 출신 박유천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어색함 없는 여수 사투리, 선배들에게 끌려가지 않는 탄탄한 연기로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 신고를 한다. 하지만 무겁고 절망적인 분위기에 더해 여름 스크린 대전에서 <군도><명량><해적>에 이어 가장 늦게 개봉한다는 점은 <해무> 흥행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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