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의 추락, 올바른 역사인식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

윤지혜 2014. 10. 2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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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이 '폐지'될 위기에 봉착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타 프로그램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던 '비정상회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많은 이들이 보도되었으니 이미 알고 있을 게다. 그럼에도 간단히 읊어보자면, 17회 방송에서 제작진은 일본배우 다케다 히로미츠의 등장 장면에 '기미가요'를 배경음악으로 내보냈다. 이를 알아챈 시청자들은 일제히 문제를 제기했고 지금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된 '기미가요'란 무엇인가. 일본 천황의 영원한 통치를 기원하는 노래로, 일본의 '국가'다. 이게 뭐가 문제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실상은 그리 단순히 볼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가는 해당 국민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단결력을 높이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침략한 나라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고 식민교육을 시키기 위한 용도여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식민의식을 심기 위해 신사참배와 함께 '기미가요'를 강제로 부르게 한다. 조선뿐만이 아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에 짓밟힌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경로로 '기미가요'를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한 마디로 '기미가요'는 단순한 '국가'이기 이전에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며 '침략전쟁'의 명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기미가요'를 '국가'로 삼고 있다. 치욕스러운 것은 둘째 치고 저급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런 노래를 '비정상회담'이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이다.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이해가 가는가? 한 번에 훅 갈 작정이 아니고서야 도통 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다. 제작진이 민족적 정서를 깊이 헤아리지 못한 '실수'였다며 거듭 사과를 함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문제만 일파만파 커지는 까닭이다. 모든 '실수'가 절망적인 상황을 불러오진 않지만 때론 어떤 '실수'는 치명적인 결말을 불러오기도 한다. '비정상회담'은 바람 앞에 놓인 등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두 개의 상처를 말하자면 두말할 것 없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다. 서로를 '친일파'와 '빨갱이'로 명명하며 여전히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에 붙들려있는 정치판만 봐도 알 수 있다.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왜 욱일승천기에 분노하겠는가. 승부를 내야 할 상대가 일본이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철칙은 어디서 왔겠는가. 그리고 타쿠야는 '비정상회담'에서 왜 그토록 시종일관 예의바르고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겠는가. 즉, '비정상회담' 제작진은 타구야만큼도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비정상회담'에서 '기미가요'가 등장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이다. 첫 회에서 타쿠야의 등장에 배경음악으로 이미 사용됐었다. 당시엔 문제되지 않고 잘 넘어갔다. 우선 지금과 같은 관심을 받지 못하던 첫 회였다는 점,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기미가요'를 잘 모른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였다. 천운이었겠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이 때 바로잡지 못하니 후에 더 큰 문제가 발발하고야 만 게 아닌가. 아울러 이미 두 번이나 반복된 '실수'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괜찮겠다 싶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 몰랐던 걸까. 이래저래 다 공분을 살만 하다. 어찌 됐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물론 지식마저 없었던 게 아닌가. 심지어 일반인도 아닌,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PD와 제작진들이다. 단순한 '실수'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적어도 이런 부끄러운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테다. 그리고 비단 '비정상회담'만의 문제일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도 있다고 본다. '기미가요'가 어떤 파급을 가져올지 고려하지 못했던 제작진은 물론, '기미가요'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까지. 내실 있는 역사교육의 부재 혹은 내신형‧수능형 공부가 가져온 폐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비정상회담'의 '실수'에 분노하다가도 슬그머니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다. 일본은 잔학한 과거를 숨기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다지만 우리는 무언가.

심각한 상처일수록 제대로 치료해주어야 한다. 어쩌다 생긴 상처인지, 어떻게 치료하면 고름이 떨어지고 새 살이 돋아날지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역사를 올바른 시선으로 들여 봐야 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우린 여전히 아플 수밖에 없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제 상처를 찌른 경우가 되고 만 '비정상회담'이 되살아날 방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구사일생으로 다시 시작된다고 해도 이미 박혀버린 미운털을 떼어내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간만에 나타난 좋은 포맷이라 참 안타깝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역사에 있어서 '모르는 게 약'이란 속담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면 애꿎은 병만 불러올 뿐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 사진='비정상회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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