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앤 스토리> 한성호 대표가 FNC엔터를 성장시킨 과정과 비결

2015. 4. 2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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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한성호 FNC엔터테인먼트 대표(41)는 업계에서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FT아일랜드, 씨엔블루, 주니엘, AOA 등 K팝 가수와 그룹을 만들어내고, 영역을 확장해 이동건 이다해 박광현 윤진서 조재윤 성혁 등 배우 매니지먼트와 드라마 제작에도 뛰어들었으니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하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 한 대표가 갑자기 유명해진 계기가 있었다.

지난 2월 MBC ‘라디오스타’에 정용화, 박광현 등 소속 연예인들과 함께 출연한 한성호 대표를 가리켜 MC 김구라가 “연예계 주식부자 3위”라고 말하면서다. 보통 SM, YG, JYP가 1~3위 엔터기업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에게 FNC엔터테인먼트의 주식 시가 총액이 업계 3위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간 것 같다. 한 블로거는 “한성호 대표가 SBS ‘K팝스타’ 심사위원 자리에 앉는 날도 멀지 않았구나”라고 쓰기도 했다.

한성호 FNC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맨손으로 시작해 연예계 주식 부자 3위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도 공연으로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한 대표는 &ldquo;착한 콘텐츠를 만들고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이 되겠다&rdquo;고 말했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후 FNC가 인기검색어에도 오르고, 그렇게 큰 회사였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고, 저희 회사를 관심있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FNC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말 코스닥에 직상장했다. 엔터 기업이코스닥에 직상장한 예는 SM과 YG에 이어 3번째에 불과하다. 한대표는 2006년 FNC뮤직을 설립하고 2012년 사명을 FNC엔터테인먼트로 변경했다. 지난해 매출액이 600억7천만원으로 그 전년도 대비 21.1%가 증가했다. 10년도 안된 엔터기업의 직원이 100명을 넘겼다. 주가 상승률도 매우 좋은 편이다. 그만큼 안정된 콘텐츠를 구축하고 있다는 뜻이다. FNC엔터의 시가 총액은 최근 무상증자로 3000억원을훌쩍 넘겼다. 엔터기업은 소속 연예인들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위험성 때문에 안정적인 주가를 형성하기 어렵지만, FNC에 대해서는 그런 우려를 별로 하지 않는다. 소속 가수들이 모두 데뷔전부터 한 대표와 함께 고생하면서 성장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사장과 직원이라는 딱딱한 관계가 아니라, 방송에 나오면 서로 ‘디스’하는 모습도 보여줄 정도로 허물이 없다.

FNC엔터는 일본 시장이 위축됐지만 풍부한 라이브 공연 경험을 앃이온 씨엔블루와 FT아일랜드 등은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 중국시장에서의 공연은 대성공이다. 심지어 씨엔블루 멤버중 한 명인 정용화가 중국에서 개별공연만 해도 대박이 난다. 단시일에 FNC를 탄탄한 엔터기업으로 부상시킨 한성호 대표에게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한 대표가 살아온 길을 들여다 봤다.

▶한성호 대표는 실패한 가수였다

73년 서울 도림동에서 태어난 한성호 대표는 경성고, 명지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고교때까지는 공부를 했지만, 친구 사이에서 노래를 잘한다고 알려지면서 호기심에서 밴드를 하게 된 것이다. 명지대 밴드 ‘화이트 홀스’의 리드싱어로 순회공연도 갖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96년에는 발라드곡을 잘 만드는 작곡가 이경섭을 만나면서 가수가 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경섭이 작곡한 발라드곡 ‘투헤븐’을 부르기로 했다.

“내가 데뷔를 위해 신곡 ‘투헤븐’ 녹음을 끝낸 상태에서, 이경섭 작곡가가 조성모도 한번 녹음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묻길래 ‘쾐찮다’고 했더니 조성모가 금세 대박이 나더라. ‘투헤븐’에 신곡 2~3곡을 더 넣어 조성모를 데뷔시킨 거다. 나는 그 1년후 데뷔했지만 쪽박을 찼다.”

99년 가수로 데뷔한 한 대표는 2장의 음반이 실패한 후 보컬 디렉터와 학원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수, 그리고 작곡가로 전환했다. SG워너비, 씨야, 더넛츠, 서영은, 고(故) 박용하 등의 노래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 드라마 OST 제작자로서 제법 괜찮은 성과를 거뒀다. 남이 아닌 자신의 머리로 직접 제작하는 것에 대한 재미가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격적으로 회사를 만들어야 했다. 어떤 회사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밴드 그룹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고 했다. 한국에는 예쁘장한 아이돌 시장만 존재한다고 했다. 나는 다들 안된다고 하니 신이 났다. 아이돌 연습생은 어릴 때부터 댄스 트레이닝을 받는 반면 밴드는 각자 음악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들을 모아 악기와 팀웍을 훈련시키면 경쟁력 있는 밴드 그룹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밴드그룹과 아이돌 제작이라는 이질적 요소 접목

한 대표는 밴드그룹에 아이돌의 제작시스템을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었다. 한 대표는 “주류나 메이저에서 힙합은 시도했지만, 밴드는 아무도 안했다. 그래서 2006년 데뷔한 FT아일랜드에 이어 2010 출발한 씨엔블루로 차별화시켰다”면서 “이렇게 아이덴티티를 인정받으니 뒤늦게 시작해도 경쟁 대열에 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자신이 직접 밴드를 해봤기에 그 생리를 잘 안다. “식당 주인이 요리를 못하면 오래 못한다”는 게 한 대표의 지론이다. 많은 한류 가수들 중에서 FNC엔터 소속 팀은 밴드라는 다름을 가지고 있다.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도 멤버와 음악이 차별화돼있다. 씨엔블루는 모던하고 댄디해 깔끔한 음악을 한다. 싱어인 정용화는 댄디한 수트를 입고 기타를 치며 리드미컬한 ‘외톨이야’를 부르면 잘 어울린다. FT아일랜드는 강하고 멜로디도 파워풀하다. 이홍기가 무대를 휘젖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데뷔를 앞둔 신예 밴드 엔플라잉의 색깔은 또 다르다. 걸그룹 AOA는 밴드와 댄스를 모두 소화한다.

FNC엔터가 일본 시장에서 타격을 가장 적게 받는 이유는 일본에는 밴드 음악 시장이 존재하고, 라이브의 완성도가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밴드음악의 속성과 수용자의 취향을 잘 아는 한성호 대표가 씨엔블루를 일본에 진출시킬 때 길거리 공연부터 시작해 큰 규모의 공연장까지 두루 거쳤기 때문에 탄탄한 마니아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 한류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도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이유다.

“지금은 중국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모든 엔터기업들이 중국에 연착륙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는 중국 공연 수익이 많다. 지금은 출발선상이지만 조금 지나면 양상이 많이 바뀔 거라고 예상하고 대비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FNC엔터 소속 그룹 멤버들은 개별활동에도 거의 성공했다. 씨엔블루 멤버는 전원이 연기에 연착륙했다. 팀 활동과 유닛 활동, 개인 활동이 모두 활성화돼 있다. 한 대표는 “미국도 원래 엘비스 프레슬리 등 노래와 연기의 겸업이 많다. 우리도 조용필, 전영록 선배들의 케이스가 있다. 씨엔블루 등 우리 회사 소속 가수들도 스타성이 있는 친구니까 드라마에도 도전한다. 처음부터 연기도 가르친다.”

한성호 FNC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맨손으로 시작해 연예계 주식 부자 3위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도 공연으로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한 대표는 &ldquo;착한 콘텐츠를 만들고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이 되겠다&rdquo;고 말했다

▶내가 쉽게 자수성가했다고?

이렇게만 보면 FNC엔터와 한성호 대표가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 대표는 “자꾸 업계에서 우리 회사와 저를 가리켜 ‘혜성처럼’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운석으로 이 바닥에 계속 있었다. 사실 꽤 오랜 기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너무 힘든 시절이 있었다. 혼자 북한산을 갔다. 숨이 차 중턱에 앉아 있는데, 나이든 한 등산객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지금도 머리에 남아있다. 힘들지만 산을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포기하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빨리 올라가느냐, 늦게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페이스를 잘 조절해 정상까지 올라가는 거다. 인생은 산을 타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었다.”

한 대표는 “인생은 모르는 거다. 가봐야 안다”면서 초년 성공운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긴 무명 시절을 거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성과에 대한 감사할 줄 안다. 샴페인을 터뜨리기 보다는 그 일에 대한 중요성과 절박함을 인식한다.

“지나고 나서 와이프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금 9살인 아들을 낳고 키울 때 2벌의 옷으로 2년을 지냈다고 했다. 회사를 꾸려나가느라 저작권 등을 모두 회사에 집어넣고 집으로 가져가는 건 없었다. 나 몰래 처가에서 돈을 받아 생활했다. 속으로는 힘들었지만 내색 않고 묵묵히 참아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10년전 결혼 할때 통장에 50만원이 전재산이었던 한성호 대표는 이제 남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위치에 와있다. 이쯤에서 기자는 “당시 가수로 망하길 잘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무명가수의 경험이 있어, 힘든 작곡가 시절이 있었다는 게, 저한테 큰 힘이 된다. 가수로 유명해졌다면 이걸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고, 절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무 숨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일본 진출과 아카데미 사업 등을 하며 무리도 했다. 이제 정상화됐고, 그때 뿌린 씨앗들이 좋은 여건이 된다. 지금까지는 발전을 위한 발전을 했다면 앞으로는 안정 추구속의 발전을 하겠다.”

한 대표는 사내에서 음반 프로듀서를 겸하기 때문에 가수와 스태프와 직접 부딪쳐야 한다. 그래서 엄하게 굴지 않고 격식을 차리지 않으며 서로 대화를 통해 거리감을 좁힌다.

그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기 위해 ‘엉뚱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수위만 넘지 않으면 방송에서 직원과 ‘디스’도 가능한CEO다.

“예전에는 선진국 음악이 있었다, 이를 5~10년후 우리가 따라갔다. 지금은 동시에 간다, 라이프 스타일이 선진화, 문화를 소비하는 패턴도 같이 간다. 힙합과 랩의 주류화는 훨씬 빨리 진행됐다. 지금은 초등학생이 스냅백을 쓰고 랩을 흥얼거린다.”

한 대표는 “요즘은 언론이 정해놓은 답을 대중이 믿지 않는 시대다. 이런 걸 잘 읽어야 한다. 음악 트렌드 변화, 홍보 마케팅 툴 변화는 함께 물려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음반 프로듀싱과 공연 기획, 매니지먼트, 아카데미, 드라마 제작까지 아우르는 종합 엔터사를 만들어나가는 그의 내공이 느껴졌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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