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심야식당' 디테일이 관건이다

고경석 2015. 7. 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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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심야식당'에 나오는 식당은 깔끔하고 팬시하다. SBS 제공

일본 인기 만화 '심야식당'을 한국식으로 각색한 동명 드라마가 5일 0시 10분 첫 방송을 내보냈다. 드라마 '연애의 기초' '궁' 등으로 유명한 황인뢰 PD가 연출을 맡고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으로 유명한 최대웅 작가, KBS '개그콘서트'의 홍윤희 작가가 극본을 썼다. 호화로운 제작진인데 시작부터 반응이 썩 냉랭하다.

이날 방송한 1, 2부 시청률은 각각 3,8%, 3.3%(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로 같은 시간대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SNS에 올라오는 시청 소감은 혹평 일색이다. 악평을 들을 만큼 망작도 아닌데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지는 건 왜일까.

'심야식당'은 애초부터 비교 대상이 있어서 후한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이 아니다. 원작을 좋아하는 시청자라면 매의 눈으로 이 드라마를 보게 마련이다. '심야식당'에 아쉬움을 표하는 글이 많은 건 원작 만화나 이를 극화한 일본 드라마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요리를 한국식으로 만든다고 했지만 겉만 그럴싸할 뿐 원래의 맛을 살리지도, 한국적인 맛을 가미하지도 못한 꼴이다.

'심야식당'은 방영 전부터 원작 팬들의 미움을 샀다. 식당의 단골 손님인 게이 마담 고스즈 캐릭터를 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고스즈는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작은 심야식당을 찾아 뒤늦게 배를 채워야 하는 서민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손님의 인생을 평가하지도 간섭하지도 않고 묵묵히 듣기만 하는 주인공 대신 오지랖으로 다른 손님들의 대화에 끼어든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제작진은 "(성소수자를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 과감히 빼버렸다"고 말했는데 이는 "우리 드라마는 원작이 갖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과감히 빼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린다.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된 '심야식당'의 한 장면. 뒷 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고스즈다. 영화사 진진 제공

각색에 있어서 원작의 특정 요소를 바꾸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중 핵심적인 것을 과감히 지우려 했다면 그에 준하는 요소를 대신 채워 넣었어야 했다. 1, 2부에선 아직 고스즈를 대신할 만한 캐릭터가 보이지 않았다. 1, 2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아르바이트 학생 민우(남태현), 마음씨 따뜻한 건달 류씨(최재성), 아버지의 음주 폭력에 시달리는 쇼핑몰 모델 겸 배우 지망생 유정(차두리), 왕년의 청춘스타 정은수(심혜진)의 이야기도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건달 류씨가 민우를 돕는 과정도 필연적 이유가 없어 관습적이고 작위적인 인상을 풍겼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음식에 등장인물의 인생 스토리를 전혀 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SNS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식당의 풍경이다. 한국판 '심야식당'의 내부는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식당처럼 깔끔하고 팬시한 느낌을 준다. 세월과 음식의 때가 별로 묻어 있지 않은 이 식당 한 켠에는 신품 가격이 도합 400만원에 달하는 스피커 세트(쿠르베 아톰 MK2)와 인티 앰프(에이프릴뮤직 오라노트 V2)가 인테리어 소품처럼 비치돼 있다. 주인공인 심야식당 주인 '마스터'가 굉장한 오디오 마니아라는 설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가 음악을 트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수백만원짜리 오디오를 장식용으로 쓸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면 주인공은 취미로 남들 자는 시간에 식당을 운영하는 것일까. '심야식당'의 멋은 허름하고 누추하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에 있는데 제작진은 멋을 잘못 부린 듯하다.

드라마 '심야식당'의 한 켠에 놓인 고급 오디오.

주인공을 '마스터'로 부르는 원작의 호칭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거슬린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식당 주인을 종업원이나 손님이 마스터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선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다. '주인장'이나 '사장님' 그것도 아니라면 '셰프'가 훨씬 거부감이 덜하다. 나무창살이 고풍스런 미닫이 문과 마스터를 3면으로 감싸는 수납장 겸 식탁, 양쪽 허리춤에 손을 대고 서 있는 주인공의 포즈 등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모자라 '마스터'라는 호칭까지 그대로 쓰다 보니 일본 색채가 과한 인상을 준다. 일각에서는 5년 전 '심야식당'을 모티프로 제작한 모 약품 광고(배우 김갑수 출연) 속 식당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SNS 글도 있었다.

배우 김갑수가 출연한 모 제약회사 광고.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모티프로 제작했다.

기왕 '쿡방'(요리하는 방송), '먹방'(먹는 방송)의 열풍에 편승한 이상 요리에 과감한 투자를 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실제로 맛있는 음식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더 중요하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선 영화 '카모메 식당' '남극의 세프'에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한 이이지마 나미가 요리 연출을 맡았다. 한국판 '심야식당'에는 tvN '식샤를 합시다'로 호평 받은 고영옥 스타일리스트가 참여했지만 제작진과 아직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스타 셰프 백종원이 출연하는 방송이 끝나면 해당 요리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것과 달리 '심야식당'의 가래떡 구이와 메밀전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멋도 맛도 챙기지 못한 것이다. "야식 생각이 뚝 떨어졌다"는 한 SNS 사용자의 글은 이 드라마가 들을 수 있는 최악의 평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서양 속담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매우 작은 부분이 문제를 일으켜 큰 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맛이든 멋이든 사소한 것 하나만 그르쳐도 망가지게 된다. 제작진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mailto: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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