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기획] '필수요소' 예능 자막, '감초와 독'의 경계선

장우영 2015. 9. 20. 07: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서울] 빠르게 가사가 지나가는 가요프로그램과 시시각각 변하는 예능프로그램 등 방송에서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자막’은 상황 변화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 다. 

자막이 국내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MBC 김영희 PD가 1994년 일본 후지TV 연수 후 ‘TV파크’에 도입하면서 시작된 예능 자막은 점점 확산되며 방송에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가 됐다. 이후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자신의 연출 철학 등을 자막에 녹여내 정점을 찍었고, 예능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방송가에 자막은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막이라는 것은 잘 쓰면 ‘감초’가 되고 잘못된 상황에 사용되면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

자막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감초’ 역할로 활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MBC ‘무한도전’과 SBS ‘자기야’, tvN ‘삼시세끼’, tvN ‘막돼먹은 영애씨’ 등이 있다.

MBC ‘무한도전’에 쓰이는 자막은 당시 사회 상황을 풍자하거나 은유적으로 표현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지난해 크게 이슈가 됐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당시 무한도전에서는 ‘차 리턴 시킬 진상연기’, ‘진상에 대처하는 매뉴얼’ 등이 자막으로 쓰였다. 또한 김연아가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 밀려 은메달에 그쳤을 때도 ‘때로는 은메달이 더 기억될 수도…’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지난해 5월에는 ‘포지티브한 눈물즙’이라는 자막이 쓰였다. 정형돈의 홍보 영상 중 단식 단행 장면에서 그를 지지하는 정준하에게 쓰였던 이 자막은 ‘6․4 지방선거’ 후보들의 언행을 묘사한 단어로, 방송 후에는 ‘눈물즙’과 ‘포지티브’ 등의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했다. 또한 티아라의 ‘왕따’ 사건으로 ‘의지’라는 단어가 화제로 떠올랐을 때는 ‘의지의 고졸명수’라는 단어로 다시 한 번 사건을 풍자했다.

무한도전에서 자막이 풍자적인 요소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라디오스타 특집’에서는 유재석의 방송 때 레이디스코드의 은비와 리세를 추모하며 ‘아임파인땡큐’라는 담백한 자막만이 들어가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했다. 다른 쓰임새로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갯벌 대결에서 멤버들의 속살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커다란 자막과 이모티콘 등을 활용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무한도전’과 함께 ‘자막의 좋은예’로 꼽히는 tvN ‘막돼먹은 영애씨(이하 영애씨)’ 역시 다양한 자막으로 시청자들에게 깨알 재미를 준다. 드라마에서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자막이 ‘영애씨’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짧고 적절하게 표현해내 눈길을 끈다.

‘영애씨’에는 여러 가지 자막이 등장하지만 대부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막으로 구성돼 본인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조덕제가 직원들이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을 두고 타박하자 이때 ‘직장인은 에피타이저로 눈칫밥을 먹습니다’라는 자막이 흘렀고, 이영애(김현숙 분)와 라미란이 해고된 이후 윤서현의 모습에서는 ‘동료 잃고 드는 생각, 다음은 내 차례인가’라는 자막이 등장해 씁쓸함을 더했다.

‘영애씨’의 자막은 작가들이 직접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애씨’의 제작진은 한 매체를 통해 “공감도를 높이기 위해 트렌드와 유행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영애씨’를 시작할 때 일상을 관찰카메라처럼 조명하는 다큐드라마로 시작했는데 이를 리얼하게 느끼고자 시간을 삽입하고, 재미를 더하고자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자막을 넣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고 전했다.

‘영애씨’와 같은 방송사에서 방송된 ‘삼시세끼’도 적절한 자막으로 시청자들이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했다. 특히 ‘삼시세끼’의 자막은 출연자들이 음식을 만들 때 레시피를 설명해주거나, 밍키와 산체 같은 동물들의 행동에 자막으로 대사를 넣어 진짜 말하는 것처럼 보여줘 화제가 됐다.

자막이 ‘감초’가 아닌 ‘독’이 된 경우도 있다. 제작진은 ‘감초’로 쓰려고 했겠지만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독’으로 다가간 사례다.

KBS2TV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는 여성 출연자들의 외모를 비하하는 자막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 팀의 영상에는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과 ‘꿈에 그리던 세상’이라는 자막이 등장했는데, 다른 한편에는 오나미, 김혜선이 등장하는 가운데 ‘공격성’, ‘테러’, ‘망했어요’란 자막이 쓰인 것. ‘비키니녀’와 ‘개그우먼’을 게임의 상벌로 나눈 것부터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지만 자막 또한 논란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이에 유호진 PD는 “자극적인 요소로 시청자들을 현혹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종 편집에서 가족 시청자들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과했다.

최근에는 MBC ‘일밤-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의 자막과 출연진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1박2일’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여성 출연자들의 남성에 대한 가감없는 발언과 자막이 하나가 돼 시청자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당시 방송 중 밥을 먹던 김현숙은 “남자 상사들이 멋있다. 특히 제식하던 소대장님 섹시했다”며 “엉덩이가 화나 있다. 태도까지 섹시하다. 그런 남자가 나중에는 자상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사유리는 “엉덩이가 올라가 있었다”고 말했고, 전미라 역시 “몸이 너무 멋지셨다. 키도 크시고…”라며 멤버들의 말을 거들었다. 특히 화면에서는 소대장의 뒷모습을 잡아줬고, 엉덩이에 불이 난 그래픽은 물론 ‘화난 엉덩이’라는 자막이 곁들여졌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 상황이 반대였다면 어땠을 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라면서 제작진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앞서 ‘진짜사나이’는 선정성 논란으로 한 차례 물의를 빚은 바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분노는 더 거셌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방송에 나갈 줄 모르고 한 사담인데, 제작진이 방송에 편집까지 해서 내보낸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해당 부분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신 시청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자막'의 범람과 그에 따른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7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올바른 방송언어 사용을 통한 방송문화 개선을 위한 ‘방송언어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한 방송관계자는 "‘자막’은 음식에 결정적인 맛을 더하는 양념처럼 방송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재미를 더하는 순기능도 하지만 재미만 추구하다보면 지나치게 자극적, 선정적으로 흐를 수 있어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미디어팀 장우영기자elnino8919@sportsseoul.com

사진=방송화면 캡처

Copyright © 스포츠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