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피디수첩 제작진 '국정원 다큐'로 권력 조준
[한겨레] 최승호 해직피디·정재홍 전 작가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공개 앞둬
국정원 간첩조작 실태 파헤치며
김기춘·원세훈 등 찾아가 질문도
문화방송에서 해직된 <피디수첩> 전 제작진이 국정원을 정조준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최승호 문화방송 해직 피디가 연출하고 정재홍 전 <피디수첩>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자백>이다. 국정원에서 그동안 저질러온 간첩조작 실태를 파헤친다.
2011년 12월13일 탈북자 조사기관인 경기도 시흥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한 남자가 사망했다. 국정원은 ‘탈북자 한아무개씨가 합신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중 간첩이라고 자백한 뒤 샤워실에서 운동복 끈으로 목을 매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는 정말 간첩이었을까? 한 공설묘지에 묘비도 없이 묻힌 탈북자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자백>은 마침내 그의 진짜 이름과 행적을 알아내곤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간첩 누명을 쓰게 된 사람은 한씨만이 아니다. 국정원은 2013년 1월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혐의로 체포했지만, 법원은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유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합신센터에서 6개월 동안 고문을 당한 끝에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우성씨의 출입국 기록까지 조작하며 증거를 만들어냈다.
유우성씨 재판이 진행되던 무렵 국정원은 새로운 간첩 사건을 발표했다. 탈북 브로커 납치를 시도하며 국내외에서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홍강철씨도 결국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체 왜 그들은 무리하게 간첩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유학생으로 간첩누명을 썼던 한 재일 한국인은 찾아온 영화 제작진에게 수십년 만에 한국말로 입을 떼어 “이것이 박정희의 정치고 중앙정보부의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간첩 조작 사건은 수십년이 지나야 진실이 밝혀진 탓에 책임져야 할 가해자들은 당시 그 자리에 없기 일쑤였다. 영화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낸 김기춘씨, 유우성을 간첩으로 조작할 당시 국정원장을 지낸 원세훈씨 등을 만나 간첩을 조작한 경위를 묻는다. 국정원 직원들의 차를 직접 막아서며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최승호 감독은 “여러 증거를 모아 왜 조작했는지를 물었지만 국정원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답했다. 국정원이 해온 고문과 조작의 역사를 취재하다 보니 그들이 본질적으로 조금도 바뀌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감독이 이야기하는 ‘본질’은 “간첩에서 테러리스트로 사회의 공적을 만들어내고 공포를 통해 사회를 관리하려는 의도”를 말한다. 퍼즐을 맞추듯 각각의 조작 사건들을 모아 큰 그림을 그려낸 정재홍 작가는 “국정원은 우선 고문으로 자백을 받고 계속 허위 증거를 만들어내는 일을 반복하는데, 영화는 그 조작을 계속 부수어내며 극영화보다 더 드라마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피디수첩> 시절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 등을 함께 만들었던 두 사람은 탐사보도의 간판 피디이며 작가였다. <트루맛쇼> <쿠오바디스> 등을 만들었던 문화방송 시사교양국 피디 출신 김재환 감독이 제작 총괄을 맡았다. ‘간첩 조작 사건’이란 주제로 그들이 다시 만난 이유는 분명하다. 최승호 감독은 “국정원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어야 평범한 시민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재홍 작가는 “이 법이 없을 때도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좌우했던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으로 무한 권력을 갖게 됐다. 이 시점에서 나온 영화가 국정원이라는 폭주 기관차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백>은 코리아 시네마 스케이프 섹션에 초청받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될 예정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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