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라 고맙다, 젝스키스라 다행이다

하성태 2016. 4. 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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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무한도전> 이 젝스키스를 다루는 방식

[오마이뉴스 글:하성태, 편집:유지영]

 젝스키스 시절 은지원이 팬들에게 쓴 편지
ⓒ 인터넷 갈무리
"하지만 너희들을 내 개인적으로 못 만나 주는 걸, 정말 너희들이 날 좋아한다면 날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난 때론, 우리 엄마도 아시겠지만, 너희들 생각에 잠을 못 이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너희들이 너무 걱정돼서…. 춥지나 않을까, 혹은 배라고 고프면 어쩌지? 또 잠은 어디서 잘까? 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오질 않아…. 그러니깐 나를 좀 이해해주고 용서해줘!"

편지 끝부분 "그럼, 사랑한다"는 문장에 애정이 담뿍 담겼다. 23일 MBC <무한도전> 방영 직후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젝스키스 시절 은지원이 팬들에게 쓴 편지다. 은지원은 이 편지를 대량 복사해 집 앞에서 기다리는 소녀 팬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20세기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무한도전> '토토가2 젝스키스' 편(아래 <토토가2>)에 젝스키스가 출연하면서, 그 시절 <응답하라 1997>에 소개됐을 법한 에피소드들이 속속 회자되는 중이다. 젝스키스의 은퇴 소식에 분노한 팬들이 소속사 사장의 차로 오인해 방송인 조영구의 차를 처절하게 부숴버렸다거나 라이벌이었던 H.O.T.의 팬들이 오히려 제일 먼저 젝스키스의 팬들을 위로했다거나 하는.

그렇게 필히 '추억의 소환'과 '추억 팔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프로그램의 내재된 특성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은 여전히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게릴라콘서트 무산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기회로 만드는 영민함마저 보여줬다. 3부로 기획된 <토토가2>의 징검다리 역할로 부족함이 없을 만큼. 

'추억 소환'과 '추억 팔이' 사이의 균형감 

 MBC <무한도전> '토토가2 젝스키스'의 한 장면
ⓒ MBC
이날 방송을 본 시청자 중 일부는 원래 게릴라콘서트의 정보를 유출한 것이 김태호 PD와 제작진이 아니냐는 애정 어린 의혹을 보냈다. 그만큼 게릴라콘서트에서 '하나 마나 행사'로 콘셉트를 대체하는 과정이 꽤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리라.

일반 직장인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멤버 고지용의 섭외 과정도 예상보다 담담했다. 일각에서 고지용에게 원치 않는 방송출연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보냈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깔끔하고 '쿨'하기까지 했다. <무한도전>이라는 이제는 거대해진 방송 권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해 보였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예고를 통해 고지용이 무대에 섰음을 알렸다.

'무도' 멤버들과의 자연스러운 결합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보안을 위해 유재석이 전면에 나서고 하하만이 도왔던 준비 과정을 끝내고, 정준하나 박명수 등이 매니저란 명목으로 합류하고 상황극을 통해 진행을 보는 상황은 '콜라보레이션은 이런 것'을 제대로 자랑하는 듯 보였다.

이미 1회를 통해 젝스키스 멤버들의 다채로운 캐릭터를 잡아냈기에 고속도로 휴게소나 한국민속촌이라는 생경한 공간에서의 공연 역시 오히려 웃음 코드로 주목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한국민속촌에서 만난 젝스키스를 모르는 꼬마 관객들과 우연히 횡재하게 된 젝스키스 열렬한 팬과의 대비는 '리얼 예능'이라서 가능한 생생한 풍경이었다. 역시나 <무한도전>은 <무한도전>이었다.

<무한도전>이라 고마워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젝스키스 멤버 고지용.
ⓒ MBC
앞서 언급한대로, <토토가2>는 필히 추억을 소환해야 하는 형식이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 보라. 과거 가수들을 초대해 과한 성찬과 칭송을 늘어놓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자칫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그 시절을 거쳐 온 3040 시청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반면, 명실공히 H.O.T.와 함께 아이돌 1세대로서 지분과 지위를 획득한 젝스키스는 <토토가2>의 단독 게릴라콘서트를 개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룹이다. 예고를 통해 전해진 노란 풍선 가득한 월드컵 경기장 무대가 감동을 전해주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 노란색 물결은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김태호 PD만의 '세월호 2주기 추모'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오기도 했다).

나이마저 팬들과 동시대에 가까운 '같이 늙어 가는 처지'인 아이돌의 조상이 무릎과 발목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안무에 매진하는 모습은 짠함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단순한 추억 소환에 그치지 않고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스타와 팬의 관계까지 성찰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다음 타자로 H.O.T. 완전체가 거론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태호 PD는 이날 BGM으로 지난 21일(현지시각) 갑자기 세상을 떠난 명가수 프린스의 '퍼플 레인'을 삽입했다. 아마도 안타깝게 떠난 8090 스타에 대한 <무한도전>만의 추도 방식이었으리라. '무한도전이라 고맙다' 이렇게 세심하고 이렇게 따스한 시선을 견지하는 프로그램이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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