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을 모르는 아이돌, 그래서 어쩌라고?

이희동 2016. 5. 1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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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AOA 설현과 지민에게 가해진 화살.. 우리의 탓도 있다

[오마이뉴스 글:이희동, 편집:손화신]

 AOA의 지민이 안중근 의사 사진 앞에서 "이 분 누구셔?"라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 온스타일
지난 12일 걸그룹 AOA의 멤버 설현과 지민이 역사퀴즈 논란에 대한 사과문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내용인즉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가벼운 태도로 방송에 임해 많은 분께 부적절한 모습을 보였다", 고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사에 대해 진중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점에 많은 것을 깨닫고 반성하며 장난스러운 자세로 많은 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점 사과드린다"는 것이었다.

설현과 지민은 지난 3일 방송한 케이블채널 온스타일 <채널 AOA>에서 위인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히는 역사 퀴즈를 풀었다. 그 중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답하면서 많은 누리꾼의 공분을 샀다.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나

인터넷에 삽시간으로 퍼진 그들의 사과문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느낌은 씁쓸함이었다. 그들이야 가장 잘 나가는 아이돌로서 계속해서 퍼지는 파장을 막기 위해 어쨌든 사과문을 발표했을 것이다. 뒤이어 관련 방송사 역시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건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특수한 일이었을까? 그 나이 또래의 다른 이들이었다면 방송에 나왔던 위인들을 모두 알아봤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또래 젊은이들의 역사 지식은 그 윗세대가 기대하는 것에 한참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 설현의 반성문 구구절절하다
ⓒ 이희동
그래서 한심하다고? 천만에. 이는 결코 그들의 탓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있는 사회 전체의 잘못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역사는 더 이상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도 아니며,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도 아니다. 모든 배움이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재 시스템 속에서 역사는 대학입시에 큰 도움을 주지도 않으면서 외울 거리 많은 골치 아픈 과목일 뿐이다. 그러니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시간에 아이들은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 집중할 수밖에.

게다가 그들은 아이돌이다. 오로지 연예계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일정 부분을 희생당했을 연습생 출신들이다. 그들은 노래와 춤 연습 때문에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만큼 역사적 지식도 얕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가, 왜 이제 와서 그들에게 역사적 지식을 요구하는가. 나의 아이가 아이돌로, 체육스타로 성공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교육 과정을 포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건 누구였던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며, 그렇게 해서 성공한 그들을 동경해왔던 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 아니던가.

따라서 우리 모두는 이번 사건의 공범이다. 우리는 그들의 역사적 무지를 탓할 자격이 없다. 사회 시스템을 위와 같이 만들어 놓고서 요즘 아이들이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며 혀를 끌끌 차는 이들은 소위 '꼰대'일 뿐이다. 요컨대 그들의 역사적 무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과거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는 이 사회가 겪고 있는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역사 퀴즈의 위험성

이번 사건이 불편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 문제가 야기됐던 예능프로그램들의 역사 퀴즈 코너 때문이다.

사실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퀴즈 형식의 코너가 유난히 많은 것은 그들의 지식이 사회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보다 낮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나보다 잘난 연예인들이 나보다 무식한 걸 보며 기꺼워하며, 그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황당해 하는 동시에 즐거워한다. 어쨌든 현실에서의 역학관계가 잠시나마 일그러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매커니즘에 맞춰, 연예계에는 수많은 '바보' 캐릭터들이 있는데, KBS2 <1박 2일>에 가장 오래 출연하고 있는 김종민이나 MBC <무한도전>의 정준하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항상 퀴즈문제에 이상한 답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준다. 간혹 사람들은 그들이 바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들의 바보 이미지를 소비하고 만다. 그것이 마음 편하고 더 즐겁기 때문이다.

▲ KBS <1박2일>의 김종민 오히려 역사퀴즈로 반전의 묘미를 준다
ⓒ KBS
문제는 그와 같은 퀴즈에 역사가 등장했을 때다. 역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있고 문제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종종 퀴즈의 소재로 이용된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역사를 파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마치 역사를 잘 아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 설현, 지민 사건을 보자. 만약 그들이 안중근을 맞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누리꾼들은 그들을 '개념돌', '역사돌'이라 칭하며 또 다른 의미의 실시간 검색어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그들이 안중근 얼굴을 알아본다 한들 그것이 안중근을 아는 것인가? 안중근이 구한말에 어떤 생각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으며,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도 모르면서 안중근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많은 이들이 안중근을 제대로 기억한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흘러갈 수 있을까?

예능의 '역사 퀴즈' 암기 위주 교육 부추길 수 있어

따라서 현재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역사 퀴즈는 위험하다. 그것은 현재 교육시스템에서 역사를 대하는 방식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역사를 암기 중심으로 재편하고 파편적으로 기억하게끔 한다. 한낱 연도와 인물을 외우는 것이 역사의 전부를 아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김좌진 장군의 손녀가 그것만으로 후광을 받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가 그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밖에.

역사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연도와 인물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맥락화하여 그 역사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말 그대로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왜 안중근이 일본에서 자주 언급되는지, 왜 지금 우리 사회가 아직도 친일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설현과 지민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현재 당신들이 겪고 있는 곤란은 결코 당신들의 탓이 아니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일 뿐이라고. 그들에게 돌을 던질 시간이 있다면, 국정교과서의 오류나 들여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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