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걸그룹, 中서 '짝퉁' 주의보

김은구 2016. 6. 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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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 EXID. EXID의 인기가 중국에서 폭등하면서 EXID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커버’해 행사 무대 등을 가로채는 커버댄스팀들이 늘고 있다.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 기자] 한 기업체의 중국 주재원으로 베이징에서 근무 중인 C씨(42)는 최근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한 파티를 찾았다. 당시 클럽에는 EXID의 ‘위아래’ 음악이 나오면서 무대에 5명의 여성이 올라와 공연을 했다. 라이브인 것처럼 노래를 부르며 퍼포먼스도 비슷해 실제 EXID가 온 줄 알았다. 중국인 동료들 앞에서 어깨가 으쓱해지려는 찰나 TV에서 보던 것과 달리 퍼포먼스의 동작 하나하나가 지나칠 정도로 선정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자세히 보니 EXID는 아니었다. 분명 한국인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클럽에 가끔 다니는 중국인 동료의 말로는 인근 몇개 클럽들에서 EXID 노래로 자주 무대를 선보이는 팀이라고 했다.

K팝 걸그룹들의 중국 활동에 ‘짝퉁’ 주의보가 내려졌다.

흔히 ‘짝퉁 천국’이라 불리는 중국에서 한국 인기 걸그룹들의 퍼포먼스를 따라하는 일명 ‘커버댄스팀’들이 활동무대를 넓혀가면서 ‘진짜’인 걸그룹들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그것도 중국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로 구성된 ‘짝퉁’이다. 걸그룹과 한국산 ‘짝퉁’팀들이 중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1일 가요계에 따르면 커버댄스팀들은 중국 내 행사, 공연 등에서 저렴한 개런티를 앞세워 걸그룹들의 무대를 빼앗아가고 있다. ‘위아래’, ‘아예’ 등으로 중국에서도 인기를 높이고 있는 EXID와 ‘이리로’를 부른 배드키즈가 최대 피해자로 꼽힌다. 이들의 노래들을 자체적으로 편곡한 뒤 기존 퍼포먼스에 섹시 요소만 강조되게 수정해 무대에서 선보이는 팀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드키즈 측은 “컴백을 준비하려면 곡과 안무, 의상 콘셉트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긴 시간도 투자된다. 그렇게 완성된 콘텐츠를 커버댄스팀들은 힘 들이지 않고 강탈해 가는 격”이라고 허탈해했다.

A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얼마 전 4000만원에 소속 가수의 중국 공연행사 제의를 받았다. 스케줄 등을 체크하고 구체적인 협의를 하기 위해 연락을 했는데 이미 커버댄스팀이 가로채간 상황이었다”며 “같은 가격에 우리 곡으로 10회 공연을 약속했다고 한다”고 황당해 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동안 중국 클럽들에서 행사 섭외가 많았는데 커버댄스팀들 때문에 그 마저도 크게 줄었다”며 “클러버들은 K팝 팬이 아니라면 ‘가짜’가 와서 공연을 해도 상관이 없는 데다 비용까지 저렴하니 커버댄스팀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덕분에 진짜 걸그룹들은 방송과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라면 초청을 받기도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커버댄스팀들 중에는 한국에서 데뷔곡을 발표, 가수로 이름을 올려놓은 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 등을 통한 홍보 없이 중국에서 다른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퍼포먼스로 무대에 오르는 ‘행사 전용’으로 활동한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검색을 하면 아이돌 그룹으로 이름과 사진이 나오지만 한국에서는 대중에게 생소한 그룹들이다. 중국에서 자신들을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라고 소개하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로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 행사 무대에서 3곡을 부른다고 하면 자신들의 노래는 많아야 데뷔곡 한곡이다.

B기획사 측은 “커버댄스팀들은 심한 경우 행사 무대가 끝나고 주최측이 여는 회식에 접대를 자청한다는 말도 들린다. 접대를 자신들을 섭외하는 조건에 포함시키는 팀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중국의 행사 주최측에서야 솔깃한 제안일 수 있다. 많은 K팝 걸그룹들이 중국을 포함한 해외 진출을 위해 그 동안 쌓아올린 이미지는 한순간에 저급한 것으로 변질될 수 있는 상황이다.

걸그룹들과 소속 기획사들이 이 같은 커버댄스팀들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그나마 저작권법을 토대로 문제를 삼을 수 있지만 마찰이 일어나는 지역이 한국이 아닌 중국이라는 게 문제다. 중국에서는 불법 음원과 음반이 많은 만큼 일일이 찾아내 지적을 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측은 “나라마다 저작권 협단체들이 있지만 나라별로 저작권을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보호해주는지는 기준이 다르다. 특히 중국에서 저작권은 현재 계도기 단계로 한국 수준의 권리 인정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문제가 되는 것은 커버댄스팀들이다. 음원을 마음대로 편곡하는 것도 문제지만 걸그룹들의 퍼포먼스를 그대로 가져다 공연을 하거나 변형된 퍼포먼스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국내에서는 안무저작권을 관리하는 한국안무협회가 1년 전 설립됐지만 해외에서 이 같은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혁주 한국안무협회 이사는 “한국에서 안무의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해서 외국에서까지 그걸 강요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결국 협회가 활동 영역을 넓혀 안무의 저작권이 확립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구 (cowbo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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