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좀비세상이 낫겠다는 절망감이 <부산행>의 시작"

2016. 8. 8. 14: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천만 감독’ 연상호 인터뷰
7일 <부산행> 천만 돌파·전편격 <서울역> 18일 개봉
이념·착취구조 상징 한국사회 구성원 좀비열차 태워
“성장중심·남성중심 세대 자멸이 부산행 종착역”

연상호 감독. <한겨레TV>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7일까지 1003만7529명이 <부산행>을 봤다. 18일 <부산행>의 전편 격인 애니메이션 <서울역>도 정식 개봉한다. ‘좀비’라는 한국영화에 낯선 존재의 성공적인 데뷔와 함께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두 영화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다. 전작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연 감독은 <부산행>의 성공으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천만 돌파를 눈앞에 둔 지난 5일 연 감독을 만났다. 이제는 피투성이 열차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시간이다.(※인터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부산행>의 한 장면. 뉴 제공

■왜 부산으로 가야 했을까? 생존자와 감염자를 가득 태운 열차는 ‘부산이 감염자 초기방어에 성공했다’는 소문만을 믿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린다. 사실 부산만 유일하게 안전한 도시는 아니었다. 대전역에 내리기 직전 용석(김의성)이 화장실에서 전화 통화를 할 때 ‘어디가 안전하다고? 여수? 울진? 부산?’이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가능성 있는 도시들은 모두 바다를 끼고 있다. 연 감독은 “종착역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 영화를 기획할 때 모티브가 됐던 영화 <더 로드>(감독 존 힐코트)를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남쪽 바닷가로 가려고 한다. 부산은 보편적인 종착역이자 바다와 만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로드>에서 바다가 실은 어떤 희망도 약속하지 않는 것처럼 부산도 마찬가지다. 초기방어에 성공했다는 의미는 처음 감염된 사람들을 가차없이 죽였음을 뜻한다. 부산으로 가는 길 바리케이트에 걸쳐져 있는 타다 남은 주검들엔 인간과 좀비가 섞여 있다. 부산은 인간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이자 비인간적인 행동이 거리낌없이 저질러진 곳이기도 하다.

■승객들의 운명은 어떻게 정해졌나? <부산행> 속 열차 승객들은 자신의 행위와 무관하게 정해진 ‘운명’에 따라 종말을 맞는다. 연 감독은 세대라는 기준에 따라 이들에게 각자 운명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종말이라는 주제를 담아내는 그릇은 세대다. 이를테면 이념 시대에 속한 두 노인 할머니가 있다. 이들은 영화 초반 서로 다른 정치색을 드러낸다. 석우(공유)와 용석은 성장중심 사회를 끌어온 세대, 십대들은 이전 세대에게 착취당하는 세대라는 설정이다.” 그는 “석우는 영화 중반 이미 운명이 결정됐다. 촬영할 때 배우 공유에게 ‘부산까지 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성장중심 세대의 자멸이 부산행 영화의 결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석우와 용석이 다시 만나서 죽는 것은 필연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사회 주요구성원과 전혀 다른 세대만 살아남아야 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열차 화장실에 몰래 탄 노숙자(최규화)는 세대·계급론에서 자유로운 인물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노숙자는 시나리오를 쓴 박주석 작가가 <서울역>과의 연관성 때문에 넣었던 것 같다. 사람과 좀비 경계에 있는 존재지만 석우와 상화(마동석)가 노숙자를 받아들이면서 정체성이 생겼다. <서울역>에서 보면 노숙자들이 순결한 존재로 나오지 않는다. 고도성장을 추구했지만 튕겨져 나온 이들이 <부산행>에서 살아남는 것은 성장론의 종말에 어울리지 않는다.”

■ <부산행>과 <서울역>을 잇는 철길 늦게 개봉하지만<서울역>은 <부산행>보다 먼저 만들어진 전편이다. 그런데 두 영화의 이야기는 겹치는 점이 거의 없다. <부산행>에서 최초의 좀비를 연기한 심은경이 <서울역> 여자 주인공의 목소리 연기를 맡으면서 두 영화를 연결하는 존재로 알려졌지만, 두 캐릭터는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는데다가 물린 부위도 영화는 오른쪽 다리였지만 애니메이션에선 왼쪽 다리다. 좀비로 변하는 과정도 다르고, 청각만 발달한 <부산행>의 감염자들과 달리 <서울역> 감염자들은 문도 열 수 있고 공격대상을 정확히 인지한다.

연 감독은 “<서울역> 좀비가 부산행 케이티엑스에 탔다면 영화가 진행이 안됐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두 영화를 잇는 것은 논리적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주제다. 두 영화는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같은 열쇳말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역>에선 가족이든 집이든 모두 가짜거나 투자 가치가 있는 존재일 뿐이다. <서울역>은 지금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절망감의 응축판이고 관객들이 ‘차라리 좀비세상이 오는 게 낫겠다’고 느끼길 바랬다. 그 정서가 <부산행>에서 종말이 온 배경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역>은 11일부터 씨지브이 아트하우스에서 열리는 ‘연상호 감독전’에서 먼저 공개된다.

18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부산행> 전편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부산행>과 동시에 일어나는 평행세계의 이야기에 가깝다. 뉴 제공

■ 마지막 순간 왜 신파여야 했을까? 감독은 그동안의 비판에 대해서도 꼼꼼히 답했다. 가장 많이 지적됐던 것은 <부산행>의 신파구조에 정점을 찍는 석우의 마지막 회상 장면이다. 연 감독은 “성장중심 세대 책임을 물으면서 그들에게 판타지와 감동이라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맞느냐는 글을 읽었는데 아버지 세대를 증오한다고 한들 그 어떤 면죄부도 주지 말고 일관되게 증오를 유지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취향과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좀비 영화의 가장 큰 공포는 잘 아는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마치 치매환자로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상상했다. 석우의 어머니가 갑자기 ‘지들 살길만 찾는 새끼들’이라고 욕을 퍼붓는 것도 공포다. 마지막에 어떤 기억이 남느냐는 그냥 운인데 나는 수완에 대한 기억이길 바랬다”고 했다.

인물들을 장기말처럼 사용했다거나 남자 위주의 신화라는 지적도 나왔다. 연 감독은 “대부분 인정한다”며 “여자 캐릭터가 주연인 영화를 2편 준비하고 있다. 그중 한편은 시나리오도 써둔 상태”라고 말했다.

독립애니메이션 감독이었던 그가 ‘천만 감독’이 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연 감독은 “다음 영화를 지켜보겠다는 시선이 많아서 아예 잘못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천만, 칸 이런 것만 생각하면 잘 안될 것 같아서 ‘다음엔 망하자, 그래도 또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이정현 “저를 발탁해 주신 박 대통령께 무한 감사…”
‘땀도 배신한다’…올림픽, 유도를 위한 변명
도핑의 진화? 유전자 바꿔 금메달 딴다면…
[화보] 지금 리우에선…
[화보] 사진으로 보는 1910년대의 한반도

▶ 발랄한 전복을 꿈꾸는 정치 놀이터 [정치BAR]
▶ 콕콕 짚어주는 [한겨레 카드뉴스][사진으로 뉴스 따라잡기]
▶ 지금 여기 [사드 배치 논란][한겨레 그림판][당신에게 꼭 맞는 휴가지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