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그가 있었다 #간첩단조작 #유서대필 조작사건 (그것이 알고 싶다)

뉴스엔 2017. 1. 1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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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민지 기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숱한 조작의 중심에 있었다.

1월 1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비선의 그림자 김기춘-조작과 진실' 편을 선보였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을 기도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육영수 여사가 피살됐다. 체포된 문세광은 하룻동안 자백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굳게 닫힌 그의 입을 열기 위해 검사 김기춘이 투입됐다.

이후 김기춘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이혜훈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없을 때도 주군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본인보다 어린 여성 의원에게 '주군', '하명' 이런 단어를 써서 충격적으로 놀랐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역대 최고령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된 김기춘. 대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을 보필하게 된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일명 '왕실장'이라 불리며 청와대를 실질적으로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기춘이 몸담았던 정권은 2016년 가을 대참사를 맞았다. 청문회에서 그는 "나는 알지 못한다"로 일관했고 안민석 의원은 "무능한 비서실장으로 작정하고 나온 것이다. 구속을 피하기 위해 바보인 척 하는거다"고 지적했다.

청문회 후 특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확인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이행을 지시한 인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지목하고 있으며 정식 수사를 진행 중이다.

청문회에서 스스로 인정하고 사죄했던 것처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정농단 실체를 상상도 못했을만큼 무능했던 비서실장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참담하다. 가족을 잃고 힘들어하던 세월호 유족들은 어느 순간 생떼를 쓰는 사람이 돼있었다. 특히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공격의 대상이 됐다. 그는 "나를 음해하고 욕하기 시작했다. 이게 하루에 몇천개씩 댓글로 왔다. 돈 때문에 나타났다, 보상금 만들려고 나타났다고 했다. 중점적으로 됐던건 23일 이후다. 어버이연합이 짜장면 먹고 일베가 피자 먹고..그러면서 유민아빠 신상털기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누군가 여론을 조작하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닌지 의심했다. 김영오씨는 "고 김영한 비망록에서 증거가 나올 줄 몰랐다. 날짜를 보니까 정확하더라. 22일부터 해서.."라고 말했다.

당시 민정수석을 지냈던 고 김영한 수석의 업무일지가 한 언론에 공개됐다. 김영한 전 수석은 청와대 비서진 회의 내용을 하루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해뒀다. 당시 김영한 비망록에는 유민아빠를 거론한 대목이 등장했다. '자살 방조죄, 단식은 생명 위해 행위, 국민적 비난 가해지도록 언론지도'라는 지시가 적혀있었던 것.

이는 '장(長)'이라고 표기돼 있다. 박범계 의원은 "대통령으로 직접 지시받은 것은 대통령의 령자를 한자로 써놨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지시한 내용에 대해서는 '장'자로 표시했다. 체계적으로 기재돼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고 100% 확신해도 된다"고 분석했다.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가 홍성담 화백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그림을 바꾸라는 지시가 왔다고. 그는 "최고 권력에 대해 이런 정도도 풍자를 못하게 하면 이 비엔날레 없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영한 비망록에도 이 내용이 등장한다. 애국단체가 홍성담 화백을 고소한다는 내용이 등장하고 실제로 그날 홍성담 화백은 고발당했다. 당시 그림 전시 불가 입장을 밝힌 윤장현 광주시장은 "전시를 하지 말라 보다는 우려를 전해받았다. 김종 차관이 어떤 상황이냐고 물어왔었다"고 밝혔다.

오랜 논란 끝에 그림 전시를 포기했던 홍성담 화백은 "김영한 비망록을 내가 눈으로 복사본으로 확인하면서 소름이 끼쳤다. 오싹하더라. 수석비서관 회의라면 우리나라 권력의 최정점 아니냐. 거기서 사람 하나 죽이고 살리고 다 할텐데. 화가 한 사람 이름을 14번을 거론했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내가 뭘 그렇게 큰 죄를 졌나. 그림 한장 그린 죄 밖에 없는데"라고 토로했다.

김영란 비망록에는 청와대가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시도도 담겨 있었다. 박상옥 대법관. 그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축소 은폐하는데 동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야당의 반대에도 그는 결국 대법관이 됐다. 박상옥 대법관 1년 전부터 청와대는 검찰 출신 대법관을 알아보고 있었다. 대법관 임명은 법무부의 고유권한인 만큼 추천인을 통해 이를 추진하라는 세부상황까지 지시했다.

김희수 변호사는 "삼권분립은 가장 기본적인 권력 구조다. 그걸 무시한거다. 박 대통령과 공모하에 한 것인지 김기춘이 독단적으로 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범죄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김기춘과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이병완 전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건 생각을 못한다. 음모 조작이다. 헌법기관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책임기관은 청와대가 사적 음모조직으로 전락한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엄명이 비서실장이나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왔다면 이 자체가 탄핵이다. 편가름을 하는 조직의 최고 선봉에 있었다. 헌법 정신 무시이고 위반이다"고 덧붙였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노무현 정권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공직에 40년 넘게 있는데 주어진 권력을 70~80%로 작게 쓰려고 노력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120% 쓰는 사람이 있다. 그건 남용이다. 권력을 즐기면서 120% 쓰면 재앙이 닥친다"고 말했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로 온나라가 발칵 뒤집힌 지난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출범식에 참석했다. 국정농단의 장본인으로 의심받던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 행사장에 나타났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김기춘을 아껴 많은 기회를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신헌법이 제정됐던 당시 김기춘은 초안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유신정권의 핵심 주류 라인에 들어간 그는 동료들 보다 빠른 속도로 승진했고 대공수사국장이 됐다.

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수사관이었던 이기동은 "독살스럽게 눈을 뜨고 가서 과장들을 쏘아보는데 엄했다. 당시 대공수사국장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중앙정보부의 실권을 장악한 김기춘은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으로 위장한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간첩망 조직도의 위쪽에 이름을 올렸던 강종건씨는 왜 중앙정보부에 끌려 왔는지 이해도 못한 채 구타를 당해야 했다.

강종건씨는 "때리고 쓰러지고 세우고 엎드려 뻗치게 하고 각목으로 또 때렸다. 며칠 동안 맞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뭘 이야기 해야하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일본에서 누구누구 만났지? 하는 이야기부터 북에 언제 갔다 왔느냐고 했다. 무슨 지령을 받았느냐

또다른 피해자 강종헌 씨는 "절대 그런 일 없다고 이야기 해도 통하지 않았다. 부인하면 더 맞고 고문 당했다.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소위 학원침투간첩단을 만들어간거다"고 말했다.

이들은 36년만에 무죄임이 밝혀졌다. 유신정권 시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간첩만한 것이 없었다. 한국말이 서툰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간첩 조작 사건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이 조작을 진두지휘한 것이 김기춘이었다.

1122 사건을 포함해 수많은 간첩 사건들을 지휘했고 그 공으로 상까지 받았다.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재심을 받기 전에도 김기춘은 "인간적 괴로움은 없다. 간첩은 머리, 두뇌로 잡는 것이지 몽둥이로 잡는 것이 아니다. 내가 수사한 사건으로 과거사 진상 규명이나 인권 의문사 리스트에 오른 것이 없다. 권력을 남용해서 인권을 유린하고 고문했으면 오늘날 김기춘이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고 자신했다.

또다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유영수씨는 "내 동생을 바로 옆에 집어넣었다. 동생이 구타당하고 고문 당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게 제일 마음 아팠다. 내가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다"고 말했다. 고문에도 거짓 자백을 하지 않으면 가족들까지 중앙정보부로 잡혀왔고 그들은 간첩 방조범이 됐다.

관련사건을 취재 중 우연히 김기춘을 마주친 뉴스타파 최승호PD는 "처음에 날 반기더니 피해자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일어났다. 외무부 아주국장한테 그런 메모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그 김기춘 말고 누가 있겠냐. 그런데도 부인을 하더라"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고 독재정권이 무너졌지만 김기춘은 여전히 건재했다. 또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시민들이 쓰러져 가는 사이에도 김기춘이 앉은 자리는 점점 높아만 갔다.

1991년 김기춘이 법무부장관이었던 시절 전대미문의 사건이 또 일어났다.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때는 노태우 정권이 위기를 맞았던 때다. 강기훈에게 동료의 죽음을 부추긴 패륜아라는 누명을 씌우며 이 위기에서 탈출했다. 이 프레임을 만든 것 역시 김기춘이라는 예측이 다수다.

숱한 조작사건마다 등장하는 이름 김기춘. 무엇을 위한 조작과 피해였을까. 수십년을 지나 재심을 통해 진실이 밝혀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고 사과하지 않았다. 김기춘은 아픈 역사의 굴곡마다 어김없이 등장했고 그 피해자들을 발판삼아 승승장구해왔다.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늘 "몰랐다"며 법적 책임을 피해왔다.

김기춘에게 처음으로 찾아왔던 위기의 순간.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주요 요직 기관장들과 마주한 김기춘은 "믿을데라고는 부산 경남이 똘똘 뭉치는것 밖에 없다. 민간에서 지역 감정이 있어야 한다. 부산놈들 본때를 못 보이면 다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는 현대 정주영호가 급부상하며 막판 선거전이 치열할 때였다. 지역감정을 일으켜 김영삼 후보에게 힘을 실을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그는 노골적으로 금권선거, 관권선거를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불과 두달 전까지 법무부장관을 했던 김기춘이다.

불법선거운동 증거가 포착된 이 사건은 이른바 초원복집사건이라 불린다. 김기춘이 처벌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판은 또다시 뒤집혔다. 김기춘이 도청을 문제 삼으며 그들의 대화 내용이 공개된 유출 경로에 관심이 집중됐고 김기춘은 처벌받지 않았다. 법을 바꿨기 때문이다.

김기춘은 당시 사건에 대해 "그 사건 이후에 우리나라 두개의 큰 법이 제정되거나 바뀌었다. 난 이걸 알리고 싶다. 도청을 처벌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을 만들었다. 그 다음에 누구나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포지티브 선거운동 시스템이 됐다"고 말했다.

위기의 순간, 단번에 여론을 뒤집는 힘은 김기춘의 가장 큰 무기였다.

정윤회 문건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시작은 비선실제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그러나 문건 내용보다는 문건의 유출 과정을 규명하는데에 관심이 집중됐다.

김영한 비망록에는 당시 사건에 대해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보도 신문사(세계일부) 압수수사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김희수 변호사는 "정윤회 사건도 똑같았고 태블릿PC 사건도 똑같다. 그들이 왜 태블릿PC를 문제 삼겠냐. 그걸 문제 삼아서 실체적 내용 전체를 다 부정해버리는거다. 그런 행태와 행동들이 계속 성공적으로 수행돼 왔다"고 말했다.

정윤회 문건 작성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했던 조응천 의원은 검찰 조사 당시 김기춘의 지시로 작성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기춘은 "조사하라고 한 적 없다. 보고서가 와서 알았다"고 주장했다.

청문회 후 조응천 의원은 정윤회 문건 작성 경위와 상황에 대해 "일간지에 '김기춘 실장 곧 물러날 듯'이라고 보도가 나왔다. 날 불러서 이것 좀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조사해서 줬다. 그런데 청와대 본관에서 3인방이 '조응천 저 XX 쌍욕을 하고 저X 죽여버릴거야' 했다. 그러니까 그자들에게 준거다"고 밝혔다.

행동분석 전문가와 함께 김기춘의 청문회와 과거 영상들을 분석했다. 유독 고개를 자주 끄덕이는 김기춘의 모습에 대해 전문가는 "보통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잘 끄덕인다. 내 끄덕임이 PD님의 끄덕임을 유도하는거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믿도록 하는거다. 자기합리화라는거다"고 말했다. 또 김기춘이 몸을 좌우로 흔들거나 입술을 축이며 몸을 뒤로 빼는 동작 역시 그가 거짓말을 하는 단서라고 분석했다.

김상중은 "우리가 2주에 걸쳐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집중 취재한 이유는 국정농단 사태가 이들의 뭉인, 방조, 협조 없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민간인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재벌과 부당한 거래를 한 정권, 비상식적인 정권을 만들고 보호하고 그 안에서 권력을 누린 부역자들은 한둘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2의 김기춘, 제3의 김기춘을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사태에 책임있는 자들은 누구인지,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SBS 캡처)

뉴스엔 이민지 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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