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행복해지는 잼 만드는 게 꿈이죠"

2013. 10. 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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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요리무설탕, 건강 재료로 '슈퍼잼' 개발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영국 출신 청년사업가 프레이저 도허티

#1. 서울 논현동 베이커리 공방 '슈크레'. 10월9일 오후 1시30분.

아담한 공방에 40여명이 모여든다. 한 남자만 쳐다본다. "안뇽하쎄요, 만나서 대박 반갑습니다." 24살의 영국 청년이다. 어색한 한국어는 호감의 표시다. 그가 1㎏의 라즈베리와 무설탕 포도주스를 섞어 잼을 만든다. 10여분 지나자 치명적인 달콤한 향이 퍼진다. "설탕 안 넣고 만듭니다." 질문이 터져 나온다. "주스에 있는 거 아니에요?" "5~6시간, 직접 (한국에서 구한) 무가당주스를 끓인 겁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레미니스케익'의 주인 구윤선씨가 맛을 본다. "과일의 알갱이 질감이 살아 있어 맛있네요." 시연이 끝나자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 너도나도 그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2. 서울 강남의 한 식품업체 연구실. 10월10일 오후 4시.

흰 가운 입은 연구원 20여명이 모인다. 영국 청년의 잼 제조 과정을 보더니 "결국 과일주스 농축액을 설탕 대신 쓰는 거구나" 한다. 연구원이 질문한다. "(100% 과일주스로) 농축액 만들 때 양은 어느 정도로 하나요?" 그가 "10ℓ가 2.5ℓ 될 때까지 졸여요. 펙틴(감귤류의 과일과 사과에 다량 함유된 성분. 과일류에서 추출해 잼, 젤리 만드는 데 사용한다)이 많은 과일이 더 좋죠." 떠나려는 그를 붙잡고 셔터를 누른다. 아이돌 스타가 따로 없다.

지난 6일 한국을 찾아 여러 차례 잼 제조 시연을 한 영국 청년은 프레이저 도허티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가 고향이다. 자신이 만든 잼에 '슈퍼잼'이란 이름을 붙여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을 비롯해 한국, 일본,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전세계 2000개 매장에서 400만~500만병 판매했다.

18살에 영국의 고급 슈퍼마켓 체인인 웨이트로즈에 최연소 납품업자로 선정되면서 <비비시> <포브스> 등 유력 언론들이 앞다퉈 소개했다. 그는 '영국 젊은 사업가상' 등 20여 가지의 크고 작은 상을 받았고, 고든 브라운 전 총리는 재임 시절 그를 관저로 초청해 만찬도 했다. 그의 성공담을 다룬 자전 에세이가 한국 등에도 번역 출간됐다. 연간 100만병 이상 생산하는 '슈퍼잼'의 창업주인 그를 두고 '백만장자 청년 재벌'이라 부른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런 호칭이 부담스럽다.

지난 10일 그는 "(내 인생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세상을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슈퍼잼'은 과정이자 도구라고 말한다. 그의 경영철학은 '윤리경영'이다. 그는 책에서 '훌륭한 소양을 갖춘 사람들은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면서 그 이유로 '단순한 이윤 추구보다는 고매한 명분에 동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홀몸노인과 양로원을 찾아 자선다과회인 '슈퍼잼 티 파티'를 매년 연다. 1년에 100회 넘는 행사에 매회 500명 이상의 노인이 초대됐다.

한국에서는 지난 8월부터 다소 비싼 값인 1만원(212g)에 판매에 들어갔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무설탕이란 점 때문이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높은 현대인의 눈높이를 맞춘 게 성공 요인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잼 개발은 뜻밖에, 우리로 치자면 중학생 정도 나이에 시작했다. 그의 나이 14살 때다. 할머니 수전 도허티(75)의 잼은 늘 맛있었다. 단돈 2파운드를 들고 오렌지 몇 개와 설탕 한 봉지를 사서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잼을 만들어 이웃집 문을 똑똑 두들겼다. 8살부터 직접 만든 케이크를 들고 방문판매를 했던 '꼬마 사업가'의 기질을 발휘했다. 첫 잼 판매로 4파운드(약 6800원)를 번 그는 방과후에도 귀찮아하는 동생을 다독여서 잼을 만들고 라벨을 붙였다. 그의 잼은 인기가 좋았다. 친구들이 잼 배달 지원군으로 나섰다. 하루 10시간 일하고 일주일에 20파운드(약 3만4000원)를 벌었다. 처음 12병이 팔리던 것이 30병이 되고 40병이 됐다. 동네에서는 '잼 보이'로 불렸고, 부엌은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아버지는 졸린 눈을 간신히 뜨고 새벽 5시 과일시장에 가서 재료를 구해 오고, 좁은 부엌에서 그가 팔팔 잼을 끓이면 동생과 어머니는 쪼그리고 앉아 포장했다. "온 가족이 동원됐죠. 가족들은 힘들었지만 저를 지지해주셨어요." 3년이 지나자 더 이상 부엌에서 만드는 걸로는 감당할 수 없는 주문량이 쏟아졌다.

"12살 때 아버지가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해고된 걸 보고 '직장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생각했어요. 열정을 쏟을 일을 하자 결심했죠." 본격적인 창업계획을 세웠다. 도서관을 뒤져 시장조사를 해보니 잼 시장은 정체기였다. 설탕 함유량 70~80%, '할머니'나 '교회 바자회' 등을 연상시키는 진부한 이미지가 문제라고 판단했다. 무설탕 잼을 만들겠다고 정하자 부엌에 처박혀 밤을 새웠다. 학교는 이미 조기졸업한 상태였다. 꿀은 비용 면에서 부담이 컸다. 펙틴 성분이 많은 오렌지 껍질로 추출물을 만들어 사용해봤다. 마침내 두 가지 과일을 섞고, 과일주스 농축액을 넣어 '슈퍼잼'을 완성했다. 그의 나이 17살, 2006년의 일이다. 일주일 만에 스코틀랜드 전역에 1000병 이상 팔려나갔다. "웨이트로즈에 처음 입점한 날에는 1500병이 팔렸어요. 정말 신기하고 즐거웠지요." 18살에 대성공을 거두자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다니고 있던 대학도 그만뒀다. 스펙이 아니라 현장을 선택했다.

수백만달러의 기업 가치가 있다는 업계의 평에도 "그것은 회사의 가치이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그는 '소유'에는 흥미가 없다. 고가의 차나 집도 없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한국에서도 호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를 거처로 정했다. 그는 첨가물질 없이 100% 꿀로 만든 '슈퍼허니'를 만들 계획이다. 아이들과 벌집을 직접 채집해 환경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과일의 씹히는 맛을 살린 현재의 슈퍼잼 이외에 아이들을 위해 알갱이가 없는 잼도 개발하고 있다.

반한 한국 음식이 있느냐는 질문에 "팥빙수, 팥빙수"를 외친다. "영국에 가져가고 싶어요. (만들어 팔면) 잘될 거 같아요." 채식주의자인 그는 매생이전, 깻잎, 인삼튀김도 인상이 깊었다고 말한다. 그의 꿈은 "사람들이 먹으면 행복해지는 잼을 평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잼 보이 프레이저가 알려주는 특별한 슈퍼잼 만들기

멜론잼

(200g 용량 6~8병 기준)

재료

: 3ℓ의 청포도즙, 화이트멜론 800g(약 2개), 레몬 3~4개, 펙틴 150㎖

만들기

: <278A> 포도즙을 냄비에 넣고 중간불로 약 30분간 가열. <278B> 포도즙의 양이 4분의 1로 졸아들면 불을 끄고 식힌다. <278C> 멜론의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다음 작은 크기로 깍둑썰기를 한다. <278D> 손질한 멜론과 포도 농축액 졸인 것을 넣고 하룻밤 재운다. <278E> 4와 레몬즙과 레몬 껍질을 넣고 잘 섞는다. <278F> 약불에 약 30분간 가열한 다음 중불로 온도를 올린 뒤 끓인다. <2790> 잼이 끓기 시작하면 5분 정도 더 가열한 뒤 잘 뭉쳐졌는지 확인한다. <2791> 끓는 잼을 한 숟가락 떠서 국자에 넣고 차가운 얼음물에 식혀 뭉침 정도를 테스트한다. <2792> 만약 잘 뭉쳐지지 않았다면 중불에 놓고 계속 졸인다. <2793> 잼을 담을 병을 뜨거운 물에 소독하여 준비한다.

잼이 잘 뭉쳐지지 않는다면 준비한 펙틴을 조금씩 넣고 조금 더 끓인다. 잼이 완성되면 병에 넣고 마개를 꼭 닫는다. 펙틴 추출물은 식재료 파는 가게에서 구하면 된다. 키위잼(3ℓ의 청포도즙, 키위 800g, 라임 6개, 생강 50g, 펙틴 150㎖), 망고잼(3ℓ의 청포도즙, 망고 500g, 사과 500g, 레몬즙 1큰술, 펙틴 150㎖), 파인애플잼(3ℓ의 청포도즙, 파인애플 과육 800g, 레몬즙 1큰술, 펙틴 150㎖ ) 만드는 과정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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