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서 건지고, 표구점서 구출하고"

2008. 8. 20.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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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수집가 홍두선씨의 수집 일화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경찰생활을 하다 퇴임한 홍두선(洪斗善) 씨는 올해 팔순을 맞아 보물급 금속활자본을 포함해 평생 모은 서화류 470건 967점을 최근 몽땅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서지학자 신승운 성균관대 교수는 박물관 의뢰로 기증된 전적류(典籍類)를 감정하고는 "서지학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전적류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탄복했다.

송암(松菴)이란 호를 쓰는 홍씨는 지난 13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마련한 '홍두선 기증유물 설명회'에 큰 딸 승희(56)씨와 함께 나타나, 유물 수집에 얽힌 일화 등을 털어놓았다.

이 중 드라마틱한 장면이 '곽장양문록'이라는 장편 필사본 소설을 건진 일이었다.

이 소설은 중국 당나라 대종(代宗)-덕종(德宗) 시대를 배경으로 곽씨와 장씨 두 가문 인물들이 펼쳐가는 삶을 다룬 가문소설 일종으로 '몽옥쌍봉연록', 그리고 '차천기합'이라는 소설과 연작 3부작을 이룬다.

홍씨에 의하면 이 소설은 그가 부산의 경남경찰국에 근무하던 1968-69년 무렵에 입수했다.

"당시 나는 도청 앞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퇴근해서 어떤 분이 저녁이나 먹자 해서 걸어서 슬슬 나가다 보니 리어카에 고서를 가득 싣고 누가 지나가요. 그래서 '그것 좀 구경하면 안 되겠소'라고 하니, (리어카 주인이) 그걸 표구점에 갖고 가서 전부 뜯어 병풍을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해서 돈을 좀 넉넉히 주고 통째로 샀지요."

이렇게 해서 입수한 곽장양문록은 3책부터 10책까지 분량이었다. 1-2권은 낙질(떨어져 나가고 없음)이었다.

한데 이렇게 입수한 소설을 조사하던 중 그에 찍힌 인장을 보고는 홍씨는 깜짝 놀랐다. 인장에는 '일사(一蓑)'라고 적혀있었다. 서울대 문리과대학장을 역임한 저명한 국어학자 방종현(方鍾鉉.1905-1952)의 호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곽장양문록은 방종현이 소장했던 책임이 분명했다.

홍씨는 이 소설이 아마도 본래는 규장각 소장이었다가 서울대로 들어가고 그러다가 6.25 동란 중에 부산으로 흘러오지 않았나 하고 추정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궁체로 필사한 이 소설을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한 이는 지연숙 씨였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지씨는 1997년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에서 홍씨가 소장한 이 소설을 분석했다.

도대체 어떤 인연으로 지씨가 이 소설을 접하게 되고 논문까지 쓰게 되었는지를 기자가 물었더니, 홍씨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홍종선 교수가 내 사촌동생"이라고 대답했다.

이 곽장양문록은 최소 6명 이상의 조선 궁중 여인이 필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 한 명이 정조의 후궁인 의빈(宜嬪) 성씨(成氏.1753-1786)로 밝혀졌다. 소설 필사에 정1품 임금의 후궁이 관여했다는 획기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홍씨 기증품 중에는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위암 장지연의 아버지 회갑연을 기념해 제작한 12폭짜리 그림도 있다. 그 제작에 참여한 화가는 4명이며, 이들은 각각 2폭씩 그렸다.

이를 홍씨가 입수하게 된 과정도 기구했다.

"나중에 장지연 씨 집이 그의 묘지를 찾지도 못할 정도로 아주 몰락했어요. (장지연의 집은) 마산 부근인데..후손들이 풍비박산이 나고 그랬는데, (위암의) 손자 되는 사람이 이 12폭 그림을 칼로 오려서 팔았는데, 그것이 관에 압류되었지요. 그랬다가 다시 (물건이) 풀려났는데 그걸 사 간 사람이 마산 상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표구점에 갔는데 아는 사람이 나한테 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사야한다고 권하기에 비싼 돈으로 샀습니다."

이렇게 건진 그림 중에는 얼룩 강아지가 달을 보고 짓는 모습을 형상화한 한 폭이 포함돼 있다.

홍씨는 "이 그림을 당시 진주농림학교 교장이 갖고 싶어했어요. 그 분은 자신이 갖고 있던 유물 중에서 태종 이방원이 정도전파를 숙청하는 일종의 밀지와 같은 유물과 교환하자고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1929년 충남 아산 출생인 홍씨는 1946년에는 육당 최남선에게 개인적으로 한국사를 공부하기도 했으며 48년 육사 7기로 입학해 한국전쟁 기간에는 제주에서 근무했으며 61년 중령으로 전역한 뒤 이듬해에 경찰 총경으로 진해경찰서장에 부임했다.

이런 그가 고서 수집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매달리게 된 것은 그 자신의 회고에 의하면 1964년 진주경찰서장으로 일하면서였다.

"당시 진주에는 유서 깊은 종가가 많았습니다. 이런 종가 창고에는 고서적이 잔뜩 있었는데, 이걸 (종가에서) 장사꾼과 짜고는 다 팔아먹는 거예요. 며칠 뒤에 우리 식구가 전부 서울 가니까, 문을 열어놓을 테니 다 가져가라, 뭐 이런 식으로 팔아먹더라 이겁니다. 이렇게 해서 귀중한 고서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워 제가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다른 골동품에 비해 고서는 가짜가 거의 없는 점이 매력적이었다는 말도 홍씨는 덧붙였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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