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결핍이 부른 '프란치스코 효과'

2014. 8. 1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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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정일의 독서 일기

교황 프란치스코: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안토니오 스파다로 지음국춘심 옮김, 솔 펴냄(2014)

8월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교황 관련 서적이 무수히 쏟아졌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안토니오 스파다로의 대담집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도 그런 경우다. 쏟아지는 교황 관련 서적이 장삿속과 무관할 수는 없겠지만, 교황에 대한 드높은 기대 자체는 이 시대의 결핍과 이상 징후를 동시에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오른 직후 교황청 홈페이지를 통해, 고대의 황금 송아지 숭배 같은 물신숭배와 비인격적인 경제(자본) 독재를 강하게 질타했다. 교황은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이 인간을 쓰고 버리는 노예로 만들었다면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 가운데 자유 시장 체제를 옹호하는 경제인이나 이론가들이 강변해 온 낙수효과에 대한 일침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여태껏 그들은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파이)를 먼저 늘리면 그 혜택이 자동적으로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해 왔다. 여기에 대해 교황은, 이상하게도 그들의 이론에 따라 윗접시에 물이 차면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윗접시가 더 커져버린다고 공박했다. 셀라!

시장 만능주의로 고통 받는 경제적 약자의 편에서 착취로 지탱하는 신자본주의 경제구조를 강하게 비판한 교황은 '프란치스코 효과'라는 주목할 만한 현상을 만들어 내면서, 2013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독이 오른 미국의 보수 언론은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색깔론 공세를 퍼부었지만,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이 1984년과 1986년에 내놓은 공식 교서에 충실할 따름이다. 해방신학에 대한 교황청의 응대로 나온 두 교서는 마르크시즘적 사회개혁방법과 구원론은 부정하지만, 해방신학 속에 있는 인간 존엄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빈민 구제라는 기독교적·복음적 가치를 수긍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중에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만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이제 곧 세계 곳곳에 놀라움을 던져주고 있는 '프란치스코 현상'을 목격하고 경험하게 될 터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과연 바람직한가? 세계적 시야로 보자면 오큐파이 운동이 폐허가 된 자리, 한국 사정으로 좁혀보면 컨트롤타워(국가)가 없는 빈자리로 살아있는 신의 대리인인 교황의 전능이 물밀어 들어오고 있는 형국이다. 종교와 절연하면서 암흑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낸 계몽의 역사와 근대는 어디로 사라졌나?

근대의 이상과 기획이 낙관적으로 여겨지던 1960년대까지는 종교가 세속과 타협하면서 세속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투사하거나 종속해왔다. 그러나 근대의 여러 병리적 현상들과 진보의 한계는 종교가 세속신앙을 내차고 자신의 힘으로 변혁을 구하는 근본주의 운동을 가동하게 한다. <신의 보복>(문학사상사, 1993)을 쓴 질 케펠은 근대적 모순의 해결을 종교에 위탁하는 이런 현상을 '새로운 중세시대-종교시대'라고 말한다. 무능한 국가, 사라진 사회, 작동하지 않는 헌법. 이런 결핍이 프란치스코 효과라는 이상 징후를 만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시대가 봉착한 아포리아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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