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힘' 바닷장어의 재발견

부산·기장·통영·고성·여수·고흥/글·김성윤 기자 2015. 6. 18. 04: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기장·통영·고성·여수·고흥을 훑으며 장어요리를 확인하다 붕장어 감칠맛과 깊은 된장맛이 만나 혼연일체의 조화.. 고흥 붕장어탕 꼼장어 좀 안다고 했는데 '이게 진짜구나' 충격.. 씹을수록 고소한 부산 먹장어구이

여름 보양식의 선두주자, 장어. 장어라면 여태 민물장어(정확한 이름은 뱀장어)와 곰장어밖에 모르셨나요? 그렇다면 장어 맛의 절반을 놓치고 계셨습니다. 한반도에서 잡히는 장어는 4가지. 이 중 민물장어와 먹장어(곰장어)만이 서울 등 대도시에서 쉽게 맛볼 수 있지요. 나머지 붕장어(아나고)와 갯장어(하모)는 이들 바닷장어가 잡히는 남해안 지역에서 소비되거나 비싼 값에 일본으로 수출됐으니, 다른 지역에서 맛보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이틀에 걸쳐 장어 주산지이자 소비처인 부산과 기장, 경남 통영·고성, 전남 여수·고흥 녹동항을 훑으며 이들 지역의 장어와 장어요리를 확인했습니다.

■ 여수 갯장어 유비키, 붕장어탕·구이

전남 여수는 장어 요리가 가장 다양하게 발달한 도시다. 갯장어(하모) 유비키(바닷장어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요리·일종의 샤부샤부)가 대표적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이 많이 살았고, 1970년대 일본으로 갯장어를 수출했기 때문이다.

갯장어 머리와 뼈를 발라내고 약 5㎜ 간격으로 촘촘하게 칼집을 넣는다. 갯장어 뼈를 우린 맑은 육수를 끓여 여기다가 칼집 넣은 갯장어를 넣으면 칼집 반대 방향으로 도로록 함박꽃 모양으로 동그랗게 말린다. 포슬포슬 부드러운 갯장어 살이 씹을 틈도 없이 허물어지면서 갯장어 특유의 담백한 감칠맛이 입안에 퍼진다.

여수항에서 배로 10분 떨어진 경도에 있는 ‘경도회관’(061-666-0044)이 가장 유명한 유비키 전문 식당이다. 보양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선지 육수에 인삼과 대추를 넣었는데, 이 때문에 삼계탕 비슷한 냄새가 배어들어 갯장어 자체의 맛을 가려 아쉽다. 가격도 9만원(1㎏을 손질한 한 접시)으로 비싸다. 갯장어회는 7만원.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맞은편에서 교동시장까지 이어지는 ‘장어골목’은 붕장어(아나고)로 끓인 장어탕이 기가 막히다. 맑고도 시원하고도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국물 한 모금이 목에 닿는 순간 말릴 틈도 없이 꿀꺽꿀꺽 빨아당기는 듯한 느낌으로 먹어치우게 된다. 딸려 나오는 무김치와 갓김치 등 밑반찬도 남도답게 아주 훌륭하다. 대부분 식당 맛이 좋지만 ‘7공주식당’ (061-663-1580)이 터줏대감이다. 장어탕 1만2000원, 구이(2만1000원·공기밥 포함).

■ 고흥 붕장어탕·회, 갯장어회·유비키

여수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인 전남 고흥 녹동항도 붕장어와 갯장어로 일제강점기부터 이름 높은 항구다. 여수처럼 갯장어와 붕장어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지만 가장 뛰어난 건 붕장어탕이었다.

녹동항 붕장어탕은 여수나 경남 통영 등 다른 지역과는 큰 차이가 났다. 다른 지역에서는 양념을 하더라도 국물이 맑은 편이나, 이곳 붕장어탕은 된장을 풀어 진하다. 그렇다고 텁텁하지는 않다. 구수하고 깊은 된장맛이 붕장어의 감칠맛과 만나 혼연일체 맛의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더해 얼큰한 맛을 살린다. 시래기가 구수함을, 숙주가 아삭한 식감을 더한다.

장어탕에 뿌려 먹으라고 네모난 후추통을 갖다주는 게 특이했는데, 후춧가루를 치자 장어탕 맛이 한층 살아나는 느낌이다. 경남 장어탕이 산초가루로 맛이 완성되는 듯한 것과 비슷하달까.

'안성장어나라'(061-842-2913) '바닷가장어숯불구이'(061-842-5033) '장어랑아구랑'(061-844-3307)이 장어탕을 한다. 가격은 1만원으로 같다. 장어구이(4만원), 붕장어(아나고·4만원), 갯장어 샤부샤부·회(4만원)도 한다.

■ 통영 붕장어구이·탕

통영은 국내 최대 붕장어 집산지. 통영 대표 음식 시락국(시래기국)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과거 붕장어는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해 일본으로 거의 전량 수출됐다. 버려지는 장어 대가리만 모아서 끓인 육수로 시락국을 끓인다.

통영의 장어구이는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살아있는 장어를 잡아서 바로 굽는 '생(生)장어구이', 또다른 하나는 살짝 말린 장어를 굽는 '반(半)건조장어구이'다. 붕장어를 잡는 통발수협 직원들이 추천해준 '장어잡는날'(055-643-2758)에서 생장어구이(2만원·250g)를 맛봤다. 아무 양념 하지 않고 잘 구운 장어살이 부드러우면서도 살짝 탄력이 있다. 뱀장어(민물장어)와 갯장어를 절묘하게 섞어놓은 듯하다. 기름기도 뱀장어처럼 느끼할 정도는 아니면서 갯장어보다는 진한 맛이다. 장어탕(9000원)도 시원하다. 장어양념구이(1만8000원)는 가늘고 작은 장어를 사용해 맛이 일반 장어구이만 못하다. 장어구이를 주문해 양념장 찍어 먹는 게 낫다.

반건조장어구이는 유통 과정에서 죽은 붕장어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장어는 살아서는 먹이를 먹지 않고도 오래 살지만, 죽으면 즉시 부패한다. 죽은 붕장어는 경매도 하지 않을 만큼 가격이 형편없다. 그래서 죽은 붕장어를 통영 현지인들은 살짝 말려서 값싼 술안주로 주로 먹었다.

'풍년식당'(055-645-5027)은 이 반건조장어구이를 드물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식당이 있는 중앙동은 한때 연탄불에 장어 굽는 냄새가 진동할만큼 장어집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이 집만 남았다. 식당 주인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생장어를 쓰기도 하고 말린 장어를 쓰기도 한다"고 하는데, 식당을 찾은 날에는 말린 장어 구이가 나왔다.

연탄불에 노릇노릇 잘 구운 붕장어에 매콤한 양념과 다진 쪽파, 참깨를 넉넉히 뿌려 내왔다. 말리는 과정에서 장어살은 한층 탄탄해지고 감칠맛이 진해져서, 생장어를 구운 것보다 오히려 맛이 낫다고 해야할 것 같다. 바지락과 꽃게, 미더덕을 넣고 끓인 된장찌개가 달았다. 장어구이 2만·2만5000원. 혼자 가면 장어에 밥과 각종 반찬이 딸려 나오는 장어백반(1만4000원)을 시켜도 좋겠다. 한정식(1만원)과 생선회(2만원)에도 장어구이가 딸려 나온다.

■ 고성 갯장어회

통영 옆에 있는 경남 고성 포교마을은 갯장어 산지다. 구상회(64)씨는 이 마을에 있는 '나포리횟집'(055-673-1481) 사장이자 40년 동안 갯장어를 잡아온 어부다. 그는 "포교마을 앞바다는 수온이 18도로 갯장어가 살기에 알맞은 데다 조류도 빠르지 않아 다른 지역 갯장어보다 살집이 더 올라 맛이 있다"면서 "한때는 일본 상선이 이곳에서 나는 갯장어를 싹쓸이해가기도 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갯장어를 잡아온 지역답게 다양한 요리법이 있다. 회를 주문하자 가늘게 썬 갯장어회를 역시 가늘게 썬 각종 채소와 콩가루, 초고추장과 버무려 먹으라고 내왔다. 처음 나왔을 때 갯장어회는 심심해서 초고추장과 콩가루에 맛이 완전히 가려졌다. 구씨는 "갯장어는 잡아서 3시간 정도 숙성시켜야 제맛이 난다"고 알려줬다.

그는 어부들이 갯장어회를 먹는 법도 알려줬다. 하나는 묵은지에 쌈장과 함께, 다른 하나는 양파에 조선된장과 함께 싸 먹는 방식이다. 맵지 않은 묵은지와 섬세한 갯장어회 감칠맛이 썩 어울렸다. 맵지 않고 단맛 강한 이 지역의 양파와도 궁합이 좋았다. 갯장어 샤부샤부·회 6만·7만·8만원.

■ 부산 먹장어구이

여태 살면서 소주를 남못잖게 마셨고, 소주를 마실 때 '꼼장어'를 종종 안주로 먹었다. 그런만큼 먹장어(곰장어)구이 맛은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조집이라는 '성일집'(051-463-5888)에서 '이게 진짜구나'란 충격을 받았다.

장어 자체가 달랐다. 탱글탱글하다고 해야할 만큼 탄력이 좋았다. 먹장어 몸 속에 반투명한 내장이 들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어나왔다.

차이는 산지(産地)다. 1950년 개업한 성일집은 아직까지도 국내산 먹장어만을 쓴다고 자부한다. 가게 안에는 '수입산 산 먹장어는 국산의 절반, 죽은 냉동 수입 먹장어는 20분의 1 가격'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값싼 포장마차 먹장어구이는 대개 미국·뉴질랜드 등 외국에서 수입한 냉동 먹장어로 만든다. 국산 먹장어가 훨씬 맛있지만 대신 비싸다. 양념구이·소금구이 관계 없이 1인분 1만5000원. 게다가 최하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2인분도 그리 많지는 않다. 곰장어의 껍질로 만든 묵에는 고추씨가 박혀 있어서 알싸하니 느끼함을 잡아주는 게 훌륭하다.

■ 기장 짚불장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는 짚불장어 조리법을 보면 안다.

살아있는 장어를 지푸라기 더미에 던진다. 그런 다음 짚더미에 불을 붙인다. 불길이 삽시간에 마른 짚더미 전체로 번진다. 장어는 껍질이 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꿈틀대다가 결국은 움직임을 멈춘다. 목장갑을 끼고 시꺼멓게 탄 껍질을 벗겨내면 회색빛으로 잘 익은 장어의 속살이 드러난다. 먹기 알맞은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고 살짝 데워 손님상에 낸다. 곰장어 몸통이 열기에 부풀어 통통하다. 씹을 때 식감도 자갈치시장의 곰장어구이보다 더 탱탱하다. 장어한테는 미안하지만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다.

기장곰장어(051-722-5580), 외가집(051-721-7098) 등 기장읍 시랑리 공수마을 1차선 도로에 줄지어 선 식당 대부분 괜찮다. 짚불곰장어 말고 생솔잎곰장어, 양념곰장어, 소금구이도 판다. 특정 음식을 하는 식당이 모여있는 곳들은 보통 가격이 같은데, 여기는 1㎏ 6만원부터 4만8000원까지 가게마다 차이가 꽤 난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