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사 탱화 절도사건..일면 스님은 '저승사자' 유출에 시치미 떼는가

2015. 7.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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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탱화를 유출한 건 부처님 몸에 피를 낸 것과 똑같은 거예요." 흥국사 전 주지가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그 이전의 주지가 탱화를 지인에게 유출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올해 동국대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탱화는 찾았습니다만 불교계에서는 최근 몇달 사이 이 문제로 뒤숭숭합니다. 탱화는 대표적인 불교 미술품 중 하나입니다. 문화재 관리가 허술했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문제의 재발을 막자는 차원에서 흥국사에서 벌어졌던 지난 10여년간의 일을 소개합니다.

경기도의 한 유명 사찰에서 보관 중이던 1792년작 탱화가 도난당했다. 몇년 뒤 이 탱화는 사찰 주지 스님의 측근인 또다른 스님의 자택에서 발견됐다. 탱화를 갖고 있던 스님은 서울 황학동 골동품 시장에서 샀다고 주장했다. 주지 스님은 도난 신고를 한 적이 없고, 탱화가 발견되고 나서야 도난당했다고 말했다. 도난당한 탱화를 사찰 주지 스님의 측근이 우연히 시장에서 발견해 사들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불교계가 최근 이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경기도 남양주 소재 흥국사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혜문 스님(42·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과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의 단체는 '흥국사 탱화 제자리 찾기 운동'에 나섰다. 탱화 유출자로 의심받은 전 흥국사 주지 일면 스님(68)은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일면 스님은 6월11일 동국대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사찰의 불교 미술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지정한 문화재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이들 문화재는 자주 유출돼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가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흥국사 탱화 절도 사건'을 추적해보았다.

"한 10년 지나면 보물이 될 거라며…"

불교 문화재 전문가인 혜문 스님의 주장을 토대로 사건의 전개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사건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혜문 스님은 동료 스님들과 함께 우연히 비구니인 ㄷ 스님의 거처에 방문하게 됐다. 한 작은 아파트였다고 한다. ㄷ 스님은 개인 차실에서 정갈하게 우려낸 녹차에 매화잎을 얹어 손님들에게 건넸다. 방에는 아이들이 듣는 동요가 흘렀다. "아이들 목소리처럼 맑은 게 녹차의 맛이고, 참선의 맛이겠지요." ㄷ 스님이 손님들에게 말했다.

혜문 스님의 눈에 벽에 걸려 있던 탱화 한 점이 들어왔다. 화기(그림의 역사 등이 담긴 글귀)에 건륭 57년(1792)작이라고 새겨진 저승사자 탱화였다. 동요를 틀어놓고 녹차를 마시는 온화한 스님의 집에 사찰의 시왕전에나 있을 법한 '칼을 찬 저승사자 탱화'가 생뚱맞게 걸려 있는 게 의아했다. 탱화를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혜문 스님이 ㄷ 스님에게 물었다. ㄷ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주었습니다. 한 10년 지나면 보물이 될 거라며 잘 보관하라더군요. 누군지 알면 저를 잡아 죽이려 들 겁니다." 혜문 스님은 더 깊이 묻지 않았다.

2004년 혜문 스님은 조계종 25교구 본사 사찰인 봉선사의 의뢰로, 봉선사가 관할하는 경기도 일대 사찰(말사)들의 문화재 일체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됐다. 혜문 스님은 남양주 흥국사 시왕전의 문화재를 살펴봤다. 1998년 ㄷ 스님의 집에서 보았던 저승사자 탱화와 똑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혜문 스님은 칼에 관심이 많았다. 탱화에서는 일직사자(낮의 저승사자)가 특이하게 칼자루를 뒤로한 채 서 있었다. 혜문 스님이 ㄷ 스님 집에서 본 탱화를 기억한 이유다. 시왕전의 다른 탱화들 화기에 '건륭 57년'이라고 적힌 것도 동일했다. 흥국사 시왕전의 탱화 일부는 한눈에 봐도 모조품이었다. 그림에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많았다. ㄷ 스님의 집에 걸려 있던 탱화가 진품임을 직감했다.

혜문 스님은 봉선사에 ㄷ 스님(가평 송림사)이 흥국사에서 유출된 탱화를 갖고 있으니 회수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ㄷ 스님은 1983년부터 10년 넘게 흥국사 주지로 있었던 일면 스님의 측근이었다. 내부에선 일면 스님이 ㄷ 스님에게 선물로 탱화를 주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 사건이 외부로 드러났을 경우 벌어질 파장을 우려했다. 혜문 스님에게 모른 척 눈감으라는 압력이 가해졌다.

혜문 스님은 동의하지 않았다. 며칠 뒤 ㄷ 스님의 집을 찾아 탱화의 반환을 요구했다. "일면 스님이 준 것 다 알고 왔다"고 말하자 ㄷ 스님은 아무런 저항 없이 탱화를 반납했다고 한다. 반납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혜문 스님은 기억한다. 2004년 5월6일의 일이었다. 혜문 스님은 이 탱화를 봉선사에 맡겼다.

며칠 뒤 혜문 스님은 자신의 봉선사 거처의 방문이 잠긴 것을 맞닥뜨렸다. 혜문 스님을 아끼는 은사 스님들이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좀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좋겠다"며 여비 200만~300만원을 주었다. 도난 문화재 회수가 원로 스님에 대한 하극상처럼 받아들여졌다. 혜문 스님은 일본 교토로 '반강제'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이후 '흥국사 탱화 절도 사건'은 비밀 아닌 비밀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시 10여년이 지났다. 흥국사 탱화 유출자로 의심받았던 일면 스님이 동국대 이사장이 되자 '흥국사 탱화 도난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흥국사 탱화는 아직도 흥국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봉선사 창고에 보관 중인 것도 확인됐다. 참여불교재가연대는 시민 3326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달 말 봉선사 쪽에 흥국사 탱화의 반환을 요청했다.

천년 고찰 흥국사 탱화가 유출됐다발견된 곳은 ㄷ 스님의 개인 자택주지인 일면 스님, 뒤늦게 "도난됐다"그가 동국대 이사장 되면서'불법 유출' 의혹 다시 주목받아탱화의 배첩은 멀쩡하고'흥국사' 글자 몰래 지운 흔적도도난당한 것인가, 유출한 것인가ㄷ 스님, 한 점당 40만원에 샀다는데황학동 상인 "그보다 훨씬 비싸다"

반환 요청해도 안 주는 이유는?

ㄷ 스님이 갖고 있던 '흥국사 사자 탱화'는 모두 두 점인데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하다는 게 혜문 스님의 설명이다. "흥국사는 조선시대 화승(畵僧·그림을 그리는 승)의 학교 기능을 했어요. '덕절(흥국사) 중은 불을 때면서도 불막대기로 시왕초(十王草)를 내고, 화계(화계사) 중은 불때면서 초할향(初喝香·불교 의식)을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죠. 흥국사 탱화는 경기도 일대 사찰 탱화의 교본이었고 18세기 말 조선 불교미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서울시가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는 봉은사 탱화 '영산전 사자도'에 대한 문화재청 설명자료를 보면, '1892년 남양주 흥국사 영산전 사자도와 유사한 형식을 보여준다'고 돼 있다.

탱화(幀畵)는 그 희귀성과 완성도에 따라 각 지역의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불교미술품 중 하나다. 경기 안성 칠장사의 오불회괘불 탱화(국보 296호) 등 국보급도 있고 지방자치단체 지정 문화재들도 상당수다. 탱화의 어원은 티베트어 '탕카'에서 유래했다. 불교의 종교관을 담은 상상도를 벽이나 천, 종이 등에 그린다. <삼국유사>에 탱화 관련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탱화를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가 되고 있는 흥국사 사자 탱화는 시왕전에 걸려 있던 것들이다. 시왕전은 죽은 사람을 저승에서 재판하는 열명의 왕을 모신 법당이다. 사람이 죽으면 극락왕생을 빌며 유족들이 찾아와 비는 곳이다. 흥국사 시왕전의 사자 탱화도 조선 후기 민중들이 바라보며 한없이 빌던 그림일 것이다.

지난달 26일 남양주 흥국사를 방문했다. 흥국사는 서기 661년 원효대사가 수락산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느껴 지은 사찰이다. 나라를 일으켜 세운다는 뜻을 가진 흥국사는 조선 임금 영조(재위 1724~1776) 때 크게 발전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현판을 직접 쓰기도 했다. 아미타 여래좌상, 극락 구품도, 약사전 등 중요 문화재들을 갖고 있다.

주지를 맡고 있는 성조 스님은 답답해했다. 전임 주지인 화범 스님 때부터 계속 탱화를 돌려달라고 봉선사 쪽에 요청하고 있는데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성조 스님은 기자를 시왕전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닥에 놓여 있는 일직사자, 월직사자(밤의 저승사자) 등의 조각상과 벽에 걸린 탱화 13점이 눈에 띄었다. 근엄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익살맞은 조각상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탱화 13점은 진품과 모조품이 뒤섞인 채 걸려 있었다. 한눈에도 색감과 그림의 묘사 수준 등에서 진품과 모조품은 구별됐다. 모조품은 배첩(액자 모양의 표구)의 상태도 헐거웠다. 진품은 7점, 모조품은 6점이었다. 20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6점의 탱화가 하나둘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것인데 그중 2점이 최근 발견된 것이다.

흥국사 쪽은 2011년 경기도에 흥국사 시왕전의 탱화 및 조각상을 문화재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조각상만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됐다. 탱화 13점이 온전하게 다 보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문화재들이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유출되어간 탓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봉선사 쪽은 보관 중인 흥국사 탱화 원본 2점을 기자에게 공개하는 것을 거절했다. 혜문 스님이 따로 보관중인 사진을 통해 탱화 원본을 살펴봤다. 화기에는 '임자년 4월24일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5월○6일(글자 일부 지워짐) 마무리했다. 수락산 흥국사에 봉안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흥국사라는 글자에는 누군가 긁어 지우려 한 흔적이 보였다.

"탱화 빼돌린 이가 모조품 제작에 개입했을 수도"

2004년 조계종 호법부(일종의 감찰기관)는 흥국사 탱화 사건을 조사했다. 호법부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일면 스님은 "탱화는 내가 주지로 있을 때(1983~1997년) 도난당한 것이지 고의로 유출한 것이 아니다. ㄷ 스님의 집에 보관 중이라는 사실을 듣고 나도 놀랐다"고 진술했다. ㄷ 스님은 "1999년 가을 어느날 황학동에서 두 점을 80만원에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일면 스님과 ㄷ 스님의 해명은 그러나 여러모로 의문을 낳는다.

보통 문화재를 도난당하면 경찰에 바로 신고하고 범인을 찾아나서기 마련이다. 또 조계종 승려법 47조에 따라 조계종 총무원에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일면 스님은 도난 당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ㄷ 스님이 거리에서 탱화를 구입한 뒤 이것이 흥국사의 것인지 몰랐다는 것도 의아하다. 화기에 '흥국사'라는 글자는 비록 훼손돼 있었으나 흥국사 글자 바로 전에 수락이라고 써 있었다. ㄷ 스님은 경기도 가평을 근거지로 활동하였기에 화기에 적힌 '수락'이란 글자에 무신경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남양주 수락산 일대에 옛 탱화를 소유하고 있는 사찰은 흥국사·내원암 등 정도다.

ㄷ 스님이 구입했다는 탱화가 절도품이라면 탱화에 붙은 배첩이 사라지고 없어야 하는데 배첩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대개 절도범은 운반 편의상 칼로 그림만 신속하게 떼어간다. 혜문 스님은 "1m20㎝×1m50㎝ 크기의 탱화를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다른 곳에서 옮긴 것이지 긴박한 상황에서 절도범이 훔친 상태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황학동 고미술품 가게가 1792년작 탱화 두 점을 80만원에 팔았다는 것도 의문이다. 부산의 범어사는 최근 1861년 봉안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유출된 칠성도를 스위스 경매시장에서 9400여만원에 낙찰받아 지난 13일 국내로 들여왔다. 흥국사에서 유출된 탱화는 범어사 칠성도보다 조성 연도가 그 이전이고 일대 화승들이 교본으로 활용했을 정도로 작품성을 갖고 있다. ㄷ 스님이 사비를 주고 구입한 탱화를 2004년 혜문 스님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돌려줬다는 것도 의문이다.

황학동에서 10년 이상 고미술품을 판매해온 한 상인은 16일 기자와 만나 흥국사 사자 탱화 사진을 살펴본 뒤 "(한 점당) 40만원이라는 가격은 말도 안 된다. 최소 400만원 이상은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은 대번에 "매우 질이 좋은 작품이다. 점당 1000만원은 훌쩍 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흥국사 시왕전에 걸려 있는 모조품은 비록 질이 떨이지긴 하나 진품에 그려진 형상과 색채 등이 매우 유사해 누군가가 진품을 보고 따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탱화를 빼돌린 책임자가 모조품의 제작에도 직접 개입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이에 대해 일면 스님은 2005년 호법부 조사 때 "(일면 스님이 주지가 된 1983년 이전) 흥국사 전 주지가 미리 탱화 사진을 찍어두어서 그것을 참조해 따라 그리게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면 스님 직후 흥국사 주지였던 화범 스님은 14일 <한겨레>에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밝혔다.

일면 스님과 ㄷ 스님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일면 스님은 16일 동국대 홍보실을 통해 "모두 내 전생의 업이라고 생각한다. 일일이 대응해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탱화 등 사찰의 불교미술품들은 이전부터 종종 불법 유출돼왔다. 2001년 전북 완주의 한 사찰에선 주지가 도굴꾼과 짜고 탱화를 빼돌리다 적발된 적이 있다. 서의현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2008년 탱화 2점 등 불교 문화재 341점을 개인적으로 은닉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사건은 유명하다. 대구지방법원은 2008년 12월 서의현 전 총무원장이 문화재 유출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대법원까지 무죄 판결 유지) 불교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시사하는 사례로 남았다.

참여불교재가연대는 지난 13일 봉선사 쪽에 다시 한번 탱화 반환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김종규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는 "흥국사 탱화 사건은 단순히 한 사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불교계 전반에 만연한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주지 스님들이 사찰의 문화재를 개인 재산처럼 여기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고 일면 스님은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관계자는 "사건 발생 이후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고 탱화가 회수됐다는 점을 참작해 일면 스님에 대해 2005년 징계회부유예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유출인지 도난인지는 호법부가 당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종기는 도려내지 않으면 새살이 돋지 않는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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