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아온 따귀, 맞을 수밖에 없는 독립PD

이진순 2015. 8. 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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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슈퍼갑'이 지배하는 방송 생태계.. '선 제작-후계약' 악습 여전해

[오마이뉴스 이진순 기자]

'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이진순(민언련 정책위원), 정민영(변호사),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중구 종편채널 MBN 사옥 앞에서 '독립피디 폭행사건'에 대한 해당 피디 해고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지난 6월 25일 새벽, MBN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독립 피디 한 명이 폭행을 당해 얼굴이 부서졌다. 가해자는 30대 중반의 MBN 피디였고 피해자는 경력 4년 차 프리랜서였다. 폭행의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독립피디가 제작한 인트로 영상을 시사하다가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와 술자리를 가졌고, 그 자리에서 일방적 폭행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안면골절의 중상을 입은 피디는 응급 처치를 받기는커녕, MBN 피디와 함께 방송국으로 들어가 시사를 마저 해야 했다. 외주 제작 계약서에 도장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수천만 원을 들여 촬영을 완료한 상태였으니까. 폭행을 당한 피디는 성형수술에만 전치 4주, 골절이 아무는 시간은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MBN은 "사적인 자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이며 당사자들이 "원만한 합의"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재고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가해자는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고, 다시 현업에 복귀했다.

한국독립PD협회는 이 사건을 "명백한 갑을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의 관리직 직원이 비정규직 독립PD의 인권을 파괴한 야만적 폭행사건"으로 규정하고 가해PD 해고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MBN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관련 기사 : "합의했으니 끝? 'MBN법' 입법화할 것"). 폭염 아래서 독립PD들과 한국PD연합회, 언론노조 소속의 언론인들이 릴레이 시위를 이어오는 동안에도, MBN 측은 요지부동, 본래의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폭행과 폭언에 반항하면 잘린다

'MBN 피디 폭행사건'은 대한민국 방송제작환경의 현실과 법적 제도적 맹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지난 7월 28일 한국독립PD협회 등이 개최한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 실태 긴급 증언대회'에서는, 이 사건을 둘러싼 다단계 방송 하도급의 제작 실태와 간접고용 관련자들의 비참한 처우가 당사자들의 입을 빌려 처음으로 공개됐다.

"광고국에서 협찬을 따와서 그 돈으로 제작부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광고국에서 계속 물건을 낀 홍보를 하라고 요구해왔다. '그걸 제작부랑 얘기하지, 왜 외주한테 그러냐? 그건 내 결정사항이 아니다' 하는데도 날 계속 '푸시'해서 결국 (내가) 광고국과 싸웠다. 그랬더니 우리한테 통지도 안 하고 다른 제작사로 교체를 한 거다... 우리 스태프 12명이 졸지에 백수가 됐다." (김경수 PD, 가명)

"PD 입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배PD와 저녁을 먹다가 다툼이 있었다. 다툼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언어 폭행이었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니까 '뭐라구, 이 XX야? 지금 말대꾸야?'하면서 폭행을 했다. 따귀가 부을 정도로 맞았지만 난 어차피 계약직이고, 열 대를 맞든 스무 대를 맞든 이슈를 만들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PD가 되어야 하니까." (이주원 PD, 가명)

"찍히면 잘린다" 그게 이 바닥 불문율이다. 프로그램의 질이나 제작 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갑질 하는 본사 PD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찍힌다. 방송국에서 요구하는 불법 광고를 거부해도 찍힌다. 그 실태는 쉽사리 외부로 드러나거나 공론화되지 않는다. 방송국의 비정규직과 간접 고용 인력의 현실은 언제나 공문서 밖에 존재한다.

외주 제작 비율이 능사가 아니다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를 감독한 진모영 PD(왼쪽)와 분쟁지역전문 김영미 PD가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필동 MBN사옥앞에서 '외주제작사 독립피디 폭행사건'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희훈
방통위는 종편의 재승인 시 외주 제작물을 35% 이상 편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상파독과점 구조를 해체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의무 비율 규정이 우리 방송 환경을 개선하고 콘텐츠의 다양화를 꾀하는 데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증명된 바가 없다. MBN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2013년 현재 외주제작 편성 비율은 53%, 외주제작비 지출 비중은 종편 4사 가운데 제일 높은 75%다(프리랜서 증언대회, 김동원, 최선영 교수 발표문 참고).

최선영 서울디지털대학 교수는 "외주 제작 의무 비율에 머무르지 않고, 외주제작사와 상생을 가능케 하는 질적 요건들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방송 제작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PD, 작가 등은 고용계약서 없이 구두로 일을 맡는 경우가 태반이고, MBN 폭행사건에서 드러나듯 외주 제작 방식도 '선 제작-후 계약'의 악습이 관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지상파/종편→외주 제작사→프리랜서PD'로 이어지는 다단계 제작 환경에서 계약서 없는 불공정 고용은, 법과 제도의 사각 지대를 만들고 '갑-을-병'의 착취 사슬로 작동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불법 광고와 비리, 인권 유린이 횡행한다. 다양한 콘텐츠와 양질의 방송 인력 육성을 위해서는 건강한 생태계 질서를 바로잡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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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민언련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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