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노오력'과 '파이팅'

이용균 | 스포츠부 2015. 12. 2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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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건 야구 얘기다. 마이크 매시니는 메이저리그 포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13시즌을 뛰었다. 35세 되던 2006시즌 5월 어느 날 갑자기 방망이도 공도 쥘 수가 없게 됐다.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일상적인 대화도 어렵게 됐다. 30년 가까이 계속해온 야구가 준 후유증이었다. 포수는 파울 타구에 맞기 일쑤다. 마스크를 썼어도 머리에 맞을 때 충격이 상당하다.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에게 부딪힌다. 그러다 땅바닥에 고꾸라지는 일도 흔하다. 의사는 매시니에게 뇌진탕 진단을 내렸다. 복서로 치자면 ‘펀치 드렁크’였다.

고향인 오하이오주로 돌아갔다. 쉬는 동안 후유증이 잦아들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들을 둔 부모들이 더욱 그랬다. “메이저리거 출신이 우리 동네로 돌아왔어. 우리 애들을 가르치면 정말 좋지 않을까.” 몇몇은 용기를 내서 매시니를 찾아갔다. “여기서 야구팀을 만들어 우리 애들을 가르쳐 주면 어때요.”

그럴듯한 제안이었지만 매시니는 단칼에 거절했다. “제가 은퇴할 때 결심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전, 고아팀이 아니면 안 가르칩니다.” 이유도 명확했다. “왜냐고요? 학생 스포츠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부모님이니까요.”

그래도 동네 부모들의 설득이 계속됐다. 매시니는 고심 끝에, 부모들을 자기 집 거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그리고 직접 쓴 긴 편지를 읽었다. 수년 전 미국 스포츠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매시니 선언(The Matheny Manifesto)’이었다. 여기에 나온 내용들을 모두 지켜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일종의 계약서였다.

금지사항이 적지 않았다. 일단, 관중석에서 부모들이 외치는 ‘파이팅’을 금지했다. “힘내” “가자” “할 수 있어” 아무리 좋은 말도 금지였다. 매시니는 “아이들에게 ‘경기 중에 부모님이 어떤 걸 해줬으면 좋겠니’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한다”고 했다.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견뎌야 할 압박감이 상당하다. 야구 경기를 위한 반복 훈련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되다. 부모의 응원 함성은 부담감을 덜어주기보다는 더욱 키우기 마련이다. 매시니는 “부모님들은 조용하지만 꾸준한 지원자 역할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부모의 함성은 함께하는 스포츠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격려가 아니라 팀 동료의 칭찬이다.

‘자기 물은 자기가 싸가지고 다니게 할 것’이 또 하나의 원칙이었다. 아이가 덥다거나, 목이 마르다고 할 때 쪼르르 달려와 물을 건네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규칙이다. 최소한의 독립심을 키우기 위한 규칙이다.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쉽게 손 벌려서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야구는 부모와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동료들과 하는 스포츠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투수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는 7번보다는 4번 타자가 낫지 않을까요?’ 하는 질문 또는 부탁도 금물이다. 매시니의 선수들은 모두가 투수이고, 모두가 4번 타자를 하는 게 또 규칙이다. 여러 포지션을 경험함으로써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하는 게 목표다. 가뜩이나 열심히 뛰는 선수들에게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파이팅’은 얼핏 격려 같지만 그 자체로 ‘노오력’ 강요와 다르지 않다. 어른들이 할 일은 그들이 함께 어깨를 겯고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재미있게 포지션을 나눠 야구를 할 수 있도록 그라운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목 마르다고 얼른 물을 건네주고, 미래를 미리 재단해 포지션을 결정하는 것 역시 야구를 망치는 일이다. 그 야구는 재미도 없을뿐더러 꼭 진다.

매시니는 2012년 세인트루이스의 감독이 됐다. 세인트루이스는 올시즌에도 메이저리그 최다인 100승을 거뒀다. 그러니까, 이건 야구 얘기다.

<이용균 | 스포츠부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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