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좋다, 한국사회에 부는 '외로움' 열풍

박송이 기자 입력 2016. 2. 2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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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현상’으로 인식 변화

‘혼밥생활자의 책장’. 얼마 전 문을 연 팟캐스트 이름이다. 팟캐스트를 만든 김다은씨는 자취생활을 오래 한 ‘혼밥족’이다. 김씨가 팟캐스트를 만든 건 단순했다. “주말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시끌벅적하고 화려하고 번잡한 텔레비전 속 이야기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내 감정과 참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 같은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혼자’라는 말이 갖는 긍정적 기능에 주목했다. ‘관계맺기’가 스펙이 된 한국 사회에서 관계에 대한 집착이 만든 병폐들이 많았다. 김씨는 “혼자 있는 사람이 갖는 소수성 그 자체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불쌍하게 여기거나, 외로워서 어떡하냐, 사회성이 없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 고독함을 잘 다스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감당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과 관계를 잘 맺어야 타인과도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 자기를 아는 건 혼자 있을 때다. 팟캐스트는 책이라는 소재와 함께 혼자 사는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혼자’는 집단주의와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단어로 여겨졌다. ‘혼자’는 개인의 흠결로, ‘고립’과 ‘단절’을 연상시키고 ‘가족해체’ ‘고독사’ 등의 사회문제와 연결됐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 김정운 교수는 한국 사회를 ‘고독 저항 사회’로 정의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독은 아직 낯선 단어다. 고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따름이다. 그래서 아직 건강할 때 그렇게들 죽어라고 남의 경조사에 쫓아다니는 거다. 내 경조사에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바쁜 이유는 고독을 인정하지 않는 ‘고독 저항 사회’인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보다 고령화사회를 먼저 시작한 일본은 ‘외로움’의 긍정적인 가치를 일찌감치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자리잡았다. 2015년 일본에서 화제가 됐던 책은 <103세가 돼서 알게 된 것-인생은 혼자라도 괜찮아>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미술가 시노다 도코가 인생을 살아가는 법과 즐기는 법을 전하는 책이다.

일본의 한 1인 전용 식당 /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근 한국 사회의 가구 변화 추세와 문화의 흐름은 한국 사회도 ‘혼자’를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현상’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2월 1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가족 변화에 따른 결혼·출산형태 변화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인가구 수는 30년 사이 8배 가까이 늘어났다. 1985년 66만1000가구였던 1인가구는 2015년 현재 506만1000가구로 증가했다. 고령화가 가속화된 20년 후인 2035년에는 1인가구가 2세대 가구를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1인가구의 증가와 함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혼밥’과 ‘혼술’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혼자’를 키워드로 한 출판물들도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사이토 다카시), <고독이 필요한 시간>(모리 히로시), <나와 잘 지내는 연습>(김영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김정운) 등은 모두 ‘혼자’를 키워드로 한 책들이다. 이들 책들은 ‘혼자’라는 존재기반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역설한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 김정운 교수의 말이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고령화 사회, 1인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외로움’은 개인이 선용해야 할 하나의 능력이라는 이야기이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쓴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외로움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한국 사회에서도 외로움의 속성을 탐색하고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는 외로움을 인간의 실존적 본질이나 속성에 있다고 보지 않고 예외적 상황, 일탈적 상황이므로 없애야 하는 것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외로움을 인간의 실질적 속성으로 본다면 그 속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탐색하는 게 필요하다. ‘나는 외롭지 않아, 외로울 수 없어’라는 식으로 외로움을 억압하고 옆으로 치워버리는 게 아니라 자기를 인식하는 탐색과정의 하나로 외로움이 자리잡아야 한다.” 자신을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능력이다.

그러나 노명우 교수는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능력이 모든 계층에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책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경제적 조건에 따라 결정지어진다고 말한다. “‘어쩌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독립을 부르짖기가 가능할까? …경제활동인구로 데뷔하고 생존경쟁에 휘말리는 순간 ‘어쩌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은 간과 쓸개를 집에 두고 다녀야 한다. 고용에, 생존에 목매여 있는 한 독립이 가능할까? …가난한 사람은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혼자일 수 있기 위해 집단으로부터 잠시나마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계층의 하한선은 중산층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치타델레(몽테뉴가 만든 절대적인 자신만의 거처)와 같은 상황은 권능을 계발하는 기회이지만, 경제적 하층에게 치타데렐와 같은 상황은 삶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 사회를 가로지르는 트렌드가 된 ‘혼자’ ‘외로움’이라는 담론은 경제적 상층의 담론에 그치기 쉽다고 지적한다. 노명우 교수는 “결국 ‘외로움’도 ‘자기결정’이나 ‘외로움을 통한 생산성’을 강조하게 되면 자기계발과 비슷해지는 문제에 빠진다. 외로움을 통해서 자기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사실 경제적 취약계층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잠깐 그 외로움 담론에 공감하며 가슴 뛰어 하다가도 실제로 나는 실현할 수 없는, 결국은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외로움이 갖는 힘’에 주목하는 시선들이 많아지지만 외로움이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최종적으로 해야 할 문제다.”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되는 현상은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특정 계층만 향유하는 가치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데 고민이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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