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저만 불편한가요?" 비난 부추기는 사람들

양지호 기자 2016. 5.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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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저격수] '안중근 의사 논란' 설현 사진에 "화장하고 사과하나" 비난 댓글 특정 대상에 불편하다며 공격.. 역풍 불면 조용히 자취 감춰 "잘못된 건 지적해야" 옹호도

#"사과하는데 메이크업? 나만 불편한가, 뭔가 사죄하는 자세가 안 된 것 같은데." 안중근 의사를 알아보지 못해 논란을 일으킨 걸그룹 AOA의 설현이 지난 16일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는 사진에 달린 댓글이다. 이날은 AOA가 신곡 쇼케이스를 펼친 날이었다.

#"이거 저만 불편한가요?" "의상 나만 불편해요?" 최근 필라테스 강사 양정원(27)이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해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운동을 하는 장면에 제작진이 삽입한 자막. 노출이 심해 아이와 함께 보기 불편하다는 인터넷 반응에 제작진이 보여준 대응이다. 이 방송은 밤 11시부터 한다.

◇특정인 공격 선동하는 프로불편러?

사이버 공간에서 습관적으로 '불편하다'는 말을 계속해 '프로불편러(pro+불편+er)'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표현이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다. 형식적으로는 상대방에게 묻는 것 같지만, "이거 문제 있으니 함께 비판해줘"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설현의 사과 사진에 달린 댓글처럼 '불편하다'며 특정 대상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는 경우가 그렇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누적 조회 수가 5억회가 넘는 유명 인터넷 방송인(BJ) '대도서관'(본명 나동현·38)은 '아줌마 논란' 끝에 사과를 하고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다. 게임에서 자신의 물건을 훔쳐 가는 여성 캐릭터를 보고 "이 아줌마야"라고 했다가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라며 트위터 사용자들이 그를 '여성 혐오자'로 몰았기 때문이었다.

삼포(취업, 결혼, 연애 포기) 세대의 감성을 잘 담아냈다며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과 선거송 협약을 맺었던 '중식이밴드'도 곤욕을 치렀다. 헤어진 애인의 몰래카메라 영상을 보고 느낀 슬픔을 담은 '야동을 보다가'라는 노래가 '남에겐 일상의 공포로 다가오는 심각한 범죄적 일을 자신의 예술적 영감으로 이용해 불편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선거송이 아닌 앨범 수록곡에 얽힌 문제로 그는 사과문을 써야 했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문제제기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도서관의 '아줌마' 표현에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트위터 사용자는 본인에게 화살이 돌아오자 계정을 삭제하고 자취를 감췄다. 또 불편하다는 본인 주장에 호응이 없으면 "제가 별걸 다 불편해했네요"라고 말하며 꼬리를 자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본인은 어떤 위험 감수도 하지 않으면서 유명 인사를 포함해 누구든 공격할 수 있는 인터넷의 비대칭적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이렇게 익명 SNS에서만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네티즌을 'SJW(social justice warrior·사회 정의 투사)'라고 부른다. '키보드 워리어'와 비슷한 뜻이다.

◇"불편함이 필요한 사회"

하지만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프로둔감러'보다는 '프로불편러'가 사회에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영미권만 해도 소수자 인권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의식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며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 '프로불편러'라는 말로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들을 희화화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작년 성폭력을 암시하는 표지 사진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잡지 '맥심'의 전량 회수는 이런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모여 가능했다.

한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희화화된 이 말을 차용해 '천하제일 프로불편러 대회'를 열기도 했다. 대회 우수작으로 뽑힌 사연은 "왜 남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건가요. 공동 일이면 집안일 '나눠'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라는 불편을 털어놓아 가사(家事)가 남편과 아내의 공동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커뮤니티는 "그냥 둥글게 살라고 하지만 '모난 돌' 취급을 받아도 잘못된 것은 지적해야 더 나은 세상이 된다는 생각에 대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원 교수는 "수준 높은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진통"이라며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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