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건물주 리쌍은 '용산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입력 2016. 7. 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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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7일 오전 서울 신사동, 유명 힙합 듀오 리쌍의 건물에 세 들어 있는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한 강제철거가 중단되자 가게 주인 서윤수 씨가 눈물을 흘리며 맘상모 회원들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지난 7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유명 힙합 듀오 리쌍의 건물에 세 든 상점 '우장창창'에 대한 강제 철거가 집행됐다. 그리고 상인·시민 단체가 이를 막아서면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일단 강제 집행은 중지된 상태다. 하지만 사람들은 건물주 리쌍을 편드는 쪽, 세입자인 상인을 편드는 쪽으로 나뉘어 온라인 등에서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곰곰이 따져 보면 '이게 누구를 편들 일인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리쌍이 스스로를 '우린 평범한 너희와는 급이 달라'라는 비뚤어진 계급의식을 지녔다면 모를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공간에 머무는 사회 구성원인 까닭이다.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시민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도와야 하는 것이 이치 아니던가. 그렇게 사회라는 공동체는 보다 안녕하게 굴러가는 법이다.

리쌍 측이 100여 명의 용역과 포크레인까지 동원해 가며 세입자에 대한 강제철거를 집행한 데는 '법'의 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법원은 리쌍의 건물에 세 든 상인이 임대계약 종료시점에 건물주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거 명령을 내렸다. 결국 리쌍 측은 소위 '법대로' 일을 처리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 법이라는 것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간과하게 된다. 법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서 당대 사회상과 권력구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다. 단적인 예로 그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내몬 것 역시 민주정치를 받들던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사법제도가 아니던가. 소수의 편을 드는 데 치중하던 사법체계는 사회가 민주화 될수록 보다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누리는 방향으로 개선되기 마련이다.

리쌍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단은 '상가임대차보호법'(상가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상가법은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 개정이 이뤄졌다. 그런데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권리인 기본권을 재산권보다 우선 보호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이 "계약만료 한 달 전까지 양측이 서로 갱신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어서 자연히 갱신이 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우장창창은 상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해서 그렇게 자연히 갱신이 안 된다. 이게 법이다.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법이 참 그렇다"고 지적한 것이다.

7일 오전 서울 신사동, 유명 힙합 듀오 리쌍의 건물에 세 들어 있는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한 강제철거가 집행된 가운데 경비용역 100여 명과 가게 주인 서윤수(39)씨를 비롯한 맘상모 회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리쌍은 '법대로 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일로 갈등을 빚던 상대가 "그래, 그럼 법대로 합시다!"라고 앙칼지게 내뱉는 순간, 그 말의 맥락을 본능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제 당신과는 소통을 끊고, 내 이익만을 추구하겠어"라는 숨은 뜻 말이다.

이러한 불통의 의지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흔히들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말하는 법이 자본가, 권력가 등 사회적 강자의 입장만을 배려하는 데 치중해 왔다면 더욱 그러하리라.

이 같은 시대적 흐름 안에서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극심한 '젠트리피케이션'에 시달려 왔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도심 개발이 가속화 되고, 이에 따라 집값, 임대료가 오르는 까닭에 원주민들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현상 말이다. 이 과정에서 생존이 걸린 원주민들의 기본권은 철저히 무시돼 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정점에서 여전히 아우성 치고 있는 '용산참사'의 기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에 반발하던 철거민 등이 망루 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의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불이 났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깊이 뿌리내렸던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망루에 올라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들은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절규했다. 하지만 국가권력은 그들의 목소리를 짓밟았고, 그 과정에서 경찰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모두가 무자비한 자본의 논리와 이를 비호해 온 국가권력의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그렇게 용산참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용산참사를 경험해야만 했다.

아주대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저서 '세상물정의 사회학'(사계절·2013)에서 용산참사를 언급하며 "개인은 단순히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품위 있는 사회를 원한다. 개인은 품위 있는 사회 속에서만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산에서 개인들은 외쳤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개발 이익을 탐하는 자본의 논리는, 힘없는 개인을 보호할 의사가 없는 국가는, 현대판 영혼의 노예인 용역깡패는, 그리고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심한 사회는 그날 용산에서 사실상 개인을 살해했다"고 적고 있다.

맘상모에 따르면, 리쌍은 강제집행 과정에서 사람들이 다치고 쓰러진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도 집행을 계속해 달라고 했단다. 집행이 최종적으로 실패하자마자 법원에 곧바로 추가 집행을 요청했다고도 한다. 리쌍과 갈등을 빚는 세입자 서윤수 씨는 "계속 장사를 하고 싶다. (리쌍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오해가 더욱 커진 것 같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데뷔곡 '러시'(RUSH) 등을 통해,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 온 힙합을 무기로 각박한 세상과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다지던 리쌍을 기억한다. 동시대인으로서 용산참사의 아픔을 선명하게 공유하고 있을 리쌍이 "여기 사람이 있다"는 개인의 절규를 애써 외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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