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의 왕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2014. 10. 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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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별 / 명왕성

▶ 어릴 때 외웠던 행성의 순서 기억하십니까?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그런데 8년 전 이 순서에서 '명'이 사라졌습니다. 명왕성은 행성의 자격이 없다고 결론이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명왕성을 그리워합니다.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명왕성이 행성 자리를 유지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우라노스를 쫓아내고 신들의 왕 자리를 차지한 크로노스는 항상 불안했다. "너도 아들에 의해 쫓겨날 것"이라는 저주 때문이었다. 불안감을 못 견딘 그는 아내 레아가 아이를 낳는 족족 삼켜버렸다. 견디다 못한 레아는 막내 제우스를 빼돌리고 대신 바위덩이를 삼키게 했고, 제우스는 장성해 아버지의 배를 가르고 형제들을 구했다. 첫째로 태어났던 하데스는 가장 먼저 삼켜진 탓에 세상에는 마지막으로 꺼내졌다. 아버지 크로노스의 종족인 티탄족과 전쟁 끝에 승리한 올림푸스 신 3형제는 하늘과 땅, 바다, 명계(지하)를 나눠 지배하기로 했다. 첫째로 태어났으나 막내가 된 하데스는 명부(冥府)의 왕, 명왕이 됐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하데스의 모습은 음울하기 그지없다. 그가 유일하게 반한 여성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억지로 아내로 삼았지만 그나마 1년 중 3분의 1만 같이 지낼 수 있다. 머리 3개 달린 지옥견 케르베로스, 죽은 사람들을 강 건너 죽음의 세계로 태워주는 뱃사공 카론 등을 신하로 삼고 영원한 어둠의 세계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신. 하데스, 로마 신화에서는 플루톤이라고 불리는 이 신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은 명왕성은 처음부터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행성의 자리마저 빼앗긴 채 태양을 돌고 있는 그 명왕성 말이다.

LA다저스 에이스 커쇼의 종조부가 발견

행성(Planet)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떠도는 별'이라는 명칭에서 유래됐다. 밤하늘을 주의깊게 살피던 옛날 사람들은 수많은 별들 중에서도 유독 독특한 움직임을 보이는 5개의 별을 발견했다. 행성을 제외한 다른 별들은 너무 멀리 있는 탓에 하늘에 고정돼 천구와 함께 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다섯개의 별은 혼자서 하늘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가끔씩 거꾸로 가기도 한다. 이들 행성과 지구의 공전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역행운동 때문이다. 마치 이들이 별들 사이를 떠도는 것처럼 느껴졌을 터이다. 행성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7세기 바빌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은 이 다섯개의 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다섯 행성과 태양, 달까지 합쳐서 7개의 행성에 신의 이름을 붙였고, 이 이름은 로마식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동양에서도 일찌감치 이 별들에 '수금화목토'의 이름을 붙이고 오행을 음양(태양과 달)과 함께 세상을 이루는 이치로 여겼다.

'천해명' 세 행성은 나중에 과학기술이 발전한 뒤에 발견됐다. 이들은 맨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19세기에, 명왕성은 20세기 초 발견됐다. 명왕성의 존재는 일찍부터 과학적으로 예견돼왔다. 천왕성의 궤도가 무언가의 영향을 받아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해왕성이 나중에 발견됐지만 그것만으로도 천왕성의 궤도 변화를 설명하기 힘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9번째 행성 찾기에 나섰고, 결국 1930년 클라이드 톰보가 행성운동을 하는 천체를 발견했다. 직접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톰보는 현재 엘에이(LA) 다저스의 에이스 투수인 클레이턴 커쇼의 종조부(외할아버지의 형)다. 커쇼는 토크쇼에서 "명왕성은 여전히 내 마음속의 행성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별에 무슨 이름을 붙일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영국의 11살 난 소녀가 제안한 명왕성(Pluto·플루톤의 영어식 표현)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춥고 어두운 곳을 떠도는 행성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이름에 얽힌 또다른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있다. 1940년 발견된 원소 94번에 이 행성의 이름이 붙었기 때문이다. 92번 원소는 천왕성(우라노스)의 이름을 따라 우라늄, 93번 원소는 해왕성(넵튠)의 이름을 따라 넵투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94번에는 이 전통에 따라 명왕성의 이름을 부여했다. 플루토늄. 말 그대로 죽음의 원소,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원소는 이렇게 탄생했다.

캄캄한 지하세계 다스리는하데스의 이름을 딴 작은 천체9번째 행성으로 사랑받았지만2006년 새 기준에 맞지 않아결국 왜행성으로 강등됐다달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데다더 큰 천체도 속속 발견돼과학적으로는 탈락 맞지만일반인 모아놓고 토론한 뒤투표하니 "행성 맞다" 압도적

태양 한바퀴 도는 데 214년

명왕성은 이렇게 숱한 화제를 모으며 발견됐지만 속속 과학적인 데이터가 밝혀지면서 행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명왕성의 질량은 지구의 0.24%밖에 되지 않고 지름도 달의 66%인 2300여㎞밖에 되지 않는다. 표면적은 남아메리카 대륙보다 더 작다. 태양을 돌고 있긴 하지만 공전주기는 214년이나 되고 심하게 많이 찌그러진 타원궤도를 갖고 있어서 해왕성의 궤도 안쪽까지 침범하기도 한다. 또 위성인 카론이 너무 큰 때문에 카론이 명왕성을 도는 것이 아니라 카론과 명왕성이 그 사이 중심점을 기준으로 맞물려 돌고 있는 것도 밝혀졌다.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줄 정도의 중량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한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명왕성의 행성 지위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긴 것은 2003년 세드나와 2005년 에리스의 발견이다. 세드나는 명왕성과 크기 차이가 크지 않고, 에리스는 심지어 명왕성보다 더 크다. 이들도 행성으로 분류해야 하는가가 쟁점이 됐다. 결국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새로운 행성의 기준을 만들고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박탈했다.

국제천문연맹이 만든 행성의 조건은 두가지다. 태양의 주위를 돌며 자신의 중력으로 둥근 구체를 형성할 정도가 돼야 한다. 공전 궤도상에 있는 자신보다 작은 천체를 없애야 한다. 명왕성은 태양의 주위를 돌며 둥글기는 하지만 자신의 궤도상에 다른 천체를 없앨 정도로 크지는 않다. 명왕성은 결국 행성 자리를 내놓고 왜행성(dwarf planet)이 됐다. 에리스, 명왕성, 마케마케, 하우메아, 세레스(케레스) 등이 현재까지 인정된 왜행성이다. 명왕성은 미국인이 발견한 유일한 행성이었기 때문에 미국 천문학계는 크게 반발했고 현재까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탐사선 뉴호라이즌 내년에 도착

과학자들의 추론으로 태양계는 46억년 전 거대한 분자구름이 중력붕괴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태양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태양의 중력에 붙잡힌 천체들이 태양 주변을 돌면서 뭉쳐 행성들이 탄생했다. 미처 행성이 되지 못한 천체들은 왜행성이나 소행성이 됐고, 그만도 못한 천체들은 우주 먼지 등으로 태양계 주변을 떠다니고 있다. 태양계의 크기는 해왕성 바깥의 카이퍼대와 오르트 구름까지 모두 포괄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태양으로부터 명왕성의 평균 거리가 39AU(천문거리·지구와 태양과의 평균거리로 1억4960만㎞)인데 오르트 구름은 멀리는 10만AU까지 펼쳐져 있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 카이퍼대 등까지 합치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커다란 천체의 수는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박탈당한 것은 과학적으로는 옳은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명왕성을 사랑한다. 지난달 15일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제물리학센터는 저명한 천문과학자들을 초청해 명왕성이 행성이냐 아니냐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오언 깅그리치 하버드 천문학 명예교수는 "행성은 역사적인 개념"이라며 명왕성을 옹호했지만 개리스 윌리엄스 국제천문연맹 소행성센터 박사는 "만약 명왕성을 행성으로 친다면 당장 행성의 수는 24개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발견이 이뤄짐에 따라 10년 이내에 50에서 100개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걸 다 학생들에게 외우게 해야 하느냐"고 반론했다. 과학자와 교사, 일반인 등으로 이뤄진 청중들이 토론 뒤 명왕성에 행성 지위를 줘야 할 것이냐를 묻는 거수투표를 했는데 대부분이 행성 지위를 줘야 한다고 투표했다. 보통 사람은 왠지 명왕성에 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명왕성은 행성이다'(plutoisaplanet.com) 누리집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고, 행성의 순서를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외우고 있는 사람들이 '수금지화목토천해'로 외우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지구로부터 약 59억㎞, 태양빛이 5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하는 캄캄한 우주에서 지표면 온도 영하 230℃의 명왕성은 고독한 공전을 계속하고 있다. 카론, 닉스(밤의 여신), 히드라(머리 100개 달린 뱀), 케르베로스, 스틱스(저승에 흐르는 증오의 강) 등의 위성을 거느리고 우주를 유영하는 명왕성은 말 그대로 명부의 왕 하데스를 닮았다. 하지만 내년에는 명왕성에도 새로운 친구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명왕성 탐사선 뉴호라이즌호는 최근 해왕성 궤도를 지나 명왕성에 접근하고 있다.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기 전인 2006년 1월 발사된 이 탐사선은 9년 반에 걸친 긴 우주 여정 끝에 내년 7월부터 명왕성의 궤도를 탐사할 예정이다. 뉴호라이즌호가 고독한 명왕성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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