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다 해놓으면 건물주가 빼앗죠"

입력 2014. 1. 14. 20:35 수정 2014. 1. 1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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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임경호,김동환 기자]

종로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신 아무개씨가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가권리금 약탈 피해사례 발표회'에서 자신의 사연을 말하며 울먹이고 있다.

ⓒ 김동환

"웃은 지 10개월 됐어요. 아기 본 지도 몇 달 됐고요. 지금도 진통제와 수면제를 가지고 다녀요. 아마 보험금이라도 몇천만 원 탈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이 가게 하나 지킨다는 마음으로 몸이 으스러져도 열심히 일했는데..."

곱창 기름때가 묻은 유니폼 차림 그대로 나온 최아무개 사장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울먹임은 이내 하소연으로 변했다. 최씨는 얼마 전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3억 5000만 원이 들어간 점포를 바뀐 건물주에게 그대로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이 합법적이라는 게 더욱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상가권리금 약탈 피해사례 발표회'를 열었다. 민 의원은 "최근 기획부동산과 건물 매입자가 상가세입자의 권리금을 빼앗기 위해 손을 잡고 의도적으로 상가 건물을 매입해 세입자를 내쫓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면서 "오는 16일에 상가 세입자 권리금 법제화와 관련한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순진한 상가 세입자들 이용해서 권리금 약탈"

최아무개 사장은 지난 2011년 3월, 홍대 인근의 한 상가를 빌려 곱창집을 열었다. 건물주와 영업 기간 보장 얘기가 잘 된 덕에 인테리어와 시설비로만 2억여 원을 투자했다. 보증금 포함 총 4억 5000만 원의 초기 투자비는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빌려 마련했다.

최초 월 임대료는 700만 원이었다. 최씨는 "쉽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열심히 일한 덕에 가게가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고 설명했다. 그의 가게에 문제가 생긴 건 장사를 시작한 지 1년여 지난 2012년 11월이었다. 최씨 점포 인근에서 영업하고 있던 동네 상인이 최씨 가게가 입주해 있는 건물을 통째로 매입한 것이다.

새 주인은 갑자기 월세를 1100만 원으로 올렸다. 이어 앞으로 1년만 더 장사하고 가게를 비우든지 아니면 당장 가게를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최씨는 어이가 없었지만, 관련 법령을 뒤져본 결과 자신에게는 새 주인의 요구를 거부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가 세입자에게 5년간의 영업을 보장해주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있었지만 환산보증금이 4억 원 이상인 최씨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최씨는 "새로운 주인이 법의 맹점을 이용해 자신을 쫓아내려고 한다"고 호소했다. 홍대 주차장 거리에서 최씨의 점포와 비슷한 규모의 가게를 열려면 수억 원에 달하는 권리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건물 담보대출을 이용해 상가 건물 자체를 매입해버리면 손쉽게 권리금 없이 가게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홍대 앞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신가람씨는 "정말 나쁜 마음을 먹으면 순진한 상가 세입자들 이용해서 돈 벌기 매우 쉽다"고 설명했다. 홍대, 종로, 가로수길 등 환산보증금이 높은 도심 상권에서 상가 세입자가 자비를 들여 점포 인테리어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건물을 매입하고 세입자를 내쫓으면 된다는 것이다. 건물 매입비는 건물 담보대출로 충당 가능하다. 그는 "상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익숙한 일들"이라고 덧붙였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가권리금 약탈 피해사례 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임경호

"용산참사 역시 상가 권리금 문제와 닿아 있어"

사례발표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장 주된 이유로 상가 권리금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상가가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가치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법적인 보호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김영두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차인이 점포를 양도양수 할 때 임대인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권리금은 임차인이 열심히 영업해서 쌓아놓은 '영업 가치'인 만큼 임대인과 관계없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문제는 영업이라는 상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 제도개선위원회 사무국장은 권리금 보상은 물론이고 권리금을 받을 권리까지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개발 지역의 상가 역시 권리금을 얹어서 거래된다. 그러나 마지막 세입자는 권리금을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파산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는 "5년 전 용산참사 역시 상가세입자들의 권리금 문제와 맥락이 닿아있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국장은 "계약 갱신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리금 약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리금 문제를 법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면서 "권리금 문제의 해결이 상가세입자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홍대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최 아무개씨가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상가권리금 약탈 피해사례 발표회'에서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있다.

ⓒ 김동환

"연간 영업 순이익 1000만 원이면 권리금 1억 원이 적당"

이날 발표회에서는 상가 권리금 산정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들도 개진됐다. 김철호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 기업 가치평가 방법을 보면 5년 이상 생존을 한 상가라는 순이익의 10배 정도의 무형자산 가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연간 영업순이익 1000만 원이라면 권리금은 1억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영국은 건물 임대차와 관련하여 판례법 이외에 특별법을 제정하고 규율하고 있다. 가령 임대차법에서 5년 이상 임차인의 영업을 통해 건물 가치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보다 높은 차임을 받을 수 있게 되면 그에 따른 보상청구권이 인정된다.

프랑스의 경우는 영업용 건물의 임대차에 관해 프랑스 민법에 임차인이 임차물을 전대하거나 타인에게 양도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합의에 의해 양도나 전대가 금지될 수 있지만, 상법으로 임차인의 임차권 양도 가능성을 확대해 놓았다. 임차인의 영업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홍대 상가나 가로수길 등에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점포들이 많은데 과거 법으로는 이에 대한 법률적 보호가 어렵다"면서 "임차인을 위한 권리금 약탈 금지법을 당장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창조경제 등을 논의하는데 이는 특허나 상호 등 무형자산에 대한 가치 인정이 있어야 발전 가능한 분야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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