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승우의 사진일기] 바로크의 기괴함은 어디서 왔을까

채승우 2014. 11. 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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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은 벽화다. 이곳 '파르네시나' 저택들은 방이 모두 벽화로 장식돼 있었다. 로마의 다른 많은 건물들에도 벽과 천정이 그림들로 치장돼 있지만, 이 파르네시나 빌라의 벽화는 독특했다. 어떤 방은 언뜻 보기에 커튼으로 둘러쳐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다가가 보면 모두 벽화였다. 커튼 자락이 흔들리는 모습까지 교묘하게 그려, 보는 이의 눈을 속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건물의 많은 그림이 눈속임이었다. 제일 흥미로운 것은 2층의 큰 방이었는데, 이 방은 유리창을 제외한 모든 면에 기둥이 있는 듯 그려져 있었다. 마치 기둥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기둥 사이로 바깥 풍경을 넘겨다 보는 듯했다.

우리는 이 눈속임 그림이 가장 그럴듯하게 보이는 자리가 어디인지 찾아보았다. 원래 이런 눈속임 그림은 시점 하나를 기준으로 그리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보는 것이 가장 멋지다. 창 쪽에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 자리는 정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기준의 위치가 왜 한가운데가 아닐까? 뭔가 화가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도 같았다. 무엇 때문일까?

이런 눈속임 그림의 방에서는 기준의 위치에 서지 않으면, 벽화는 오히려 일그러져 보인다. 화가의 자리는 어디였을까? 아마 그 시절 화가의 자리는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을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려놓고도 자신이 그린 그림이 제대로 보이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 그러니 자신은 자기 그림의 일그러진 모습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는 예술가의 자의식이 커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현대인만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의 예술가들도 이런저런 불안에 시달렸을 법하다. 생계 유지의 필요나 신분에서 오는 불안감, 혹은 작품에 대한 평가를 의식한 불안감…. 지금 나로서는 그 정체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불안은 작품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

이 빌라 파르네시나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발다사레 페루찌가 1500년대 초에 지은 건물로 전해진다. 벽화도 그가 그렸다. 눈속임 그림들 중에선 이 벽화가 시초에 속한다. 페루찌가 이 건물을 지은 지 얼마 있지 않아 로마에서는 새로운 건축의 흐름이 탄생했다. 그 유명한 '바로크' 양식이다.

'바로크'라는 말은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 말이다. 이 단어를 처음 예술의 용어로 사용한 곳은 18세기 말 루소의 '백과사전'이다. 그때부터 '바로크'라는 말은 이상하고 불규칙적이며 균형 잡히지 않은 예술의 흐름을 지칭하기 시작했다.

바로크가 퍼져 나간 데는 정치적인 배경도 있다. 유럽에서 종교개혁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16세기 로마의 카톨릭 교회는 종교개혁 움직임에 맞서, 자신들의 정당함을 증명하기 위해 화려한 성당들을 지어 나갔다. 그들이 요구한 화려한 건축에 바로크의 정신이 맞물렸다.

이런 이야기들은 미술사책에 나오는 설명들이다. 하지만, 카톨릭 교회가 화려한 건축을 요구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바로크를 다 설명할 수 없다. 기괴하고 불규칙적이며 균형 잡히지 않은 특징을 다른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어쩌면 발다사레 페루찌가 가졌던 깊숙한 곳의 불안이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우리 부부는 남미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남미 대부분의 도시가 광장과 성당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는 16세기 스페인인들이 남미를 정복한 후 건설한 도시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들여온 바로크 형식이 그곳 교회에도 적용됐다. 유럽에서 넘어 온 바로크가 남미의 풍토와 뒤섞인 결과, 그곳 바로크는 화려함과 기괴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했다. 우리 눈에는 광기처럼 보였다. 그 때부터 그 광기의 정체가 궁금했다. 유럽에 온 후 여러 나라를 지나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 시원(始原)을 본 것이다.

로마에는 수많은 바로크 성당들이 있다. 우리는 성당들을 찾아 다녔다. 역시 눈속임 그림들이 있었다. 성당 천정화는 마치 하늘을 향해 열린 듯 그려졌다. 어디까지가 실제 건물이고 어디서부터가 그림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교묘한 그림들이었다.

그 천정화를 그린 화가들은 그림의 안과 밖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림의 경계를 넘을 때 화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틀을 벗어나는 경험은 화가에게는 자기분열에 가까운 경험 아니었을까? 며칠 동안 로마의 바로크 건축물들을 돌아보는 동안, 내 머리 속은 또다른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근대적인 예술가가 탄생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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