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는 돈 안돼" 지갑 닫은 기업들.. 경제 살릴 돈이 안 돈다

이인열 기자 2014. 12. 11.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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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줄면서 한국경제 먹구름.. KDI, 내년 성장률 3.5%로 낮춰] 내수 부진·경기 불확실.. GDP 대비 설비투자액, 10년새 12%서 8%대로 기업 설비투자도 마이너스.. 투자 감소로 경기 회복 지연

산업용 밸브를 제조하는 대전 유성구 중소기업 A사는 최근 신규 공장을 미국 앨라배마에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사는 2003년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특화된 밸브를 만들어 발전소와 석유화학 업체에 납품한다. 다른 지역에 제2 공장을 짓는 식으로 사세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제3 공장 신설을 검토하면서 국내보다는 미국 앨라배마가 더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회사 사장 B씨는 "한국은 앞으로 개선되기보다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고 국내 산업 수요도 한계가 있어 국내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가 쪼그라들고 있다. 2000년만 해도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설비투자액 비중은 12.2%였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인 2009년에도 9% 선을 유지했지만, 지난해엔 8.6%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 3분기엔 8.2%를 기록해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투자를 견인할 만한 신(新)성장 산업이 등장하지 않고, 기업도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국내 투자는 답이 안 나온다"

지난 3분기 설비투자는 2분기 대비 0.5% 감소했다. 1분기에 설비투자가 1.9% 감소한 데 이어 2분기에 1.1% 반짝 증가했다가 다시 3분기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올 들어 투자가 늘기는커녕 뒷걸음질 친 것이다.

내수가 부진한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길이 좁아지면서 기업 입장에선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KDI가 최근 1056개 상장사의 매출을 조사한 결과 지난 3분기(7~9월) 매출액 증가율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회복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기업 수익성이 악화하는 만큼, 기업들이 당분간 설비 투자를 늘릴 가능성은 줄어든다.

특히 최근엔 중국·유럽연합(EU) 등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끼면서 수출 기업들의 대규모 선행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상대로 중간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출 기업들의 투자가 증가했지만 최근엔 중국의 자급률이 상승하면서 국내 연관 제조업의 설비투자가 연쇄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기업들도 투자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수요 부진과 불확실한 전망을 꼽고 있다. 정책금융공사가 지난 10~11월 3064개 주요 사업체를 설문조사한 결과 설비투자 부진 요인으로 39.2%가 '국내외 수요 부진'을 꼽았다. '불확실한 경기전망'(31.8%) 때문이라는 이유가 뒤를 이었다.

조동철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기업들 입장에서 투자를 하려 해도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저성장 기조에서 탈피하는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투자 부진과 경기 회복 지연의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투자 부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경제 구조가 수출·제조업 중심에서 내수·서비스업으로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서비스산업으로 바꾸려고 하는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채 경기 자체가 가라앉고 있어 기업들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 투자는 토지 가격, 인건비 등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앞으로 상황도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투자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자 부진 고착화 막아야"

이대로라면 고령화로 인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맞은 일본의 전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990년 12%에서 2010년 22.6%로 확대됐고, 한국은 2010년 11%에서 2030년 23.2%로 늘어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노동 투입이 줄어들고 설비투자가 위축되면서 저(低)성장의 함정에 빠진 일본 경제의 패턴을 한국이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자 부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금융·재정·규제 완화 등 가능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과 규제 완화를 병행하면서 일단 위기를 탈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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