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훈수 "하르츠개혁 한국에 맞지 않다"

김명지 기자 2015. 9. 7. 06: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요르그 미하엘 교수/사진=이덕훈기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요르그 미하엘 교수/사진=이덕훈기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요르그 미하엘 교수/사진=이덕훈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행사 때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der)전 독일 총리를 만나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독일의)‘하르츠 개혁(Hartz I~IV)’이 귀감이 됐다”고 극찬했다.

하르츠개혁은 한국이 벤치마킹해야할 정책일까. 지난 10년 동안 독일의 ‘하르츠개혁’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노동 연금 정책을 연구해 온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Jörg Michael Dostal)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독일의 하르츠개혁은 한국에 맞지 않습니다(not applicable).”

도스탈 교수는 한국 정부가 하르츠개혁을 적용하는데 우려를 표했다. 또 독일에서 하르츠 개혁의 부작용으로 사회적 문제가 불거졌고, 이에 따른 정부 주도의 재개혁(re-regulation)이 추진 중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 하르츠 개혁이 한국의 현 상황에 맞지 않은 이유가 뭔가.

“한국과 독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야 한다. 한국과 독일은 수출 의존적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독일은 유럽연합(EU)등 유럽권에 영향을 많이 받고, 한국은 미국과 중국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식이다.

수출 의존적 국가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봐야 한다. 하나는 생산 비용을 낮춰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기술 수준을 높여서 질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산업 구조로 봤을 때 한국과 독일은 차이가 크다. 한국이 삼성 현대 등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독일은 반대로 지역사회와 촘촘히 얽힌 중소기업(강소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에선 대기업 주도의 수출이 이뤄지다 보니, 모든 경쟁력이 대기업에만 집중됐다. 직업 교육도 대기업 중심으로, 심지어 복지도 대기업 중심으로 제공된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 아닌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지원에서 소외되는 이중 구조를 갖게 됐다. 노사협상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노조는 강한 협상력으로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

독일은 다르다. 독일은 지역사회와 노조와 회사가 정기적으로 노사협의회(work council)을 갖는다. 직업 교육도 협의회 차원에서 접근한다. 협의회가 학교와 연계해서 인재를 육성하고 장학금을 주고 인재를 영입한다. 사회 전체가 (노동문제에 있어) 골고루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고 성장하는 구조다.

더욱이 한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현대 한국은 개인의 후생을 오롯이 가족이 책임지는 구조다. (정부는 없다.) 이런 구조에서 노동 개혁을 했다가는 오히려 사회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한국과 독일의 교육제도의 차이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독일에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진로가 갈린다. 대학을 갈 사람은 김나지움에 나머지는 실업계 학교(하웁트슐레, 레알슐레)로 간다. 졸업생의 40% 정도가 인문계 학교인 김나지움에 가고 나머지는 실업계 학교에 진학한다.

한국에서는 대학교가 마치 직업학교화 되고 있지 않나? 대기업과 대학이 산학협력활동을 하는 것으로 안다. 나는 오히려 삼성 같은 대기업이 대학이 아닌 (고등학교 수준의) 직업학교를 세워서 전문 직업인을 양성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 때 이 같은 시도의 일환으로 마이스터교를 만든 것으로 안다.”

― 한국에서 하르츠개혁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일단 하르츠개혁은 ‘노동법’을 수정한 게 아니다. 실업급여와 연금제도를 손 본 것이 개혁의 골자다. ‘실업급여’의 수급기간을 단축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미니잡(minijob)을 만들어 탄력적 저임금 일자리를 늘린 것이다.

한국이 지금 ‘노동개혁’이라고 이야기하는 임금피크제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법 개정, 노조의 협상력을 낮추는 등의 개혁이 아니라는 뜻이다.

독일의 실업률이 낮아지고, 경제가 회복한 것을 하르츠개혁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데,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10여 년의 독일 성장은 유럽 통합에 따른 통화 절하 효과에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독일인으로서 해외에서 하르츠개혁이 각광 받는 것은 의아하게 느껴진다. 슈뢰더 전 총리가 올 초 한국을 방문해 강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일에서 슈뢰더 총리나 페터 하르츠 이사(하르츠개혁을 이끈 인물)는 잊혀진 존재들이다. 하르츠 개혁 이후 슈뢰더 정권은 지지율이 급락했다. 사민당의 지지층의 절반에 해당하는 20만명을 잃었고, 지금까지도 회복불능의 상태에 있다.

지금 독일에서 하르츠 개혁 ‘재개혁’(re-reform)이 논의 중이다.”

(독일 실업률이 낮다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괜찮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미니잡 때문이다. 미니잡은 연금을 수령하며 소일거리를 찾는 할머니에게나 유용한 제도다. 여가 시간을 활용해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사회 진출을 앞둔 초년병에게 미니잡은 반길만한 일자리가 아니다.)

― 하지만 고령화-저성장 사회에서 노동 구조 개혁은 필요한 게 아닌가

“한국이 현대복지국가(modern welfare state) 로 발돋움 하려면, 사회보장제도부터 손봐야 한다. 그리고 한 사회가 이른바 개혁에 성공하려면 기본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안타깝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기초노령연금 등 야당 보다 더 진보적인 사회복지정책을 제안했다. 대통령 집권 기간은 기껏해야 집권 5년이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 개혁을 할 것이 아니라) 복지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고령화에 따른 퇴직 연령 연장이 논의되는 것으로 안다. 독일에서는 얼마 전 퇴직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늘렸다. 나는 요즘 “일하는 시간은 짧게, 일하는 기간은 길게(shorter work time, longer working life)”라는 슬로건을 밀고 있다. 노동 시간은 줄이고, 퇴직 연령은 늦추자는 것이다.

한국도 노인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사회에서 65세로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한다고 해서, 그 나이까지 남아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을 것 같진 않아서 안타깝다. (한국 사람들처럼) 하루에 12시간 씩 일하는 삶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 한국 상황에서 저성장을 타개할 수 있는 해법이 있나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은 이른바 ‘케인즈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지금 한국에선 통화정책을 비롯해 케인즈이론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부작용이 크다. 한국에서 저금리로 가계 대출이 급증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지 않나.

케인즈이론의 관점에서 나는 한국 경제를 살리는 마지막 수단은 최저임금 인상이라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일자리를 줄이는 부작용이 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최근 학계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사이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생활비가 많이 드는 도시다. 임대주택같은 사회기반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현행 최저임금으로 서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영국의 경우는 런던과 런던 근교의 최저임금이 지방과 비교해서 높다.”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교수
▲1969년 독일 카셀 출생 ▲1998년 베를린자유대학 정치학 석사 ▲2005년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글로벌 사회정책 및 국제기구에 대한 전문연구가 ▲2009~현재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교수

하르츠개혁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집권하던 2002년 독일은 지금과 달랐다. 그 당시 독일의 별명은 ‘유럽의 병자’. 동-서독 통일 이후 12년. 높은 실업율에 낮은 생산성으로 국민들의 자존감은 땅에 떨어졌다.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은 위기를 느꼈다. 슈뢰더 전 총리를 필두로 ‘노동개혁’카드를 빼 들었다. ‘독일식 유럽병’의 원인을 강성노조와 방만한 복지재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개혁의 틀도 민간기업에 맡겼다. 폭스바겐의 페터 하르츠 이사가 주축이 됐다.

하르츠 이사는 제일 먼저 실업급여를 손봤다. 지급기간을 32개월에서 12개월로 줄였다. 미니잡(minijob)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비정규직, 중규직과 같은 개념이다. 그로부터 5년 독일 밖에선 하르츠개혁은 유럽 노동개혁의 교본처럼 쓰였다. 2010년 스페인은 같은 이름(los minijobs)의 제도를 도입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