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人터스텔라] 한성호 FNC 대표 "유재석 80억 출혈? 중국 예능 선점하면 진가 드러날 것"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2015. 12.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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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C 엔터테인먼트 한성호 대표. 그는 1999년 ‘굿바이데이’로 데뷔한 가수 출신이다. 현재 회사에서 경영과 음악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사진=고운호 기자
외식 사업이나 패션, 뷰티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오로지 콘텐츠와 아티스트에만 집중하겠다는 FNC 엔터테인먼트의 한성호 대표. 얼마전 쑤닝 유니버설과 유상 증자 파트너 십을 맺었다./사진=고운호 기자
유재석의 ‘런닝맨’은 중국에서도 대표 예능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앞으로 유재석을 중심으로 중국 예능을 공략할 계획이다./사진=고운호 기자
그는 한국음악저작권 대상 록부문 작사가상(2011),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공로패(2011), 골든디스크어워즈 음반 부분 제작자상(2013)을 수상한 바 있다./사진=고운호 기자
기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자하는 그는 전 세계 100개의 고아원, 100개의 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다./사진=고운호 기자
AOA를 비롯해서 FNC 소속 아티스트의 콘텐츠에 과도한 선정성이나 폭력적인 가사는 걸러내려고 노력한다./사진=고운호 기자
10년 무명 기간에는 뭘 해도 되는 게 없었는데, 지금은 하는 것 마다 놀라운 성과를 내는 게 기적이라고 말하는 한성호 대표./사진=고운호 기자
“저를 객관적으로 볼 즈음, 성공이 시작되고, 과신하는 순간 실패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사진=고운호 기자

FNC 엔터테인먼트(이하 FNC) 한성호 대표는 비전이 뚜렷한 사람이다. 올해 7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예능 ‘대박 주’ 유재석을 영입해서 엔터테인먼트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FNC 주식은 유재석의 영입을 발표한 순간 급등, 발표 당일 가격제한폭인 29.81%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현재 FNC는 시가 총액 3천억을 오르내리며 엔터 업계에서 SM, YG에 이어 3위를 유지하고 있다. 키이스트와 JYP가 그 뒤를 잇는다. 대표인 한성호는 700억 이상의 주식 보유로 양현석, 이수만에 이어 연예인 주식 부자 랭킹 3위다.

무명 가수로 10년을 방황했던 한성호는 2006년 R&B가 주류였던 가요계에 생소한 아이돌 밴드 FT 아일랜드를 내놓으며 돌풍을 일으켰고, 씨엔블루, 엔플라잉, 걸밴드 AOA를 잇달아 성공시켰다. 이후, 음악 분야에서 머무르지 않고, 유재석, 노홍철, 정형돈, 이국주, 김용만 등 예능인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정우, 윤진서, 이동건, 정진영 등 배우 진용도 탄탄하게 갖췄다.

올 초엔 KBS2 드라마 ‘후아유-학교 2015’를 내놓으며 제작 신고식을 치뤘다. 이미 예능과 드라마 콘텐츠 제작을 위해 PD와 작가 스카우트도 마무리한 상태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본 등 해외에서 65% 정도의 안정적 매출을 올리던 차에, 12월 초엔 중국 최대 미디어 민영 그룹인 쑤닝 유니버설과 사업 제휴를 맺어, 중국 시장 진격의 깃발을 올렸다.

2006년, 20평 남짓한 회사에 직원 세 명으로 시작한 FNC는 현재 청담동 111번지에 사옥을 지었고, 직원 수는 150명이 넘는다. “3~4년 앞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가, 반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한다”는 전략은 9년 동안 변함이 없다고 한성호 대표는 말한다.

‘보이밴드’ 차별화로 시작해, 9년 만에 유재석을 중심으로 한 ‘예능 한류 왕국’을 꿈꾸는 엔터 비즈니스업계의 신흥 리더 한성호를 만났다. 살집 있는 둥글둥글한 얼굴은 야심은 있어도, 헛된 욕심은 없어 보였다. ‘공격적으로 경영하지만, 결과는 내려놓는다’는 신념이 확고했다.

-상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성장세가 무섭습니다.

“지난 12월 4일에 상장했어요. 오늘이 12월 7일이니까, 1년 남짓이죠.”

-올해 7월에 유재석을 영입하면서, 키이스트와 JYP를 제치고 SM, YG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3위권에 진입했습니다.

“순위는 중요하지 않고요. 예능, 드라마 등 콘텐츠를 만드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확장하고, 중국과 유상증자까지, 1년 동안 계획했던 것을 운 좋게 다했던 것 같아요. 2006년에 회사를 처음 만들었는데, 지금은 새 출발 하듯 다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내년엔 드라마를 세 작품 정도 하려고 해요.”

-얼마 전 전자 유통, 엔터테인먼트를 주종으로 하는 중국의 대형 미디어 민영 그룹 쑤닝 유니버설에서 330억 원을 투자받아 유상 증자를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요?

“쑤닝 유니버설은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민영 기업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잠재력을 알고 진출하려던 차에 FNC와 코드가 맞았어요. 지금 중국은 영화 산업을 비롯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습니다. 짧은 투자라기보다 장기 비즈니스로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드라마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연인’, ‘신사의 품격’의 신우철 감독님도 FNC와 계약했어요.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유명 작가 분들도 계약을 끝냈어요. 우리 아티스트 진출뿐 아니라 한류 콘텐츠를 현지화된 매니지먼트로 제작하는 전략도 가지고 있습니다. 쑤닝은 좋은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회사가 필요했고 FNC도 그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는데 적절하게 맞았어요.”

-한편에선 얼마 전 중국과 유상 증자 방식으로 확장한 것 때문에 컨트롤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S사 Y사 대주주 지분율이 20% 예요. 저는 아직 30%가 넘어요. 이사회 장악이나 경영 터치는 없어요. 유상 증자는 우리 회사가 성장했고, 중국기업과도 발맞춰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증거로 봅니다.”

-중국에 연예인 양성 기관을 설립한 건 인프라 구축 차원인가요?

“1~2년 안으로 중국 콘텐츠 산업 규모가 어마어마해질 거예요. 그런데 중국에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어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시작되던 시기와 비슷해요. 기본이 스타 발굴과 양성인데, 앞으로 누가 인프라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길이 갈리게 될 거예요. 저는 2006년 회사 설립 초기부터 당장의 수익보다 3~4년 뒤의 모습을 예상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려고 했어요. ”

-리더로서 상당히 공격적이고 치밀한 스타일입니다.

“제가 상당히 집요하고 도전적이에요. 사업 초기부터 들판인 줄 알고 뛰었는데, 뒤돌아보니 한발만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인 적도 많았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앞선 기업에 대한 연구, 이 두 가지를 가늠해서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해요.”

-유재석 영입이 회사 성장에 결정적인 동력이 됐죠?

“훌륭한 국민 MC니까요. 서로 코드가 잘 맞았어요. 우리 회사가 화려하고 액티브해 보이지는 않지만, 젊고 깔끔한 이미지인데 그런 면에서 유재석 씨랑 컬러가 비슷해요. 유재석 씨가 자기관리를 잘하시잖아요. 최소한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사람은 어느 정도 놀아도 선을 지키죠. 그런 가치관이 잘 맞았어요. 큰 사건 사고 없이.”

-어쨌든 유재석, 노홍철 등 영입에 80억이 넘는 돈을 쓰면서, 3분기 수익성이 악화하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활동하는 예능인은 회사에 당장 큰 이익률을 낼 수는 없어요. 그분들을 기반으로 중국 시장으로 예능 진출, 드라마 제작, 콘텐츠 메이드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우리 회사가 가지는 힘, 브랜드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것을 당장의 손익으로 잘라 생각할 수는 없어요.

저는 CFO는 CEO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CFO는 플러스 마이너스 숫자를 정확히 하는 거고, CEO는 보이지 않는 플러스 마이너스를 계산해서 회사의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거죠. 저는 확실히 CEO마인드에요.”

-2006년 당시 FT 아일랜드를 런칭할 때는 어땠나요?

“대형 기획사에 밴드 시장이 비어 있었고, 아이돌 밴드로 가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어요.”

-이수만의 SM, 양현석의 YG, 박진영의 JYP... 모두 가수 출신이 만든 매니지먼트고, 회사마다 리더의 카리스마가 살아 있어요. FNC 한성호 대표만의 리더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우리 회사 임원회의에서 “대표가 방송 출연하는 게 맞느냐?” 이걸 주제로 회의를 했대요(웃음). 그만큼 저희는 열려 있어요. 제가 추구하는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에요. 섬긴다는 것은 받든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이거든요. 저는 방송에서 보이듯이 위엄과 카리스마보다 편안하고 친밀한 리더에요. 포장하고 싶지 않아요.”

-어쨌거나 앞선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들과 비교하는 시선이 많을 텐데요.

“처음엔 자만했는데, 회사 성장하면서 그분들을 존경하게 돼요. 내가 힘겹게 겪은 것들을 이미 겪으면서 저 자리에 갔겠구나 싶죠. 남들이 겪었던 것을 안 겪을 수는 없더라고요. 시행착오를 얼마나 단축하느냐가 관건이죠.”

-짧은 시간에 조직이 성장하면서 겪는 일반적인 성장통인가요?

“그렇죠. 기존 직원들과 새 직원들의 균형, 아티스트가 많아지면서 힘을 배분하는 것까지. 일본 가서 시장 개척하고 자회사를 세울 때도, 어쨌든 선배 매니지먼트들의 한류가 기반이 됐기 때문에 그만큼 성과가 났던 거죠. 앞으로 중국 시장은 같은 출발 선상이니까 선의의 경쟁을 하는 거고요.”

-신인 아티스트를 뽑는 기준은 뭐죠?

“웬만한 자질은 갖췄다는 조건에서, 인성을 많이 봐요. 저는 평생에 슈퍼스타 한 명을 키울래, 좋은 아티스트 여럿 키울래? 하면 후자를 고를 겁니다. 안정적으로 콘텐츠 부가가치를 내려면, 리스크 관리가 돼야 하고 그 기본은 인성이거든요.”

-그래도 아티스트 리스크는 항상 있습니다. 불안 장애로 잠정적으로 활동을 쉬는 정형돈 씨 경우도 그렇고. 대표가 직접 방송국을 찾아가 사정 설명을 하는 모습이 과하게 비치기도 했어요.

“극심한 불안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문제에요. 그걸 극복하도록 기다려주고, 주변의 이해를 돕는 게 회사 몫이죠. 좋은 마인드를 가지고 좋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형돈이를 보면서 다시 했어요.”

-쉬는 동안에도 계약 유지면, 회사에 손해가 갈 텐데요?

“열 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열 명 다 밥값을 해요.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병치레도 하고 그러는 거죠. 기업에서 3, 4할 이상만 승리하면 나머지는 그걸로 먹고 살아요. 성공률도 높여야 하겠지만, 지금은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FT 아일랜드의 이홍기와 관계가 눈길을 끌었어요. 대표를 노골적으로 ‘디스’하기도 하고, 반면 감사의 표현도 확실하게 하더군요.

“밖에서 보면 티격태격하는 것 같지만, 좋을 때나 힘들 때나 같이 했기 때문에 신뢰가 확실한 거죠. 엄마 아빠 싫다고 해도 외롭고 배고프면 제일 먼저 찾듯이. 이번에 곡 녹음할 때도 가사가 입에 안 붙는다고 연락이 와서, 제가 다른 일 다 제치고 달려갔어요. 그 아이를 잘 알기 때문에 즉석에서 가사를 바꿔줬어요.”

-가수에서 엔터테인먼트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뭐죠?

“무대에는 많이 못 서면서, 자연스럽게 보컬 디렉팅이나 작곡, 프로듀싱을 부탁받아서 했는데, 어느 시점에 내가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리더십 공부는 얼마나 했습니까?

“회사 시작할 때 리더십에 관한 책을 100권 정도 읽었어요. 읽다 보니 공통적인 게 너무 많아요.”

-핵심이 뭐죠?

“모든 사람을 잘 융화해서 끌어갈 수 있어야 좋은 리더라고요. 리더가 너무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 다른 이들을 끌고 갈 수 없는 경우가 많죠. 창업주의 리더십은 또 조금 달라요. 공격적이죠.

이성계가 개국 공신들인 무신들을 지방으로 보내고 문신을 중앙 관리로 세우듯이. 조직이 커지면서 유입된 새로운 인력에 기존 인력이 저항하고 이탈하는 걸 또 접수해야 하고요. 그 과정에서 얼마나 잡음이 나지 않게 기존의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나도 중요하죠.

-멘토는 누군가요?

“저희 어머니예요. 초등학교만 졸업했는데 지혜로우세요. 아침에 통화할 때가 많은데, 큰 결정을 앞에 두면 어머니 말씀이 삶의 지혜로 명확하게 들려요. 항상 “그릇에 넘치는 잔을 받지 마라.” 그러세요.

“지금 그릇이 너의 그릇이면 그 안에서 너희 직원과 사람이 다 잘할 수 있게 다져라. 그릇에 넘칠 만큼 받으려고 하면 쏟아진다”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저는 글로벌 확장도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내려놔요.”

-지금은 그릇 크기를 실험 중인 건가요?

“이제 뛰려는 출발선에는 확실히 선 것 같아요. 뛰면서 생각할 거에요. 일단 화장품이니 외식 사업이니 그런 신규 사업보다 종합 콘텐츠 제작으로 확실히 기반을 잡고 싶어요.”

-기업인 중에 영향을 준사람이 있나요?

“고등학교 동문 모임에서 서경배 회장을 만났어요. 상장을 처음 할 때라 이것저것 자문했어요. 그때 서경배 회장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게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셨어요. 당신도 처음에 그룹에서 하는 수많은 사업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거죠. 그때 결심했죠. 지금은 좋은 작가, 좋은 감독들과 드라마와 예능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방송국을 능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건가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죠.”

-야심이 대단한데요.

“제가 회사를 하며 느낀 것은 시야가 넓어졌다는 거에요. 가수일 때, 프로듀서일 때, 엔터테인먼트 리더일 때, 그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요. 결국 기업을 하는 것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의 점이 되고 싶은 거거든요.

우리 회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당하는 CSR 부서 규모가 커요. 지금 아프리카에 학교를 3개 지었는데, 목표가 100개 고아원, 100개 학교를 만드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제가 가진 생각과 콘텐츠의 기반이 선해야겠죠. ”

-선정적이어야 눈길을 끄는 대중문화 환경에서 갈등이 있을 듯한데요. 가령 걸밴드 AOA의 경우 어떻게 그런 ‘선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나요?

“AOA의 1번 트랙 가사를 전면 수정한 적이 있어요. 작곡가는 ‘핵심 포인트’가 옅어진다고 했지만, 그래도 좋다고 했어요. 제 기준에서는 너무 많이 벗어나면 고쳐요.

또 AOA가 속옷을 입고 나오지는 않아요. 고양이 코스프레나 운동복을 입고 나오는 정도죠. 그 선을 지키려고 해요. 저도 아직 그 선이 어딘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지나치게 선정적인 옷이나 과격한 가사는 안 쓰려고 해요. ‘날아봐 뛰어봐’ 정도는 하지만 흥이 난다고 ‘때려라. 부셔라’는 안 하려고 해요.”

-서경배 회장 이야기도 했지만, 2006년 3억으로 시작해서 9년 만에 3천억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어요. 음악 시장 ‘빅 3’에, 716억 주식 벼락부자가 된 기분이 어떤가요?

“10년 동안 가족휴가를 한 번밖에 못 갔어요. 제 아내가 “요것만 지나면 괜찮다더니 항상 더 바빠지더라.” 그래요. 그때나 지금이나 밥도 똑같은 곳에서 먹어요. 물론 생활은 편해졌죠. 사옥도 새로 지었고. 무엇보다 좋은 건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됐다는 거죠. ”

-가수 생활 10년은 무명이었고, 음악 사업 10년은 승승장구였어요. 현역 시절 인기를 누렸던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과는 다른 삶이에요. 어떤 자부심을 느끼나요?

“내가 생각하는 길이 맞았구나 싶은 거죠. 다들 밴드를 불신했는데, 저는 믿었거든요. 가수 하면서 저는 누구한테도 인정받지 못한 게 참 힘들었어요. 자존심에 10년을 버텼어요. 어떻게든 결론을 내고 싶었어요.

‘투헤븐’이란 곡을 조성모에게 양보하고 그 곡이 히트하면서, 더 막막했죠. 그 곡은 결국 조성모의 곡이었어요. 어떤 분이 “성모도 저렇게 잘하는데, 너는 앞으로 뭐 먹고 살래”라고 할 정도로, 저는 하는 것마다 안돼서 힘들었어요. 너무 위축되어 있었어요.

저를 객관적으로 볼 즈음, 성공이 시작되고, 과신하는 순간 실패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가수를 포기했을 때가 저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때까지 가수가 안 되는 것을 남 탓을 했어요. 저를 객관적으로 보자 제가 조성모보다 스타성이 없고, 보컬에서 이런 게 안 먹히고…

내가 뭘 잘할까 돌아보니, 작곡가로 길이 열리고, 프로듀서, 제작자의 길이 열렸던 것 같아요. 나 스스로 과신해서 세상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주저 앉아 있었다면, 저는 그렇게 실패한 무명가수로 살고 있었을 거에요.”

-꿈이 달라졌나요?

“무명 가수로 실패했을 때 어머니 권유로 새벽 기도를 드렸어요. 당시에 실용음악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쳤는데, 한 달에 150~200만 원을 받았어요. 그때 “학원생이 15명에서 20명으로 늘게 해주세요. 곡을 썼는데 100만 원에 팔리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죠.

지금은 제 그릇만큼 넘치지 않게, 세계 시장에 좋은 콘텐츠를 심고, 그만큼 선한 일에 저 자신이 쓰이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요.”

-FNC 이름은 누가 지었죠?

“제가 지었어요. 성경의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땄어요. 물고기와 떡 몇 개로 오천명을 먹인 사건을 상징하는 Fish & Cake의 약자죠. 저는 단 세 명의 직원하고 시작해서 이런 ‘기적’을 이뤘어요. YG도 SM도 JYP도 여러 번 시도 끝에 상장을 했죠. 저희가 단 한 번 만에 기업 공개를 통해 직상장을 한 건 다들 기적이라고 해요.”

-앞으로 한류는 더 뻗어 나갈 수 있을까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한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무엇보다 콘텐츠의 질이 우수해요. 유튜브와 SNS라는 도구가 있으니 더 폭발력을 기대해 볼 수도 있어요.”

-FNC에서 싸이 같은 글로벌 상품이 나올 수 있을까요?

“기대하고 있어요. 홈런도, 안타도, 3루타도 치길 바랍니다.”

-가수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전혀 없어요. 개인적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때, 내 목소리 담은 음반 하나 내고 싶긴 한데, 그건 음악인으로서의 정리 작업 같은 거지, 가수에 대한 미련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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