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나가라?

조의명 기자 입력 2016. 3. 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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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전통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유축기나 짜고 있다는 폭언을 합니다.

동료들에게까지 인사 불이익이 갈 거라는 위협합니다.

이를 꾹 참고 퇴사를 거부했더니 돌아온 건 집단 따돌림 지시와 업무 배제, 인사 전보였습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어이없는 직장 성차별의 현실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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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주류업체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해온 서른 살 김자영 씨(가명)는 지난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지난해 6월에는 입사 5년 만에 주임으로 승진했습니다.

여직원으로는 최초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날짜가 잡히고 이를 회사에 알리자 황당한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이 ○○/팀장]
"앞으로 직장생활 계획이 어떻게 다른 생각은 없는가? (다른 생각은 어떤) 계속 직장을 다니겠다는 생각인지?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 우리 회사는 관례적으로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다 그만두고 직원들이 다 나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가 해서."

[김자영(가명)]
"축하하기는 축하하는 일인데 제가 그만두지 않으면 자기가 곤란해진다고 팀장님이 말했고..."

본사에 근무하는 여직원은 10여 명, 모두 미혼이었습니다.

결혼한 여직원을 퇴직시킨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김자영(가명)]
"옛날에 버텼던 분이 왕따를 당했다, 근데 제가 다니는 동안에 그런 걸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으니까."

김 씨가 결혼 후에도 회사에 다니겠다고 말하자, 싸늘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 ○○/팀장]
"나갈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거야. 나가라고는 안 할거야...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게끔 한다. 서로 간에 얼굴을 많이 붉힐 정도가 될 거야. 만약 안 된다면..."

결혼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직원을 내보내고, 나가지 않으면 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고 말하는 회사, 바로 대구 경북지역의 유서깊은 소주업체인 금복주입니다.

김씨가 퇴사 요구를 거부한 뒤, 금복주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화 내용을 녹취하지 않았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못할 이야기였습니다.

소속팀장에게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인사담당 팀장이 김 씨를 따로 불러냈습니다.

[송 ○○ 팀장/금복주 인사담당 팀장]
"네가 일 못 해서 나가는 게 아니잖아. 지금 우리 여직원 중에 일 못해서 나갔다고 하는 애는 없잖아. 없다."

결혼한 여직원을 내보내는 건 금복주의 오랜 전통이라는 거였습니다.

[송 ○○ 팀장/금복주 인사담당 팀장]
"우리 회사는 오너 회사잖아 오너의 의지가 강하잖아. 오너의 의지가 여태까지 창사부터 50년이 넘도록 해 가지고 한 번도 결혼한... 주부사원 생산직 이외에는 안에 내근직으로 없는데…. 회사가 용납하겠나?."

동료, 상사들의 입장이 곤란하니 스스로 나가달라는 강요.

[송 ○○ 팀장/금복주 인사담당 팀장]
차장과 니하고 얼굴 붉혀지지... 지금 같이 사무실에 정겹게 앉아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나가서 얻는 거는..우리의 관계입니까?) 우리의 관계에다가 실업급여라든가 이런거.."

사주인 김동구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뜻이라는 말에, 김 씨는 사장실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박 OO/금복주 사장]
"아직까지 우리 회사에는 결혼하고 근무한 선례가 아직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결혼하고 근무할 수 있는 현재의 회사의 분위기 성숙도가 아직 안 된 것 같다."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니 섣불리 조직에 맞서지 말라는 충고도 덧붙였습니다.

[박 OO/금복주 사장]
"조직하고 개인하고.. 결코 조직을 능가할 수가 없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니가 참 내가 보기에는 우리 딸도 저렇게 열심히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면담이 이뤄진 게 10월 말, 그리고 11월 초부터 김 씨는 업무에서 배제됐습니다.

[김자영(가명)]
"10시부터 항상 한 시간씩 회의를 하는데 전화 오더니 저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계속 회의에 배제되었고... 업무도 주지 말라고 (하고) 대화 금지.."

디자이너인 김씨에게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이 배정됐고,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은 쉽사리 말을 걸어오지 못했습니다.

[김 씨 동료 직원]
"말하지 말란다 말도 하지 말고 업무도 주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자기 손으로는 더러워지는 짓 하기 싫으니까 딴 사람 (통해) 괴롭히는 거잖아..."

같이 식사할 사람이 없어 김씨 혼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곤 했습니다.

모두의 축하를 받아야 할 결혼을 눈앞에 두고 지독한 따돌림을 당했던 겁니다.

[김자영(가명)]
"점심 시간에 같이 밥이라도 먹다가 그게 누구 눈에 띄면 질책을 당한대요. 불러서. 그런 얘길 들으니까 저도 같이 식사를 하는 게 너무 죄송스럽고..."

지난해 12월 초에 있었던 김씨의 결혼식 사진입니다.

직장 동료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 씨 동료 직원]
"(결혼식) 가지 말라고 그랬나 봐. 애들이 안 올라가고 밖에 있었나봐... 숨어 있었대 밖에. 청첩장 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런 얘기가 다 있었다고 하더라고..."

몰래 찾아와 축하해줬던 동료가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김자영(가명)]
"회사에서 불러서 '너 자영이 결혼식 갔지 않냐' 결국 그게 발각이 돼서... 결혼 하고 한 달 뒤에 알았어요."

김씨는 차라리 자신을 해고하라고 말했지만, 사측은 그러면 회사에 법적 부담이 있다며 일축했습니다.

[송 ○○/인사담당 팀장]
"바보가 아닌 이상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안 한다. 니한테 나가 이게 아니라 상황이 이렇다고 얘기를 하고. 네가 이걸 가지고 법에 저촉된다고 할 수 없지. 네가 회사 다닐 필욘 없잖아 결혼하면."

부당한 지시에 순응하고 나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수모를 참고 견뎠던 김 씨, 하지만 신혼여행 다녀온 뒤 일주일 만에 디자인과는 상관없는 외부 판촉팀으로 전출됐습니다.

금복주는 왜 이렇게 집요하게 결혼한 여직원을 내보내려 했던 걸까요.

[송 ○○/인사담당 팀장]
"여직원이 다님으로 인해 가지고 인건비라도 생각 안 해봤나? 그리고 육아휴직이고 나발이네... 결혼해가지고 애만 하나 낳는 순간에 화장실 가서 눈물 짜고 있다고.. 유축기 들고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짜고 앉았고 오늘 시댁에 제사 있는데 일찍 가야 되고 연차 써야 되고 뭐 써야 되고 어쩌고 저쩌고.."

우리나라 소주 업계에서 한 손에 꼽히는 중견 기업 금복주.

대구 경북 지역 소주 판매 시장에서 80%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매년 1,300억여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규를 보면 다른 기업들처럼 출산 휴가, 육아 수유 시간 등 임신과 출산에 대한 규정이 갖춰져 있지만, 실제로 혜택을 본 직원은 없습니다.

모두 결혼 전에 회사를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박 OO/금복주 대표이사]
"노동법에 맞는, 법에 맞는 체제를 갖추고 진행은 하고 있지, 그러나 그런데도 보면은 노동법에 안 맞는 부분이 간혹은 있다 이 말이야.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지만 선진국이라 볼 수는 없듯이, 그렇지?"

2년 전 금복주에서 퇴사했다는 한 여직원.

결혼을 앞두고 사직서를 낸 다른 여직원들을 보면서, 자신도 회사를 떠났습니다.

[금복주 전직 직원/2년 전 퇴사]
"(여직원들은) 그냥 굳이 말해 놓은 건 아닌데 결혼하면 다 사직서를 내고 나가야 되는 것이거든요."

김씨를 제외하고도 이렇게 최근 5년 동안 7명의 여직원이 결혼을 전후해 금복주에서 퇴사했습니다.

여직원에 대한 회사의 차별에 환멸을 느끼고 떠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금복주의 사내 인사고과 규정을 보면 관리직, 사무직 외에 여자사원을 아예 따로 나눠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남자 직원은 업무에 따라 나눠서 평가하지만, 여성의 경우엔 무슨 일을 하든 그저 '여자 사원'일 뿐입니다.

[금복주 전직 직원/3년 전 퇴사]
"결혼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임금도 똑같고…. 그전에 언니들도 퇴사할 때는 그냥 다 그런 식으로 다 나갔어요. 저희가 정규직 이런 게 의미가 없는 거죠."

진급규정도 여직원에겐 허울뿐.

1957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승진을 했던 여직원은 김 씨 한 명뿐이었습니다.

[김자영 (가명)]
"(회사) 17년 다닌 언니도 진급을 못 했어요. 근데 그렇게 해서 다니다가 결혼하면 나갔어요. 당연하다는 분위기? 여직원조차도."

본인 뿐 아니라 관리자까지 문책해 퇴사를 종용하는 억압적인 회사 문화.

[송 ○○/인사담당 팀장]
"너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피해보고 있단 생각 안 하나? ...내가 저번에도 이야기했지? 58년 동안 그런 전례가 아무것도 없는데 왜 니가 나서갖고 그리하는 거란 말이야? (그럼 저는 어떡합니까?) 뭘 어떡하기는 어떻게 해 임마!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그걸 갖다가 회사에 이야기하면 어떡하나?"

실제로 김씨의 결혼 이후 담당 팀장 등은 인사이동 조치됐습니다.

2580은 금복주 본사를 찾아가 봤습니다.

김 씨에게 퇴사를 강요했던 당시 인사담당 팀장은 취재진을 만나, 김 씨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송 ○○/인사담당 팀장]
"직장 선배나 인생 선배로서 얘기하는.. 그런 부분에 대한 오해로 (생긴) 부분인 거지. 이걸 갖다가 회사에서 압력적으로 그만두게 했다 이런 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당시 상황이 담긴 녹취 내용을 언급하자, 말을 바꿨습니다.

[송 ○○/인사담당 팀장]
"들으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뭐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이실 수 있다고 생각하시니까 제가 더 이상 얘기를 해 봐야 변명거리밖에 되지 않는 것 같고 이거는..."

금복주 측은 최근 판촉팀으로 보냈던 김 씨를 다시 원래 부서로 복직시켰습니다.

실제로 해고시킨 것도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여직원을 따로 구분하는 인사 규정 역시 여직원의 평균 고과점수가 남자 직원들보다 낮기 때문에 이를 배려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습니다.

[송 ○○/인사담당 팀장]
"그러니까 하는 일이 다른데 (남녀를) 같이 묶어서 상대평가를 하고 해 버리면 오히려 여직원들이 불리하니까..."

김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대구지방노동청에서도 부당전보 등 금복주의 인사조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탭니다.

[이민호/노무사]
"그런 행위는 결국 경영자에게서 나온 생각이거든요. 퇴사를 만들기 위한 과정 속에서 일련의 행위들, 따돌림이라든지 업무 배제 이런 것들도 다 (현행법) 위반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을 흔히 '유리 천장'에 비유합니다.

여성 임원 비율이 남성의 1/6에 그치고,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3만 원밖에 받지 못해 남녀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

총알도 못 뚫을 만큼 단단한 '방탄유리 천장'이란 얘기까지 나옵니다.

[심지현 교수/숙명여대 인적자원개발대학원]
"여성들이 장기적으로 조직 내에서 성장할 수 없게끔 애초에 여성들을 성장 가능성이 낮은 직무에 편성하는 방법으로 성차별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가 다수 발견되고 있습니다."

반년 가까이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던 김 씨는 며칠 전 끝내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더이상 금복주라는 회사에 미련은 없지만, 자신 때문에 남아있는 동료 여직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큽니다.

[김자영 (가명)]
"이 문제 때문에 공감하는 여직원들이 너무 많았고, 잘 모르는데도 제 결혼식에 와 준 여직원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앞으로 여자는 계약직만 뽑는다고... 너 때문에 계약직 연장도 안 될 것 같다고..."

김 씨 역시 내부고발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앞으로 재취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탭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 문화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후회는 없다고 말합니다.

[김자영 (가명)]
"그걸 감수하면서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이제 결혼하니까 아이가 생길 거 같더라고요. 근데 제가 이걸 여기서 포기하면... 만약에 제 아이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저는 뭔가 할 말이 없을 것 같았어요."

대한민국은 남녀고용평등법을 통해 직장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 경력단절 원인의 대부분은 결혼과 출산입니다.

관행이란 말로 결혼한 여직원을 내치는 어이없는 회사 문화.

공공연한 차별 구조를 바로잡는 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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