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低물가는 무슨.." 노인·저소득층 고통 더 커져

최형석 기자 2016. 3. 30.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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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저소득층이 주로 소비하는 식료품·주거비 등 상승률 높아.. 다른 계층에 비해 더 큰 타격 부양해야 하는 가족 부담도 커져.. 소비·저축 위축, 경제 둔화 우려

4년 전 은퇴한 박모(62)씨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TV 보면서 보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에 빚을 내 수도권 상가에 투자했는데 가격이 급락한 바람에 빚 독촉에 시달리다 개인 파산까지 당한 뒤 부쩍 자신감이 사라졌다. 중소기업 부장으로 일하며 사회활동을 활발히 한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버스 요금 같은 푼돈도 아쉽기만 하다. 매달 나오는 국민연금 80만원으로 생활하고, 부족한 생활비는 자식들에 의존하는 신세다. 박씨는 "쌓아 놓은 자산도 없고 앞으로 병 들고 돈 들어갈 일만 남았다"며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가 올라가는 게 부담스럽기 만하다"고 말했다.

노령층과 저소득층 등 이른바 사회적 소외 계층들이 경험하는 물가가 다른 계층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에 근거해 연령대별 물가상승률을 산출한 결과 가구주가 60세 이상인 가구의 2010~2015년 물가상승률은 11%로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았다. 50대(9.4%)·40대(9.3%)·30대(9.2%)·20대(9.8%) 등은 모두 9%대에 머물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9일 발표한 '저물가의 가계 특성별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도 저소득층 물가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작년 물가상승률은 1.1%인데,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물가상승률은 0.4%에 그쳤다. 1분위 다음으로 소득이 낮은 2분위 가구의 물가상승률도 0.9%였다. 3분위는 0.9%, 4분위는 0.7%씩 물가가 상승했다. 저소득층일수록 체감하는 물가가 높았던 셈이다. 연령별·소득별 물가지수는 전체 품목별 물가지수에 연령별·소득별 지출 비중을 가중해서 산출한다.

◇노령층·저소득층이 주로 지출하는 식료품비·주거비 등이 가파르게 올라

노령층과 저소득층의 물가가 다른 연령층보다 높게 나온 이유는 이들이 주로 소비하는 식료품, 주거·수도·에너지, 보건 항목의 물가상승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60세 이상 가구 지출에서 최대 비중(24%)을 차지하는 것은 식료품이다. 식료품 가격은 2010~2015년 사이에 16% 올라 전체 물가상승률(10%)을 웃돌았다. 두 번째로 높은 지출 비중(18%)을 차지한 주거·수도·에너지 요금도 같은 기간 16% 올랐다.

작년 담뱃세 인상의 영향은 저소득층의 물가 고통을 가중시킨 대표적 사례다. 작년 담뱃세가 약 2000원 오르면서 주류·담배 항목의 물가는 전년보다 50% 올랐다. 1분위 가구의 소비에서 술·담배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1.9%)이 다른 소득 계층보다 훨씬 높다. 가령 소득이 높은 5분위 가구의 소비 지출에서 술·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0.9%에 그친다. 이처럼 저소득층이 주로 쓰는 상품 가격이 오르면서 1분위와 5분위의 물가 격차는 2014년 0%포인트에서 작년 0.7%포인트로 벌어졌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이전 정권에서 소위 'MB물가'로 부르며 눌렀던 주거·식료품 가격이 2~3년 새 많이 오르면서 노령·저소득층들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저소득층 물가 고통, 소비 위축·경제 둔화로 이어져

전문가들은 경제적 소외 계층들의 어려움이 지속될 경우 사회 전반적인 소비 위축과 이에 따른 경제 둔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먹고 살 걱정에 노령층은 지갑을 닫고,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30~50대의 소비 축소로까지 이어진다. 손종칠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령화로 생산성이 떨어지면 저축 및 투자 감소와 성장률 둔화로까지 연결된다"며 "부양 인구(15~64세를 제외한 인구)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경제성장률은 0.25~0.29%포인트 하락한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생활고가 지속되면 이를 보조하기 위해 나라의 복지 예산 지출이 증가하고, 양극화에 따른 사회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노령층 및 저소득층의 물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식료품 및 주거 등의 물가를 안정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정부가 연령별·소득별 물가지수를 공표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 통계청은 연령별·소득별 물가지수를 공표하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은 정기적으로 은퇴 고령자, 연령별 물가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원은 "높은 체감 물가는 소비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저출산, 고령화, 1인 가구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한 다양한 물가지수를 개발해 이들의 경제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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