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원 과징금 예고.. 겁에 질린 건설업계
"이번에도 과징금 폭탄을 맞으면 정말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지경입니다. 10년도 더 지난 사건을 조사해서 수천억원씩 과징금을 매기는 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지난해 광복절 사면으로 공공공사 수주 중단 위기에서 벗어났던 국내 건설업계에 또다시 초비상이 걸렸다. 입찰 담합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번에는 LNG(액화천연가스) 가스탱크 공사다. 연루된 건설사만 13개에 달한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 웬만한 대형 건설사들은 다 포함됐다.
한국가스공사가 2005년부터 발주했던 삼척·통영·평택 LNG저장탱크 건설 공사를 수주하면서 '짬짜미'를 해 공사를 나눠 먹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르면 다음 달 전원회의를 열고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과징금 규모는 역대 최대인 5000억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건설업계에 부과된 최대 담합 과징금은 2014년 7월 호남고속철도 담합 과징금으로 4355억원이었다. 대형 건설사 CEO(최고경영자)는 "직원들이 아파트 짓고, 사막에서 고생해서 벌어들인 수익을 모조리 과징금으로 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4년간 담합 과징금만 1조3000억원
건설업계의 '담합'은 사실상 고질병(痼疾病)에 가깝다. 2012년 이후 4년간 건설회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36건에 1조3015억원에 이른다. 이 기간에 과징금 500억원 이상 대형 담합 사건만 5개에 달한다. 2012년 4대강 사업 1차 턴키공사(1115억원), 2014년 호남고속철도 공사(4355억원) 등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건설업계는 공사 금액이 크고 작은 것에 관계없이 담합을 해 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5000억원 안팎의 과징금이 또 부과되는 것이다. 여기에 최대 2년까지 공공공사 입찰 참여 제한이라는 행정 제재까지 부과된다. 건설업계는 지난해 광복절 특별 사면을 통해 공공공사 제한에서 벗어났다. 당시 CEO들이 머리를 숙이고 자정(自淨) 결의를 했는데 1년도 안 돼 또다시 초대형 과징금 폭탄을 맞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담합 유도하는 제도적 문제도 있어"
공정위는 이번 담합이 2005~2006년, 2007년, 2009년 등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조사를 받는 건설사들도 담합 혐의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선 최소한 2005~2006년에 벌어진 1차 담합 사건은 공정위의 '처분시효'(담합 종료일 이후 7년)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정위는 반박한다. 초기에 공사를 따낸 회사는 나중에 '들러리'만 서는 등 3차례 담합이 모두 연결된 하나의 사건이라고 본다. 따라서 마지막 담합이 있었던 2009년을 담합 종료 시점으로 봐야 하며, 2005년 1차 담합도 과징금 부과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오래전부터 담합을 했기 때문에 잘못된 관행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제도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사들은 가장 낮은 가격에 공사를 주는 최저가낙찰제와 1개 공구(工區) 이상 공사를 하지 못한다는 '1사 1공구제'가 담합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두 제도는 특혜 논란을 피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예를 들어 대규모 공사를 발주할 때 공사 구간을 10개로 쪼개 발주하고, 입찰 자격이 있는 대형 건설사 10곳이 입찰에 참여하면 결과적으로 각 회사가 공사를 1개씩 나눠서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러다 보니 건설사들이 최저가에 입찰해서 '손해'를 보느니, 담합해서 각자 적당한 가격에 공사를 가져가자는 식의 짬짜미가 진행되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 중동에서도 대형 공사를 쪼개서 발주하는 일은 거의 없다. 최저가격보다 기술력이나 사업 계획의 적정성을 따져 시공사를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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