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경제연구소의 안타까운 '브레인 드레인'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2016. 7. 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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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민간 싱크탱크 고작 35개, 케냐만도 못해..경기불황 여파로 인력 감축, 기능 축소

[머니투데이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소프트 랜딩]민간 싱크탱크 고작 35개, 케냐만도 못해…경기불황 여파로 인력 감축, 기능 축소]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최근 경기 불황의 여파로 민간 경제연구소의 입지가 날로 좁아지고 있다. 모그룹의 경영난으로 민간 경제연구소도 인력 감축 등 몸집을 줄이거나, 대외 활동을 중단하고 그룹 경영컨설팅 등 인하우스(in-house) 연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민간 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미 2013년 10월 이후 국내외 경제연구를 전면 중단하고 그룹경영 및 신사업 지원 등을 위한 인하우스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LG경제연구원도 과거에 비해 대외보고서 비중이 줄어들고 컨설팅과 인하우스 연구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그나마 삼성과 LG는 그룹 사정이 나은 편이다. 3대 민간연구소 중 하나인 현대경제연구원(이하 현대연)은 현재 존속 마저도 불투명한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무엇보다 싱크탱크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연구인력의 이탈, 즉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0년을 전후로 연구원 전체 인원이 130여명, 순수 연구인력만 50여명에 달했던 현대연은 대주주인 그룹의 지원이 축소되고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현재 연구인력(석박사 포함)은 20여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현대연의 대주주가 된 현대엘리베이터가 수익없이 비용만 들어가는 경제연구원을 계속해서 지원할 지도 의문이다. 비록 현대엘리베이터가 매년 1000억원 안팎의 흑자를 기록하는 알짜기업이긴 하나, 현대그룹의 맏형이 되면서 부양할 식구가 많아진 상황이다.

더구나 엘리베이터 사업을 하는 대주주에게 거시경제와 대내외 경제이슈를 연구하는 연구소는 효용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그간 정부 부처 회의와 대통령 순방에 적극 참여했던 현정은 회장이 중견그룹 대표 정도로 전락하면서 현대연의 위상도 덩달아 떨어질 것이 뻔하다.

한편 현대상선의 경영권이 산은으로 이전되면,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 중심의 자산규모 2조 7000억 미만인 중견그룹으로 전락하게 된다. 즉,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중견기업이 국내 3대 민간경제연구소를 운영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현대연은 그동안 민간싱크탱크로서 우리 사회에 적지않은 기여를 해왔다. 매년 경제전망은 물론 경제이슈에 대한 시의성 높은 연구를 통해 여론을 선도하고, 다양한 경제정책을 제시하며 차별화된 민간 싱크탱크로서의 입지를 구축해왔다.

사실 국책 연구기관은 물론 대다수의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정부 기관에 대해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현대연은 대기업에 속한 다른 연구소와는 달리 종종 정부기관이나 정책의 맹점들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현대연이 내놓았던 '청년 체감실업률'에 대한 보고서가 대표적인 예이다. 통계청장은 '통계의 기본도 안된 연구'라며 폄하했지만, 우리나라 청년들이 처한 특수성을 고려해 지표를 개선하고, 폭넓은 청년고용대책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민간 경제연구소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최근 김영란법 찬성측 근거자료로 자주 인용되는 현대연의 용역보고서는 대기업의 이해와 어긋나 보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현대연은 중산층, 자영업자, 1인가구, 청년실업, 고령층 등 계층 및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한 분석과 정책 대안을 제시해왔다.

특히 현대연은 민간 경제연구소로는 유일하게 통일경제센터를 운영하면서 남북한 관계와 통일문제 연구에 있어서 높은 위상을 자랑했다.

하지만 최근 현대그룹의 구조조정과 함께 '브레인 드레인' 현상이 심화되면서 연구활동 역시 크게 위축됐다. 또한 현대그룹의 명줄을 정부와 채권단이 쥐고 있다보니 현대연은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최대한 우호적인 보고서를 써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더불어 남북관계가 장기간 경색되면서 통일경제센터의 연구인력은 최근 2명으로 축소됐고, 정부와 북한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전문가 설문조사나 비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연구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비단 현대연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우리 경제와 사회의 길잡이 역할을 해줘야 할 민간 경제연구소들의 설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고 힘들수록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 산하의 국책 연구기관도 중요하지만, 새롭고 역동적이며 때로는 잘못된 정부 정책을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는 민간 경제연구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민간연구소를 포함한 싱크탱크의 현실은 열악하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글로벌 싱크탱크 평가자료(2015 Global Go To Think Tank Index Report)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싱크탱크는 35개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미국은 무려 1835개, 독일은 195개, 일본은 109개나 된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이란도 59개나 되고, 케냐도 53개나 되는데 말이다.

더욱이 1년에 쏟아져 나오는 인문사회계열 박사학위 취득자만 해도 2015년 현재 약 3800명에 달한다. 그런데 경기침체 등으로 민간 경제연구소가 축소되고 있으니 박사급 고급인력들이 갈 곳은 점점 사라지는 셈이다.

따라서 하루빨리 민간 싱크탱크의 육성 및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민간 경제연구소를 운영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나 금융혜택 등 다양한 지원방법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두면 언젠가 민간 경제연구소는 모두 고사하고 정부 찬양 일색인 국책연구소만 덩그러니 남아있게 될 날이 올 지 모를 일이다.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skchoi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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