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들 집합소?' 일반고의 추락

박송이 기자 2014. 7. 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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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의 무너진 교실과 추락한 교권… 자사고 늘면서 일반고 슬럼화 출구 못 찾아

2012년 11월 8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의 한 배수로에서 4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인근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ㄱ교사였다. ㄱ교사는 전날 심한 두통으로 병원을 가겠다고 학교를 나선 후 행방불명됐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병원으로 가던 길에 뇌출혈이 일어나 배수로에 추락했던 것이다. 지난 6월 13일 서울행정법원은 ㄱ교사의 죽음을 공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판정했다.

ㄱ교사가 근무했던 곳은 천안의 ㄴ고등학교였다. 지금은 특성화고로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특성화고와 일반고가 함께 있는 종합고였다. 취업과 관련한 조리과와 미용과가 있었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가 섞여 있는 형태였다. 문제는 인문계였다. 천안은 비평준화 지역이다. 이 고등학교는 시 외곽에 있다보니 천안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최후로 선택하는 학교였다.

특히 그가 맡았던 2학년 학급의 학생들은 악명이 높았다. 소위 말하는 '문제 학생들의 집합소'였다. 학급 학생들의 70~80%가 대학 진학 및 학업에 관심이 없었고, 그 중 6명의 학생들은 학칙 위반으로 수십 차례 징계를 받았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 학급의 담임을 맡기를 마다하면서 교사경력이 20년으로 길고 포용력이 있다는 ㄱ교사에게 담임이 돌아갔다.

교사가 관심 가져야 할 학생 수 늘어

학생들의 일탈은 도를 넘었다. 수업시간에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고, 수업시간 도중에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조회·종례시간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담임 왔어?" "야! 잘가"라고 반말로 인사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ㄱ교사가 거기에 대해 말투가 그게 뭐냐고 지도하면 욕설을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학부모들의 협조도 없었다. 무단지각, 무단결석, 무단조퇴하는 학생들 때문에 학부모들과 통화를 하면서 학부모들의 지도를 사정하면 오히려 학부모들은 불만과 거친 언행으로 대응했다. 동료교사였던 박종건 교사는 ㄱ교사가 학생들을 안고 가려고 하다보니까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고 전했다.

박 교사는 "ㄱ교사가 학생들에게 잘하다보니까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더 심하게 대했다. ㄱ교사가 차라리 일부 학생들을 포기하고 '가지치기'를 했다면 좀 나았을 수도 있는데, 그걸 끌고 가려다보니까 스트레스가 워낙 많이 쌓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특성화고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다른 학교 갔다 떨어진 애들이 왔는데, 사실 애들도 불쌍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우니까 가정에서 방치되고 공부에 신경 못 쓴 애들이 아르바이트하면서 오고 그러다 보니 낙오가 되어 이 학교에 온 것이다. 애들이 참 안 됐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또 그러다보니까 ㄱ교사가 많이 힘들어했다."

무너진 교실과 추락한 교권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한 ㄱ교사의 죽음은 특수한 사례에 불과할까. 비평준화 지역의 종합고에서 벌어진 극단적 상황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고교평준화가 된 지역도 특목고와 자사고로 이미 비평준화 못지않은 서열화가 이루어졌으며, 일반고도 더 이상 일반고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슬럼화'가 이루어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에게는 경험치가 있다. 한 학급에서 좀 더 관심을 두고 집중해야 할 학생들이 3명이 넘어가면 그때 교실은 무너진다. 30년 동안 교직에 있는 한 고등학교 교사는 관심을 가져야 할 소위 '문제학생'이 한 학급에 2~3명 있는 것과 5명 이상 있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특목고나 자사고가 늘어나기 전에는 관심을 두어야 할 학생들은 평균 한 학급에 2~3명 정도 됐다. 이 정도면 교사들이 이들에게 관심도 갖고 대화하고 상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5명이 넘어가면 수업을 하면서 이 학생들을 이끌어가고 또 따로 상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관리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자사고 결원 일반고 상위권이 채워

특목고와 자사고가 늘어나면서 일반고의 균형은 깨져버렸다. 교사가 현실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학생들의 수가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서울은 자사고가 25개다. 전국적으로 비중이 제일 높다.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일단 자사고로 몰리고, 일반고에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모이게 됐다. 김학한 전교조 기획국장은 "수업이 되려면 성취동기가 있는 학생들이 수업을 이끌어가고 한두 명 떠들면 조용히 해라고 말하면서 수업 분위기를 잡아가면 된다. 그러나 자사고가 늘어나면서 일반고에서는 수업시간에 자거나 딴청을 부리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생활지도도 만만치 않게 어렵다. 생활지도의 고충은 커지고, 그래도 그걸 해보려다가 ㄱ교사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계점을 넘어버리면서 교사들은 무력감을 호소했다. 한 일반고 교사는 "수업 들어가면 학생들의 3분의 1은 자고, 3분의 1은 딴짓하고, 3분의 1정도가 수업을 들을까 말까 한다. 차라리 자는 애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의욕만으로는 어떻게 하려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반고의 한 교장은 "처음 교장으로 부임해서 의욕적으로 일을 했는데, 내가 부임해서 한 일은 자사고로 전학간다는 상위권 학생들 11명 서류에 사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는 결원이 생기면 일반고에서 상위권의 아이들을 빼가고 자사고에서 '사배자 전형' 등으로 입학해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은 다시 일반고로 온다. 마치 프로축구에서 1부리그에서 뒤처진 선수가 2부리그로 밀려나고, 2부리그에서 잘하는 선수가 1부리그로 뽑혀가는 형국이다.

일반고 슬럼화는 이미 구조화됐고, 이 구조 속에서 교사도 학생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선거 공약으로 '일반고 전성시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조 교육감은 취임 이후 일반고 전성시대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할 시 자사고에 재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자사고 재정지원이 역차별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잠시 그런 과정을 겪더라도 공교육 문제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일반고의 교직원이나 관계자들도 어느 정도 동의해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역차별 논란이 이는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자사고는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재정지원보다는 계속 우수한 학생을 잡아둬 명문고로 자리매김하려는 게 자사고 측의 보편적인 입장이다.

자사고 측의 주장에 대해 송대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자문위원은 지금 자사고에서 하는 역할은 학생들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명문고'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성적 좋은 학생들만 모아놓고 관리하는 '독서실 관리'라고 비판했다. 송 자문위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학맥으로 얽힌 특권집단을 만드는 것인데, 결국 거기에 속한 소수만 혜택을 보는 것이다. 나머지 일반고가 학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다수의 교사와 학생들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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