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되는 환자 찾아 전과' ..전문의 간판 내리는 의사들

2014. 12. 1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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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공의 빈익빈 부익부 실태] 기피 전공 진료과의 현실

비뇨기과·산부인과·외과 전공의들'○○과 의원' 아닌 '○○○의원' 개원'전문의' 자존심 버리고 돈벌이 출구병원들은 교수에 비급여 수술 종용수익성 높이기 위해 로봇수술 권장의료시스템 왜곡 '현재 진행형'

일부 진료과에 전공의가 몰리거나 반대로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는 배경엔 의료시장의 환경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의사는 예전처럼 고수익을 기대할 수 없고, 개업을 해도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다. 특정 전문과목을 선택하면 구직이나 돈벌이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있다. 중소병원은 간단한 수술환자마저 대형병원에 빼앗기고, 대형병원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쉼 없이 덩치를 키워야 한다. 전공의 지원 쏠림 현상은 이런 복잡한 현실의 반영이다. 이에 따른 의료시스템의 왜곡은 현재진행형이다. 외과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경영난 탓에 자신의 전공을 감춘 채 다른 진료과 환자를 돌본다. 상당수 대형병원의 수술 진료과 전문의는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된 수술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의 수익이 높은 비급여 수술을 하도록 압박받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한테 전가된다.

■ 전공과목 숨기고 개업하는 외과 의사들

대한의사협회가 낸 '2013 전국회원 실태보고서'를 보면, 서울에서 개원한 성형외과 전문의 731명 가운데 540명(74%)이 서울 강남구에 병·의원을 열고 있다. '손님'이 많은 강남에선 성형외과 전문의 말고 다른 진료과 전문의도 성형수술을 한다.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은 "명확한 통계는 없지만, 강남구에서 성형수술을 하는 병원의 절반가량은 비성형외과 전문의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주로 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 등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이런 흐름에 합류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외과 등 비인기과 전문의가 자기 전문과목을 밝히지 않고 성형외과 등 다른 진료과 환자를 진료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통계 수치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의사협회의 자료를 보면 전체 외과 전문의 6000여명 가운데 1000여명이 외과 간판을 달지 않고 '○○○의원' 등의 이름으로 병원을 열고 있다. 이들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내과 분야 등을 진료한다. 상당수의 산부인과(602곳), 비뇨기과(348곳), 흉부외과(240곳), 가정의학과(1727곳) 전공의도 '○○과 의원'이 아닌 '○○○의원'으로 '화장'을 했다.

차 회장은 "'전문의=진료를 잘하는 의사'라는 자존심을 버렸다는 건 해당 전공 분야로 개원해서는 먹고살기 힘드니 간판을 내려서라도 버티겠다는 궁여지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성형외과 전문의가 수술을 해도 평소엔 별문제가 없지만 위기 상황이 닥치면 사정이 달라진다. 최근 3년간 언론에 보도된 성형외과 의료사고의 80%가 비성형외과 전문의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 대학병원 교수도 수익 남는 비급여 수술 해야

서울 강북구에 사는 이아무개(46·여)씨는 최근 건강검진을 받다 갑상선에 혹이 발견됐다. 의사의 권유로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했더니 암으로 진단됐다. 이씨는 "담당 의사가 수술칼로 절개하는 전통적인 수술을 받으려면 한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데, 로봇수술은 1주일 안에 할 수 있다고 하더라"며 "수술비가 부담이 됐지만, 하루라도 빨리 불안감을 털고 싶어 로봇수술을 택했다"고 말했다.

로봇수술은 수술칼 등을 장착한 로봇 팔을 의사가 원격장치로 조종해 하는 수술법이다. 장비 값이 30억원을 넘지만 웬만한 대학병원은 모두 갖추고 있다. 일부 대학병원은 1건당 수십만원의 수당을 의사한테 따로 주며 로봇수술을 권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가 있다. 로봇수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라 비용이 보통 500만~1500만원가량이다. 기존 수술법보다 수배나 비싸다. 그만큼 병원 수익이 커진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로봇수술이 환자한테 가장 안전하고 효과가 좋은 수술법이라면 비용이 더 들어도 권장하겠지만, 아직은 개복수술이나 내시경 수술에 견줘 효과와 안전성이 우위에 있다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 수익 내는 일자리 안 남아, 내과도 기피과로 전락

외과에 이어 최근엔 내과까지 전공의 지원이 줄어드는데, 이는 돈이 되는 내과 일자리가 주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대한병원협회의 관계자는 "예컨대 소화기내과에선 기본 진찰료만으론 적자를 면할 수 없다. 이를 내시경 검사 등에서 얻은 수익으로 메꾼다. 병원이 내시경 검사 등 각종 검사를 하는 건강검진센터 건립에 줄지어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센터에 내과 전문의가 꽉 들어차 추가 고용이 어려워졌다. 파산 위험이 상당한 개원 말고는 다른 마땅한 출구가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자 전공의들이 내과를 기피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2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기본 진찰에 지급되는 수가는 병원이 관련 인력·시설·장비 등을 운영하는 데 드는 총비용의 50.9% 정도다. 반면 내시경 검사나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등과 같은 검사는 수익률이 180%에 이른다. 병원 쪽이 내과 기본 진료에 충실하면 손해를 보고, 내시경 같은 검사를 많이 할수록 이익이 커진다는 얘기다.

개원 의사의 상황도 좋지 않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개업하려면 각종 시설·장비를 갖추는 데 5억 이상이 드는데, 대부분 빚으로 충당한다. 더구나 이미 개업한 병원이 차고 넘친다. 상황이 이런데 정부가 대형병원에 환자가 더 몰리게 할 원격의료까지 허용한다니 내과 기피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박수지 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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