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이 '병사' 유인했나

2016. 10. 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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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사망 전부터 백선하 교수와 접촉하고, 정보관 상주시켜 사후 대비한 경찰
‘빨간 우의’라는 새빨간 루머까지 ‘참고’해 압수수색 영장 청구한 검찰

이철성 경찰청장이 10월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농민 백남기씨가 입원한 다음날인 2015년 11월15일부터 경찰이 서울대병원에 하루 최대 14명의 정보관을 파견해 지속적으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백남기씨와 관련한 정보 수집을 위해 파견된 경찰 정보관 수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한겨레21>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울 혜화경찰서의 ‘정보보안과 동원명령서’(명령서) 등을 보면 경찰은 백남기씨가 2015년 11월14일 입원한 뒤 서울대병원에 많게는 하루 10명이 넘는 정보관을 파견했다.

명령서를 보면 경찰은 백남기씨가 물대포에 맞아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다음날인 2015년 11월15일 정보관 6명을 병원에 파견했다. 수술 뒤 백남기씨가 깨어나지 못하던 그해 11월22일에는 무려 14명의 정보보안과 직원이 병원에 동원됐다. 정보보안과 직원뿐 아니라 외사과 경찰이 서울대병원에 파견돼 정보 활동을 벌인 사례도 발견됐다. 명령서를 보면 경찰은 지난 9월까지 최소 2명 이상의 정보관을 서울대병원에 교대로 상주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상황을 파악해왔다.

경찰이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지속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인 것은 결국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백남기씨가 숨진 뒤 경찰과 서울대병원의 ‘협업’은 빠르게 이뤄졌다. 백남기씨 사망 시각은 9월25일 오후 1시58분. 서울 종로경찰서가 서울대병원에 수사의뢰서를 보낸 것은 사망 뒤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이날 오후 2시49분이었다. 주검이 영안실로 옮겨진 오후 3시33분보다도 44분 일렀다.

종로경찰서는 수사의뢰서에 진술조서를 받을 인물도 정확하게 지목했다. 더민주 김민기 의원실에서 입수한 당시 수사의뢰서를 보면 경찰은 서울대병원 쪽에 ‘변사자 백남기 주치의 백선하 등의 진술조서’를 요구했다. 이유는 ‘변사자 백남기를 입원시부터 사망시까지 진료한 주취의(주치의) 상대로 치료과정 및 사망원인 등에 대한 진술조서 작성’이라고 적었다. 주치의를 ‘주취의’라고 오타까지 낼 정도로 급히 만들어진 경찰의 공문에 서울대병원 쪽은 바로 화답한다.

“경찰서장이 오셔서 환자 상태 물었다”

10월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국정감사에서 김민기 의원은 백남기씨의 치료를 맡았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에게 사망 당일인 9월25일 경찰 조사에 대해 물었다. 백 교수는 당시 집에 있다가 백남기씨가 숨진 뒤인 오후 3~4시께 병원에 나왔다고 답변했다.

또 “병원 행정팀으로부터 참고인으로 조서를 꾸며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다음에 조서를 꾸미게 됐다”며 “조서 꾸민 시각은 정확히 잘 모르겠다. (오후) 4시 전후로 생각을 하고 조서를 5시까지 받지 않았나 하는데 정확한 시각은 모르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이 공문을 보낸 뒤 약 1시간 만에 참고인 조사가 이뤄진 셈이다.

경찰이 병원에 정보관을 여럿 보내 지속적인 정보 활동을 벌이고 주치의를 만나 환자 상태에 대해 캐물은 것이 부적절한 이유가 있다. 이 사건에서 경찰은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날 있었던 고인 조사에서 부검의 구실을 얻었다. 백 교수는 국정감사에서 “(경찰 조사에서) 사망 원인도 말씀드렸다. 급성신부전에 대한 고칼륨혈증으로 심장정지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백 교수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부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청장은 백남기씨가 숨진 다음날인 9월26일 기자간담회에서 “(백남기씨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두피 밑에 출혈(급성경막하출혈)이 있었다고 되어 있었는데, 어제 주치의는 신부전으로 인한 심장정지로 병사했다고 했다. 사인이 불명확해 부검을 통해서 사인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기관의 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7월17일 서울대병원 쪽은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서를 보냈다. 당시는 백남기씨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하루 전인 7월16일 의무기록지에는 “환자의 현재 임상적 상황이 당장 cardiac evaluation(심장병 평가) 필요한 응급”이라고 적혀 있다. 또 같은 날 의무기록지에는 “보호자(배우자, 딸)에 급성 악화 가능성, 사망 가능성에 대해 warning(경고)함”이라고 되어 있다. 서울대병원이 백남기씨의 상태가 안 좋아지자 바로 다음날 시설보호요청서를 경찰에 보낸 것이다.

시설보호요청서 작성에 경찰이 개입하거나 심지어 대신 작성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노웅래 더민주 의원은 교문위 국정감사에서 시설보호요청서를 제시하며 “‘상황이 종료시까지’ ‘보성농민회 소속 백남기’, (요청서에)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경찰이 쓰는 용어지 서울대병원이 쓰는 전문용어가 아니다”라며 경찰이 시설보호요청서를 작성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백선하 교수는 국정감사에서 노웅래 의원이 백남기씨를 치료하던 중 경찰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사고가 나고 며칠 있다가 경찰서장이 오셔서 환자 상태를 물었고 잘 부탁한다고 말씀했다”고 답변했다. 백남기씨와 관련해 경찰이 주치의를 입원 초기부터 만나 환자 상태 등의 정보를 파악한 것이다.

일베 루머로 ‘물타기’ 질의한 나경원 의원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다음날인 2015년 11월15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센터 앞에서 송경동 시인이 기자를 사칭한 한 공무원의 수첩을 공개하고 있다. 이 수첩의 주인은 애초 자신을 기자라고 했으나 이후 “당황해서 그랬다”며 자신이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농식품부 소속인지 경찰 소속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백남기씨의 딸 백도라지씨 역시 앞서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병원에서 가족보다 경찰한테 아버지 상태를 먼저 말해주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늘 들었다. 아버지의 상태 변화가 있으면 의사한테 듣고 (백남기) 대책위에 말했다. 그런데 대책위 쪽에서 듣기로 내가 말하기 전에 경찰한테 (아버지 상태에 대해서) 먼저 전화가 왔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이 병원에 정보관을 여럿 보내 지속적인 정보 활동을 벌이고 주치의를 만나 환자 상태에 대해 캐물은 것이 부적절한 이유가 있다. 이 사건에서 경찰은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피해자인 백남기씨의 상태와 병원 동향 등을 파악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이철성 경찰청장이 백남기씨가 숨진 직후 “사인이 불명확하다”고 말한 것부터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동시에 경찰의 책임을 덜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백남기씨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을 ‘물타기’하려는 시도는 경찰만 한 게 아니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교문위 국정감사에서 “(백남기씨가 쓰러진 당시) 동영상을 보면 빨간 우의 입으신 분이 계속 나온다”며 “건국대 이용식 교수는 빨간 우의가 뭔가 (사망) 원인이 된 것이라고 발표도 하셨다”고 말했다.

이른바 ‘빨간 우의’ 논란은 사건 초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제기됐다. 백남기씨가 다친 민중총궐기 당시의 동영상에는 빨간 우의를 입은 집회 참가자가 등장한다. 동영상에서 이 인물은 백남기씨를 향해 가다가 계속 이어지는 경찰의 물대포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이 모습을 본 일부 일베 회원들은 ‘빨간 우의가 백남기씨를 주먹으로 세게 때린 것이 부상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 뒤 이 주장은 ‘낭설’로 취급돼 잠잠해졌다가 백남기씨가 숨진 뒤 다시 불거졌다. 최근에는 이용식 건국대 의대 교수가 이 주장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 하지만 빨간 우의 논란은 근거 없는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더민주 박남춘 의원실이 공개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 기록을 보면 백선하 교수는 2015년 11월16일 인권위에 “(백남기씨의 부상은) 단순 외상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임상적 소견임. 그냥 서 있다가 넘어질 때 생기는 상처와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폭행이나 넘어지는 것 등 단순한 방법으로 입을 수 없는 부상이라는 것이다.

또 민중총궐기 때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빨간 우의를 입은 인물은 주먹을 쥐고 있지도 않고 쓰러지면서 백남기씨의 얼굴 쪽이 아닌 땅바닥을 손으로 짚는다. 하지만 검찰은 백남기씨가 위독하던 9월 초 이런 루머를 수사에 결합시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검찰의 타격 의심

김민기 의원실이 입수한 9월6일 검찰의 서울대병원 압수수색 영장을 보면 “피해자가 위 직사 살수에 맞고 넘어진 직후 피해자를 구조하려던 빨간색 우의 착용자가 넘어지면서 피해자를 충격한 사실이 있어 피해자의 의식불명 등 상해 결과에 영향을 미친 원인 행위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고 적혀 있다. 빨간 우의가 백남기씨를 직접 때렸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부상의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실제로 김수남 검찰총장은 10월13일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박주민 더민주 의원이 빨간 우의와 관련한 질의를 하자 “그것도 하나의 언론이나 이런 데서 제기되는 의혹의 하나라 그런 것들이 영장에 포함된 것 같다”고 답변했다. 관련 내용을 수사의 일환으로 살펴보고 있다는 취지다.

이같은 검찰의 입장은 지난 6월과 차이가 있다. 검찰은 6월15일 서울대병원 쪽에 ‘수사협조요청(진료내역)’ 문서를 보냈다. 김민기 의원실이 공개한 이 문서에는 “경찰청장 등 피고발인들이 공동하여 2015.11.14 광화문에서 개최되었던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살수 차량을 운용하는 경찰관들에게 직사 살수 등의 행위를 지시하여, 당시 시위에 참가한 대상자 백남기의 얼굴을 향하여 직사 살수하게 함으로써 동인으로 하여금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게 함”이라고 적혀 있다. 빨간 우의 등 다른 이유로 백남기씨가 다쳤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주치의의 견해’와 ‘루머’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무기를 양손에 든 검찰과 경찰은 끊임없이 백남기씨 사건의 진실을 흐리려고 한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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