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밉보이면 투자 못 받아" 영화계서도 블랙리스트 소문 파다

라제기 2016. 10. 15.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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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사고 소재 ‘판도라’ 투자 철회

“사회비판 영화들 심사 통과 못해”

충무로에는 영화 '변호인'(사진)에 관련된 영화인들이 여러 형태의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많다.

충무로는 오래 전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현실로 받아들여왔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는, 의심스런 일들이 워낙 자주 일어나서다. 영화 투자 활성화를 위해 조성된 모태펀드로 정권에 밉보인 영화인들의 활동을 제어하거나 사회비판적 영화 제작을 통제한다는 불만이 특히 많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촬영을 마친 영화 ‘판도라’는 당초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민간 투자운용사에 위탁한 모태펀드의 투자를 받기로 했으나 명확한 이유 없이 투자가 철회됐다. 모태펀드 투자를 받으면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기 용이해지는 반면, 모태펀드가 참여하지 않으면 투자금을 모으기 쉽지 않다. 모태펀드의 투자 철회는 관계자 입장에선 악재 중에 악재인 셈이다. 충무로에선 ‘판도라’의 내용과 ‘출신성분’이 입에 올랐다. ‘판도라’는 국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면서 일어난 재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원전이 안전하다는 정부 입장에 배치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판도라’의 투자배급사 NEW(뉴)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소재로 삼은 영화 ‘변호인’(2013)으로 1,000만 관객을 모았다. 충무로에선 ‘변호인’의 감독과 제작자, 주연배우, 투자배급사 등이 정권의 눈 밖에 나 유무형의 압박과 불이익을 당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모태펀드 투자에서 배제된 사회비판적 영화는 여럿 있다. 방위산업체 비리를 정면에서 다루는 ‘일급비밀’, 1980년대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삼은 ‘보통사람’, 진범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이른바 ‘익산 약천 오거리 택시운전사 살인 사건’을 그린 ‘재심’도 모태펀드 투자심사를 통과하지 못 했다.

영화관계자들은 투자운용사 내 투자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과 심사과정을 의심하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 심사위원들이 투자심사를 좌지우지하며 정권으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 영화인들이나 사회비판적 영화를 투자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은 투자운용사가 선정하고 있으나, 막상 이들 위원의 명단과 심사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한 제작사 대표는 “시나리오가 나쁘거나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석연치 않은 결과들이 잇달아 나오니 심사과정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영진위 관계자는 “투자 전문성 강화 등을 위해 모태펀드를 투자운용사에 위탁 운용하고 있다”며 “투자내역은 사후 보고만 받고 성과를 독려하는 정도의 의견만 전달한다”고 밝혔다. 영진위는 2011년부터 7개 조합을 통해 한국영화 185편에 1,186억원(지난해 12월 기준)을 투자해 왔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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