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주연, 김관진 조연, 김관진 연출, 사드

윤호우 선임기자 2016. 7. 1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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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NSC 김관진 안보실장 주도… 문민통제 이뤄지지 않아 경제적 측면 배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제3군 사령부를 전격 방문해 군 관계자들에게 만반의 대비를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오른쪽). / 청와대 제공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7월 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여부와 지역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답변했다. 정부는 8일 사드 배치를 확정 발표했다. 불과 사흘 전 국방장관의 발언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인 김종대 의원(정의당)은 “사드는 김관진(국가안보실장) 주연, 김관진 조연, 김관진 연출”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드 결정에 있어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김 의원은 “비무장지대에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때에도 오전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조심스럽다’고 해놓고 오후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방부 장관이 실무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NSC에서 모든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사드는 7일 청와대 NSC 상임위원회에서 배치가 최종 결정됐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아침 내내 질의장을 지키면서 든 느낌은 ‘김관진 1인 천하’라는 것”이라며 “과연 군에 대한, 군 출신에 대한 문민통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냐”고 말했다. 기 의원은 “비서실장은 보이지 않고 정책조정수석, 경제수석, 외교안보수석도 안 보인다”고 말했다. 국방부 장관 출신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모든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비판한 기 의원은 ‘김관진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은 “안보실장의 입으로 보고는 했지만 안보실장의 개인적 의견으로 정책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관계되는 기관, 전문가 등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검토·협의한 결과”라고 답변했다. 이 비서실장은 “이 나라는 분명 대한민국 국민의 나라”라고 말했다.

이날 운영위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NSC에서 문민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야당에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사드 배치 조기 결정에 반대했다고 한 보도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답변했다. 박완주 더민주 의원은 NSC 상임위에 들어간 윤 장관이 “국제 공조를 해야 하는 외교부 장관으로서 반대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군인 출신 인사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외교·경제 라인들의 제동이 없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윤 장관은 8일 사드 배치가 발표된 시간에 백화점에 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사드 배치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한 중국이 경제적 보복조치를 할 가능성에 대해서 NSC에서 실무적 차원의 고려가 없었음이 이날 운영위에서 밝혀졌다. 장정숙 국민의당 의원은 안종범 정책기획수석과 강석훈 경제수석에게 7일 NSC 상임위에 참석했는지 따져 물었다. 두 수석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장 의원은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참석하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김 실장은 “안보에 경제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참석시킨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답변에 대해 장 의원은 “(청와대가) 경제 측 수석 등과 함께 경제대책은 전혀 논의한 바가 없다”고 단정했다.

경제분야를 고려하지 않은 유사한 상황은 사드를 소재로 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소설 <말과 칼>에서도 등장한다. 소설에서 사드 배치 발표가 며칠 지난 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중국의 경제보복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장면이다. 가상의 소설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가 벌어진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여당은 13일 국회 운영위에서 현 정부의 문민통제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방어에 나섰다. 이날 새누리당의 민경욱 의원은 ‘문민 지배’라는 단어에 대해 김관진 안보실장이 직업군인이 아닌데도 문민 지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는 시각을 피력했다. 김 실장이 이미 군복을 벗은 만큼 군인이 아니라는 단순논리다. 민 의원은 김 실장에게 “과거 4성 장군이 문민 지배에 위배되는 위치에 있느냐”고 질의했고, 김 실장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김 실장은 육사 28기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국방부 장관직을 맡았다.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폐지됐던 NSC는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설치됐다. 초대 국가안보실장은 김장수 현 중국대사로, 2013년 3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안보실장을 맡았다. 김 전 실장 역시 장군 출신으로, 국방장관을 역임한 후 안보실장을 맡았다. 이후 2014년 6월부터 똑같은 이력을 가진 김관진 실장이 그 자리를 맡아 왔다.

참여정부에서 NSC의 책임자인 상임위원장의 이력은 박근혜 정부와 사뭇 달랐다. 초기에는 라종일·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맡았고, 이후 정동영·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말기에는 백종천 안보실장이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초기와 말기에 NSC를 맡은 권진호·백종천 전 상임위원장만이 군 출신이었고, 참여정부 기간 동안 대부분 군 출신이 아닌 인사들이 NSC를 맡았다.

NSC의 인적 구성보다 대통령의 정책 결정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국회 운영위원인 노회찬 의원(정의당)은 문민 통제에 대해 모든 근본 원인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외교·안보의 결정은 대통령이 전권을 갖게 돼 있다”면서 “NSC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린 대통령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 결정에서 문민적 시각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의혹과 더불어 문민적 시각이 국방적 시각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이 14일 열린 국회의 토론회 ‘국민의 동의 없는 사드 배치, 올바른 결정인가’에서도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 발제에서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는 외교부 윤 장관의 백화점 행에 대해 “사드 결정과정에서 외교부가 왕따를 당해 발표를 몰랐거나 외교부 장관이 상황을 안이하게 보았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대기자는 “국가안보는 종합적인 안보로서 군사력, 외교, 경제, 사회 안정과 사회적 합의, 심지어는 문화까지도 포함된다”면서 “국방 군사력은 안보의 N분의 1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 시절 NSC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정동영 의원(국민의당)은 이날 토론회에서 쿠바 미사일 사태를 언급했다. 1962년 소련의 핵미사일 수송선이 쿠바로 향하자, 미국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 해상을 격리하고 격침을 경고했다. 정 의원은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이 문제의 결정을 군인에게 맡겨놓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에서 다른 통로를 통해 소련과의 협상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터키에 있는 미군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고 소련의 핵미사일 수송선을 철수하는 외교적 협상으로 이 사태는 일단락됐다. 정 의원은 외교적 노력은 하지 않고 사드 배치만 고집한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을 비판했다.

‘외교 없는 안보’의 결정은 쿠바 미사일 사태가 지난 지 50여년 후 한반도에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국회 국방위원이었던 진성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드 배치에 대해 “안보 제일주의와 군사 중심주의가 만든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진 전 의원은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서 안보만 고려하고 외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 시절처럼 군 중심 정치와 상명하복 문화에 신뢰를 보낸다면 결국 문민통제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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