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신작소설 '댓글부대'에 있는 것과 없는 것

권영미 기자 2015. 11. 2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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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현실감 바탕 힘있는 이야기 뛰어나..문장의 섬세함에선 아쉬움
© News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조금만 부추겨주면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는 애들한테 ‘동네 뒷산 오르는 주제에 무슨 엄살이냐’라고 비아냥거리고, ‘힘드니까 등산이다’라며 멸시하고. 자기들 인생 하나 성공하지 못한 종자들이, 자라나는 애들 미래를 발목 잡고 있어. 다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어야 해.”('댓글부대' 148쪽)

불과 몇년 사이 유력한 문학상을 여러 차례 거머쥔 '대세' 소설가 장강명이 신작소설을 냈다. 2012년 있었던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에 착안해 인터넷 여론몰이의 폐해를 다룬 '댓글부대'(은행나무)다. 이 소설엔 놀라운 요소가 많다. 이 작품이나 이 작품을 쓴 장강명을 전후로 해서 한국소설의 한 장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국문학이 상당기간 기다려온 재미와 사실성, 젊은 감각이 모두 담겼기 때문이다.

세 명의 20대 '잉여' 청년이 진보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잠입해 악성 댓글을 달면서 나치의 괴벨스 뺨치는 전략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사이트를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송사를 일으키고, 달리는 열차 위에 올라타는 '열차 서핑' 등을 하면서 '나는 강하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젊은층을 키워내며, 가짜 제보를 해 언론매체와 기자를 낚고는 파멸시킨다.

이 세 젊은이를 지원하는 배후는 돈 많은 회장이다. 회장은 가난과 싸워 이겨냈다는 자부심을 가진 전쟁 세대로, 사회분위기가 사람들이 힘차게 전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해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상낙원'을 믿지 않으며 사람을 천사로 대해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고 믿는 냉혹한 인물이다.

작가는 인터뷰, 카카오톡 대화 등의 다양한 양식을 끼워넣으면서 지루할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선일보, 신중현, 국정원, 삼성전자, 줌다카페' 등 실명이나 연상이 가능한 이름이 등장하면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점부터 독자들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강력한 점은 퇴폐적인 룸살롱 장면 등의 무시무시한 현실감일 것이다. 인물들이 가진 부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는 여성들의 미모에서 그 현실감은 좀 더 확연해진다. 게다가 '먹이를 주는 손은 절대 물지 않는다' 같은 번뜩이는 냉소적 통찰까지 담겼다. 회장이 여성들을 거느리고 청년 중 하나를 만나는 장면은 만화처럼 희화화된, 흥미로운 명장면이다.

그렇다면 장강명의 이 작품 속에 결핍된 것은 뭘까. 낭만과 섬세하고 깊이있는 문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품이 현실적일수록 낭만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낭만과 진지함을 비웃는 의도의 작품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쳐 일부의 인물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장기판의 말처럼 '사용'되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이 작품을 읽고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복마전같은 현실에 대한 공포와 무력감 뿐 아니라 이같은 작품 자체의 비정하고 비인간적인 요소도 한 이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속도감 있는 문장은 대신 섬세하고 깊이있는 문장을 잃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 이 때문에 '웃었다'는 표현에 '빙그레', '히죽', '킬킬', '실실' 등의 다소 판에 박힌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쓰인다.

하지만 힘있는 이야기와 놀라운 구성과 반전, 송곳처럼 정신을 찌르는 통찰력있는 대사 등은 아마도 장강명을 '대세'이자 젊은 작가중 최고의 '문제작가'로 부르는 데 충분한 요소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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