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해운업계의 늪, 그리고 동아줄

박찬규 기자 입력 2016. 5. 4.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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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호령하던 우리나라 해운업계가 몇년째 불황의 깊은 '늪'에 빠졌다. 위기를 직감하고 재빨리 '동아줄'을 꽜다면 빠져나왔을 텐데 발버둥치는 시늉만 하다 더욱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는 제아무리 단단한 동아줄을 잡더라도 자력 회생은 어렵게 됐다. 탈출은커녕 퇴출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국적 해운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결국 채권단에 생사를 맡겼다. 물론 공짜는 없다. 늪에서 꺼내주는 쪽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조건이 붙는다.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 하며 꺼내줄 경우 어떤 노력을 할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한진해운의 태도가 유독 논란이다. “네 지갑을 내가 갖고 있으니 꺼내줘야 돌려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은 자율협약 신청 전에 주식을 내다 팔았고,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포기한다고 밝혔지만 사재출연과 관련한 부분은 입을 닫았다. 이쯤 되면 채권단과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모든 책임이 '오너'에게 있다는 건 아니다. 주식회사에서 지분만큼의 유한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회사의 위기가 특정인에게서 비롯된 경우가 아닐 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지배구조가 얽힌 경우 오너의 영향력은 그룹사 전체로 퍼진다. 그래서 경영상 그룹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더라도 사재출연에 대한 요구가 거셀 수밖에 없다. 업계가 호황일 때 그만한 혜택을 누렸으니 상황이 바뀐 지금은 일정 부분을 환원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현정은 현대상선 회장이 출연한 사재 300억원은 4조8000억원에 달하는 회사 차입금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킷'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런 노력이 투자자들에게 울림을 줬고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한번에 탈출하기엔 짧지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동아줄'을 감을 덩굴 한줄기라도 내놓은 셈이다.

출연금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책임자로서 회사 구성원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책임감을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 오너의 사재출연은 회생을 향한 의지의 표현이면서 경영실패에 대한 참회를 내포한다. 그것이 진정한 오너십이며 우리 사회가 기업에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해운업계 경영자들이 지금 꼭 새겨야 할 덕목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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