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논란 김흥기, 빅데이터 전문가와 계약 왜 공개 못하나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김신애 통신원 2016. 8. 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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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국과학원 쓰용 교수는 8월 18일 새벽 1시30분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하면서 취재진이 김흥기씨와 체결한 계약에 대해 질문을 하자 “내가 대답할 의무가 있느냐”며 일절 답변을 거부했다./강진구 기자

ㆍ2013년 8월 중국과학원 쓰용 교수와 계약 체결 이후 김흥기씨 행보 의문 증폭

‘살아 움직이는 댓글부대’ 의혹을 1년 반 넘게 추적·보도해온 <경향신문> 취재진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과학원 빅데이터 센터 쓰용 교수를 만난 것은 8월 18일 새벽 1시쯤이었다. <경향신문>은 2012년 국정원 심리전단이 주도했던 재래식 댓글부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과정에서 쓰용 교수의 역할을 오랫동안 주목했다. 그러던 중 그가 8월 16일 충남 아산 ㅎ대학에서 개막하는 국제학술대회의 공동의장 자격으로 참석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꼬박 이틀을 추적한 끝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 간 계약은 무슨 목적이었나?

이에 앞서 <경향신문>이 최초 쓰용의 존재를 주목하게 된 데는 2013년 8월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와 체결한 의문의 계약이 존재한다. 김씨는 쓰용 교수와 계약을 체결한 후 2013년 9월부터 서울 강남에서 중국과학원 이름을 딴 3개월짜리 지식재산 최고위과정을 운영하며 스스로를 한국교육원 원장으로 행세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경향신문>이 중국과학원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한국교육원은 정식 승인을 얻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까지 쓰용이 가짜 한국교육원 개설에 공모를 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김씨는 “최고위과정은 (쓰용 교수와) 적법한 운영계약에 따라 이뤄졌고 계좌로 송금까지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한 4개 학기에 걸쳐 106명의 수강생을 모집하면서 1인당 300여만원의 수강료를 받았는데도 적자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쓰용에게 최소한 억대 이상의 돈이 건네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쓰용이 최고위과정 운영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사람 간 계약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쓰용 교수는 김씨가 최고위고정을 운영할 때 입학식이나 수료식에 참석하고 김씨의 학생들에게 반나절짜리 필드트립(견학) 코스를 제공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수료증도 발급해줬다. 하지만 고작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견학코스를 제공하고 수료증을 발부해준 대가로 억대의 금액이 건네진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결국 이 모든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공개하면 된다.

하지만 김씨는 “쓰용 교수가 계약서가 언론에까지 알려지는 것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며 계약서 공개를 미루고 있다.

이 점에서 쓰용이 제 발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김씨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8월 18일 새벽 1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만난 쓰용 교수는 가까이 다가간 취재진에게 “당신들은 누구냐”며 극도의 경계심부터 표시했다. “해럴드 김(김흥기)과 체결한 계약서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당신이 최고위과정 운영을 승인해준 게 맞습니까.”

쓰용은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내가 대답할 의무가 있느냐”는 딱 한마디만 남긴 채 공항을 빠져나갔다.

과연 무슨 사연이 있길래 두 사람은 이처럼 계약내용을 공개하는 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까.

일차적으로 중국은 댓글부대가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중국에 ‘우마오당’(五毛당)이라 불리는 댓글부대원이 1052만명이 넘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얼마 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 게리 킹 박사 연구팀이 2013년 2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장시성(江西省) 인터넷 선전부에서 유출된 이메일 2000개와 온라인 게시글 4만3800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마오당이 SNS를 통해 유포한 정부 옹호성 댓글이 연간 4억880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물론 중국과학원 빅데이터센터를 직접 ‘댓글부대’와 관련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국과학원 빅데이터센터 잉 리우 교수는 8월 17일 <경향신문> 기자에게 “우리 센터는 정부 프로젝트 용역을 맡아 처리하면서 지금은 여러 정보원으로부터 수집된 이질적인 데이터분석(multi-source heterogeneous data)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우리가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모델을 해외에 팔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두 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김씨가 쓰용과 계약을 체결한 시기다. 김씨가 ‘댓글기지’ 의혹을 받고 있는 그린미디어라는 신생매체에 손길을 뻗친 시기는 2013년 중·후반 무렵으로, 쓰용과 만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당시 그를 쓰용과 연결시켜준 인물로 KAIST 이모 대학원장이 거론됐다. 이 원장은 김씨가 2013년 11월 미래부로부터 1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글로벌창업정책포럼을 설립할 때도 자문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ㅎ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쓰용 교수와 공동의장을 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8월 17일 학술대회 만찬장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김씨를 쓰용 교수에게 연결시켜준 사람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는 “쓰용 교수와 김씨랑 밥 한 번 같이 먹은 게 전부이고, (김씨를) 최근에 언제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원장은 바로 하루 전날 쓰용 교수, 김씨와 함께 나란히 학술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기념촬영까지 했다. 특히 학술대회가 열린 ㅎ대학은 김씨가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2012년 2학기부터 2년간 창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던 곳이기도 했다. 김씨가 ㅎ대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낸 2014년 2월 ㅎ대는 쓰용 교수의 빅데이터센터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물론 김씨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정확히 드러난 게 없다. 다만 ㅎ대가 쓰용과 협약을 체결한 바로 그 시점은 그린미디어가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별관에서 ‘댓글부대’로 의심받는 수상한 용역에 착수한 시기와 일치한다. 당시는 김씨가 이미 그린미디어의 운영에 깊숙이 간여하기 시작한 때였다. 당시 그린미디어 직원 중 한 명은 “김씨가 청와대에 있는 동생을 통해 네이버를 움직인 것으로 안다”고 제보를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취재 결과 청와대에 김씨의 동생이 있다는 제보는 사실이 아니었다. 다만 제보 내용대로 그린미디어는 김씨가 전·현직 장·차관들을 끌어들여 ‘파워인터뷰’를 진행하기 시작한 후 6개월 만에 네이버 뉴스검색 제휴사로 가등록이 이뤄진다.

그린미디어가 구축한 시스템의 목적은

특히 그린미디어가 네이버의 뉴스검색사로 등록이 된 것은 ‘댓글부대’ 의혹과 관련해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김씨가 쓰용과 계약을 체결한 2013년 8월 무렵 그린미디어는 짐스(GIMS)라고 불리는 정보분석 및 처리, 기사 배포까지 일괄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시도했다. 짐스는 SNS 여론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하는 빅데이터 응용기술까지 접목이 돼 있다. 2014년 KTL 별관에서 수상한 용역에 동원됐던 최모씨(35)는 “짐스로 작성된 기사는 그린미디어에서 발행하는 <글로벌이코노믹> 온라인 기사로 올라갔다”고 했다. 증언대로라면 그린미디어가 네이버에 등록됐다는 의미는 짐스 운영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기사를 국내 최대 포털을 통해 흘려보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린미디어 이외 다른 매체까지 링크시킬 수 있다면 짐스 운영자는 웬만한 언론사 이상의 파워를 보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짐스 안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아이디를 숨겨둔 방이 발견되기도 했다. 과연 그린미디어는 왜 이런 도깨비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던 것일까.

국내 한 빅데이터 전문가는 “2012년 댓글부대가 포털, 커뮤니티, SNS 등으로 분야를 나눠 다수의 사람들을 동원하는 방식이었다면 짐스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보수우익 단체인 애국시민연합의 김상진 SNS 단장이 지난 6월 김흥기씨가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제안한 청원사이트와 관련해 “(김씨를 통해) 내가 미처 모르던 걸 알게 됐다”고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김 단장은 2012년 대선부터 2014년 세월호 사태를 거쳐 4·13 총선까지 다수의 유령계정을 동원한 SNS 여론전을 통해 보수진영으로부터 꽤 유명세를 얻은 전문가다. 그런 그가 ‘한 수 배웠다’고 김씨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다. 과연 김씨는 전통적인 방식의 SNS 여론몰이에 머물러 있던 김 단장에게 뭘 가르쳐줬던 것일가. 이래저래 빅데이터 전문가인 쓰용과 김씨가 2013년 8월 체결한 계약을 둘러싼 비밀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와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과 친분을 과시하면서 감사원과 검찰의 손발까지 꽁꽁 묶은 김씨의 거침없는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진화된 ‘십알단’의 망령이 어른거리고 있다.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김신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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