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안철수는 내각제에 포위됐다 / 김의겸

2016. 1. 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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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철수 의원은 내년 총선 목표를 개헌 저지선 확보에 두고 있다. 100석이 마지노선이다. 사실 안 의원이 탈당만 하지 않았다면 야당이 쉽게 얻을 수 있는 의석이다. 그런데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분열은 현실이 됐고 여당은 목표치를 200석으로 높이는 중이다. ‘100석만 넘기면 개헌을 막을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묘하게도 안철수 신당에 몰려드는 의원들 대부분이 내각제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국회에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해달라’는 의원들의 결의안이 올라왔다. 여당 10명, 야당 26명이 이름을 올렸다. 26명 가운데 문병호 유성엽 황주홍 김동철 의원이 들어 있다. 안철수를 따라 탈당한 의원들이다. 모두들 ‘독일식 내각제’에 동의했다고 한다.

신당에서 기획을 맡을 최재천 의원은 탈당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내각제 개헌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분명히 밝힌 것이다. 김한길 의원은 탈당 때 “양당 중심 정치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허물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다당제를 추진하겠다는 거고, 다당제라면 내각제와 잘 어울린다. 유럽이 그렇다. 김 의원은 1997년 5월 김대중 총재를 만나 내각제 공론화를 요구한 적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신념의 소유자다. 임내현 의원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헌 찬성’을 밝힌 적이 있다. 안철수와 함께하겠다고 탈당한 7명 모두가 개헌론자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김한길 의원을 빼고는 모두 호남 출신이다. 왜 그럴까? 호남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승자독식 구조인 대통령제 아래서는 소수파가 권력을 나눠 가질 기회가 아예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옛날에는 ‘영남 개혁세력’과 손잡고 정권교체를 시도했고 성공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 ‘호남 비노’ 의원들은 그런 그림을 지웠다. ‘친노’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대통령제 아래서 정권 탈환은 포기하고 내각제에서 호남의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이 며칠 전 페이스북에 올린 “호남정치 복원을 위해 이원집정제나 내각제 개헌을 하자”는 글이 이런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호남정치 복원’ 말이다.

이 지점에서 안철수와 호남 의원들 사이에는 균열이 존재한다. 지금은 금이 희미하지만 총선 뒤에는 틈새가 눈에 확 들어올 수 있다. 물론 신당이 제1야당이 되고 안철수의 지지율이 높다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라도 무너지면 호남 의원들은 따로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지금 여의도에서는 총선 뒤 내각제 개헌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청와대가 추진하고 야당의 일부 의원이 동조할 거라는 시나리오다.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받는 지지율에 비례해 의석을 나누는 ‘독일식 선거’가 전제된다면 한번 검토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선거법 협상에서 ‘아흔아홉 석 가진 사람이 백 석 채우겠다’고 달려드는 새누리당의 심보를 목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럽식의 내각제는 낭만일 뿐이다. 그저 장기집권 체제를 굳히기 위한 일본식 내각제만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를 마친 뒤인 2018년 4월 재보궐선거를 통해 ‘내각제 총리’로 귀환할지 모른다. 둘은 동갑내기다.

김의겸 선임기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 안철수 의원은 ‘집권세력의 확장 저지’라는 일념으로 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땀을 흘릴수록 내각제 개헌의 문은 더 활짝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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