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 기장 "대한항공 파면조처 부당하다..끝까지 싸우겠다"

입력 2016. 3. 9. 15:48 수정 2016. 3. 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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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정상화 절실"

“씩씩해야죠. 우울하면 지는 겁니다.” 박모 기장은 전날 파면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 하기엔 의외로 밝았다. 휴가 한 번 제대로 못썼는데 이제는 많이 쓸 수 있게 됐다는 농담도 건넸다.

박 기장은 공군 경력을 포함해 28년 동안 비행기를 몰았다. 대한항공에는 1998년 2월 입사했다. 올해로 19년차다. 비행 경력 절반 이상을 대한항공에서 보냈다. 그런 그가 한 순간에 기장 직급을 잃었다. 꽉 차 있던 비행 일정도 사라졌다.

대한항공이 그를 파면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7일 운항본부 자격심의위원회를 열고 박 기장이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고의로 항공기 출발을 지연한 데다 규정을 어겨 운항을 거부했다는 이유다.

박 기장이 당시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시사비즈
◇“승객 안전과 법을 지키기 위해 운항을 거부했다”

‘24시간 내 연속 12시간 근무’ 규정이 발단이었다. 24시간 안에 연속 1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비행 안전과 직결하는 조종사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 규정은 대한항공 노사 단체 협약을 통해 보호 받는다.

박 기장은 지난달 21일 인천발 필리핀 마닐라행 KE621편 여객기를 조종했다. 8시간 휴식 후 마닐라발 인천행 여객기를 운항할 예정이었다. 박 기장은 마닐라발 인천행 여객기 운항을 거부했다. 해당 여객기를 조종하면 연속 12시간 4분을 근무하기 때문이었다.

“4분 초과했는데 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법을 어기게 된다. 12시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정상적인 항공사라면 1분 지나도 조종사에게 먼저 가지 말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승객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대한항공은 단협 상 비정상 상황(항공교통·관제 사유, 기상, 항공기 고장 등) 시에는 14시간 근무가 가능하고 국내 항공법 상 13시간 연속 근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박 기장은 2분 가량 관제 지연 사항이 있어 비정상 상황이 적용 된다고 보고 있다.

박 기장은 “천재 지변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곤 일반 상황을 적용한다. 항공교통관제 장치(ATC)로 인한 관제 지연은 2분 정도는 연장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근무시간을 2시간 연장 가능하다는 해석은 잘못이다”고 반박했다.

◇“고의성은 없었다···오히려 시간을 줄이려 했다”

대한항공은 또 박 기장 파면 이유로 비행 전 브리핑을 평균 소요 시간보다 3배 이상 끌었다는 점도 들었다. 고의로 비행기 출발을 지연시켜 도착이 24분 지연됐고 이어진 운항 거부로 업무를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박 기장은 이에 대해 “고의가 아니다. 규정과 절차에 따랐다. 평소 마닐라 노선과 국제공항은 변수가 많아 비행 전 봐야하는 노탐(NOTAM·안전 운항에 필요한 항공 고시) 분량이 많다”며 “당일에도 마닐라공항 계기착륙장치(ILS) 한 쪽이 고장나 위성 항법 장치로 착륙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이 경우 출발 전 해당 공항 차트를 꺼내 놓고 일일이 다 확인해야 한다. 이 분량만 A4 용지 15장 분량이다. 사측 주장과 달리 20분 내에 물리적으로 끝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회사 원칙은 안전성, 쾌적성, 정시성, 경제성 순서다. 어떤 경우에도 안전성은 먼저 지켜져야 한다. 규정대로 안전성을 우선시했는데 회사에서는 정시성을 안 지켰다며 문제 삼았다”고 덧붙였다.

박 기장은 사측 주장과는 달리 지연 방지에도 노력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중요 마닐라 공항 정보는 자택에서 먼저 확인했다. 운항 브리핑 역시 규정보다 약 5분 일찍 시작했다. 시간 절약을 위해 객실 합동 브리핑에 객실 승무원을 먼저 보냈다”며 “지연하려 했다면 비행기를 멈췄을 것”이라 말했다.

예정보다 24분 늦게 도착한 사실에 대해선 인천공항 출발 혼잡, 관제기관 출발허가발부 지연, 항로상의 기류 요란 등으로 인한 것으로 비행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유라 주장했다.

◇“비정상의 정상화”

그는 대한항공의 안전 의식 부재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규칙 무시하면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며 비현실적인 업무 처리 과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닐라 노선만 2월 한달간 평균 1주일에 한번씩 20분 이상 항공기 지연이 발생했다. 이건 비행 일정이 잘못된 거다. 항공기 운항 시간이 법과 규정 테두리 내에서 간당간당하게 정했다는 증거다. 안전 비행을 위한 브리핑 시간으로 20분도 촉박하다.”

박 기장은 업무를 고의로 방해했다는 증거가 없는데 중징계인 파면에 처했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건데 처벌 받았다. 승객 안전에 위협이 된다면 비행을 거부하는 게 정상인 거다. 자격심의위원회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 소명했다.”

박 기장은 대한항공으로부터 파면 통보 문서조차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파면 징계가 공식화되면 즉각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또 고용노동부에 제소하고 기타 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박 기장이 재심을 요청할 경우 중앙 상벌심의위원회에서 재소명 기회를 가진 뒤 최종 징계를 확정할 계획이다.

송준영 기자 / song@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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