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동법 절차 무시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 결정

2016. 4. 2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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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추진되는 등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기획재정부의 압박에 따른 공공기관 간 무리한 실적 경쟁이 노동법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어제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120개 공기업·준정부기관 중 40개 기관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 중 상당수는 노동법에 정해진 절차를 무시해 심각한 마찰과 내분에 휩싸여 있다.

대법 판례에 따르면 성과연봉제 도입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므로 반드시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부산항만공사를 시작으로 서부발전, 남동발전, 울산항만공사, 중부발전이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전 직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특히 중부발전의 경우 부서별로 동의서 수량을 강제로 할당해 내려보내고도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어제 오전 이사회를 열어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서울화력본부 운영실장이 과장급 직원들을 불러 모은 뒤 ‘각 과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든, 사다리를 타든 2장씩 동의서를 써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발전공기업 중 가장 먼저 찬반투표에서 가까스로 반을 넘긴 한국전력 역시 ‘투표소에 가림막이 없었다’ ‘관리자가 상주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등 공개투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기재부가 차등성과급을 무기로 실적경쟁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지난 25일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를 직접 점검하겠다’며 노동개혁의 핵심사안으로 강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서도 중부발전 관리자가 “대통령이 선거에 지고 다음날 노르웨이 총리를 만나 흔들림 없이 노동개혁을 한다고 했다”며 성과연봉제 도입 지연 시 엄청난 불이익을 볼 것처럼 직원들을 위협했다. 결국 박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불법적인 성과연봉제 도입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해봐야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없는 것은 물론 온갖 소송과 마찰로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성과연봉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제도 취지, 장단점, 평가방법 등에 대해 노사 간 충분한 대화와 제대로 된 집단적 동의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노동개혁은 노동법의 기본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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