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태어나다

최윤필 2016. 5. 6.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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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5월 6일
지그문트 프로이트.

160년 전 오늘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태어났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로 심리학과 정신의학계의 20세기 절반을 지배한 정신분석학파를 창시했다. ‘절반’이라고 했지만 그의 문제의식과 개념들은 예술ㆍ인문ㆍ사회과학 전반에 깊이 스며 원심분리기를 써도 걸러내기 힘든 프로이트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1899년 11월 역저 ‘꿈의 해석’을 출판했다. 일상의 말과 행동, 느낌, 충동 등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의 영향을 받으며, 무의식은 복잡 다양한 방어기제- 억압, 합리화, 투사 등-를 발동해서 의식과 삶을 지배하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창구가 꿈이라는 것이 그의 이론의 핵심이다. 유년의 경험, 특히 성 욕구가 존재 전반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쳐 불안과 신경증 등 온갖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며, 심리치료를 위해 무의식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치료법으로 ‘대화(치료)’를 권했다.

그의 이론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성욕을 근거 없이 강조한 점, 인간을 무의식ㆍ유년 경험에 가두려 한 점 등이 공격 대상이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선,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우상의 추락’(전혜영 옮김, 글항아리)에서 프로이트 개인의 고백이자 남근숭배주의의 한 반영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예컨대 애인 앞에서 저도 모르게 옛 사람 이름을 언급하는 일- 프로이디언 슬립(Freudian Slip)이라고 한다-을 결별해야 할 과학적 근거로 여기는 이들은 있다. 아들러, 융 등의 신프로이트학파는 프로이트의 사적 체험적 편향에서 벗어나 사회적ㆍ집단적 영향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의 담대한 발상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충동과 무의식의 관계를 알게 했고, 성격 발달과 유년의 중요성에 눈 돌리게 했고, 무엇보다 대화치료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인류에게 성의 심리학적 중요성을 용감하게 수용하게 했고, 의식이 주체를 기만할 수 있고 또 자주 기만한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했다.

유대인인 그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1938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 이듬해 숨졌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ankookilbo.com(mailto: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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