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예술계에도 '살찐 고양이 법'을

2016. 7.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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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현대 경영학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는 철학자 피터 드러커는 <프런티어의 조건>에서 고위 경영자의 연봉은 말단 직원 연봉의 20배가 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막대한 임원 보수는 기업의 성과와 관련이 거의 없으며, 또한 최고경영자와 직원 간의 봉급 비율이 20 대 1 이상이 되면 직원의 사기가 저하되어 오히려 조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지난 6월28일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에 의해 발의됐다. 일명 ‘살찐 고양이 법’으로 불리는 최고임금법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법인 임직원의 최고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의 30배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는 데에 있다. 덧붙여 그는 법인 기업은 30배, 공공기관은 10배, 그리고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어길 시에는 개인과 법인에 부담금과 과징금을 부과해, 여기서 거둬들인 그 수입으로 저소득층 지원 사업에 활용하자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당장 법적 실효성은 없다 하여, 이 법안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최고임금법은 최저임금법과 더불어 사회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대책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로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6030원을 적용해 최고임금을 계산하면, 법인의 최고 연봉자가 가져갈 수 있는 연봉은 한 해 4억5670만원이 된다. 그런데 과연 그 정도의 연봉을 받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전경련에서 발표한 소득분위별 평균연봉에 따르면, 지난해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은 임금근로자는 39만명으로 2.7%에 불과하다. 최고임금법이 시행되어도 97.3% 이상의 사람들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고소인 및 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나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살찐 고양이 법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명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연봉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정명훈 전 감독이 지난주 검·경 출석차 귀국했다. 그는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고소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서, 시민단체들이 고발한 항공료 횡령 혐의로 경찰에서 각각 조사를 받았다. 두 건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가 진행 중으로, 그는 두 가지 혐의 모두 전면 부인하고 있다. 조사를 받고 나오며 보무당당하게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외치던 그의 모습을 아마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온도차는 극명하게 갈린다. 극단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이유로 그의 연봉도 한몫하는 듯하다. 그의 연봉은 2011년 재계약을 앞두고 처음 일반에 공개되었을 때부터 문제가 되었다. 2010년 그가 서울시로부터 받은 총금액은 연봉과 활동비를 포함해 20억4200만원에 달했다. 고액연봉으로 파문이 일자, 그는 연봉을 삭감해 재계약을 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서울시향을 떠날 때까지 그가 받은 돈은 한 해 평균 13억~15억원이었다.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정명훈 급의 해외 지휘자가 받는 수준에 비해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의 혈세로 거액의 연봉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미 최고임금법이 시행 중이었다면 어땠을까. 서울시향이 재단법인인 측면을 강조한다면 4억5천만원이, 이와 달리 서울시향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1억5123만원이 상한액이 된다. 1억5천이든, 4억5천이든 서민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금액이지만, 정명훈이라면 그만한 액수를 받을 가치는 있는 지휘자라고 서민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차가운 시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임금격차가 벌어지면 조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비단 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문화계, 예술계의 양극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고임금의 제한은 필요해 보인다. 물론, 당장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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