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교과서가 선행학습 부추겨"
[동아일보]
“학교요? 재미없어요. 아는데 또 배우니까 지겨워요. 근데 제 짝꿍은 좀 멍청한 것 같아요. 한글도 몰라서 맨날 저한테 물어봐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한모 양은 학교 공부 난이도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한 양은 입학 전 이미 문장을 막힘없이 수려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한글을 떼고 갔다.
반면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다는 박모 군은 “셈은 할 수 있는데 수학책에 나온 한글을 읽는 게 너무 어렵다”며 “옆자리 친구는 미리 한글을 다 배우고 와서 잘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초등 1학년부터 학업의 ‘계층화’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경력 26년 차의 초등교사 민모 씨는 “과거에 비해 교과서 분량이 많고 어려우니까 학부모들이 불안해하고 선행을 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선행을 한 아이들은 학교를 지겨워하고 안 한 아이들은 계속 힘들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글 실력차에서 비롯된 수학의 갭이 커지면 5, 6학년이 되면 아예 안 한다”며 “수학적 능력이나 잠재력과 관계없이 ‘수포자’가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한국과학창의재단에 따르면 현재 초등생의 8.1%가 수학 공부를 포기한 ‘수포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초등 6학년의 36.5%가 수포자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초등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 씨는 “막상 입학을 해보니 선행을 안 시킨 게 너무 후회되더라”며 “뒤늦게 따라가느라 수학 학원을 ‘사고력 수학’ 따로 ‘연산 수학’ 따로 다녀야 했다”고 토로했다.
초등교사 이모 씨는 “원칙은 1학년 입학 후 한글을 배우는 것이지만 이는 원칙일 뿐 1학기 수학 교과서에 이미 한글 문장이 나온다”며 “지금의 교과서는 선행학습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사 김모 씨는 “1학년밖에 안됐는데도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밤새 울었다는 아이도 있다”며 “기초 개념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만 워낙 분량이 많고 진도가 빠르다 보니 교과서를 줄줄 읽기만 해도 40분, 45분이 모자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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