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의 초록마녀 빗자루]두려움이 우리를 가르친다

황윤 영화감독 2016. 10. 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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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불안함에 잠을 뒤척일 때도 많다. 눈을 뜨면 뉴스부터 확인한다. 삼풍백화점, 세월호, 그리고 지진에 무방비상태인 핵발전소. 다른 나라에선 겪지 않아도 될 참사의 가능성이 한국에선 일상이 돼버렸다.

지난 9월 지진과 함께 우리는, 현 정부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전 국민의 목숨을 재난에 방치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통렬히 체험해야 했다.

지난여름 누가 더운지 모를까봐 지겹게도 폭염주의 문자를 매일 날려대던 정부는, 막상 지진이 났을 때는 아무런 문자를 대다수 국민에게 보내지 않았다. 지진과 핵발전소 사고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기본 매뉴얼조차 없다. 정부로부터 기대할 안전망이 전혀 없음을 깨달은 불운한 국민들은 텔레그램 앱을 깔아 ‘지진희’로부터 지진 소식을 받는다.

물과 비상식량으로 ‘생존 배낭’을 꾸리는 법을 일본 매뉴얼에서 배우고, 핵발전소 사고 시 대처법을 인터넷 카페에서 습득한다. 각자도생이 일상이 된 나라.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우리도 생존 가방을 챙겨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무엇을 들고 갈까 생각해 보았다. 아끼던 책들과 아들의 장난감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고생해서 찍은 촬영 데이터가 담긴 하드디스크도 두고 가야 할 것이다. 방사능에 노출된 물건은 어디 가도 환영을 못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핵 사고가 일어나면 한국은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고 우리는 죽거나 난민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장례식은 사치가 될 것이다.

지진 후, 그동안 다른 책에 밀려 있던 책 한 권이 문득 생각났다. 체르노빌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체르노빌의 목소리>였다. 소방대원의 아내, 마을주민, 군인, 국립대학 교수, 해체작업자, 해체작업자의 아내, 기술자, 기자, 카메라 감독, 사진작가, 교사, 의원, 부모,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활자는 목소리가 되어 웅성거렸다. 살아남았지만 산 것이 아니고, 죽었지만 떠나지 못하는 넋들이 탄식하며 이야기했다. 체르노빌이라는 연옥을 서성이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목소리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일제 크레인이 사고원전 지붕 위에서 조금 작동하다가 멈추었다. 과학자 루카초프가 화성탐험을 위해 만든 로봇이 죽어갔다. 사람을 닮은 일본 로봇도 방사능 수치 때문에 타 버렸다. 집에 방사선 측정기를 갖다 대니 기계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를 넘어버렸다. 텔레비전이 고장 날 정도였다. 오븐은 차라리 소형 원자로에 가까웠다. 그런 곳에 군인들이 강제 동원되어 방사능 재를 치웠다.

해체작업자는 납으로 만든 속옷을 입고 일을 했다. 발전소 당직자는 폭발 몇 분 전에 빨간색 비상 버튼을 눌렀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치료를 위해 모스크바로 보내졌지만 의사들은 손을 내저었다. “치료할 게 있어야 살리죠.” 그는 죽었고, 관은 포일에 싸서 매장되었다. 그리고 1m 반 두께의 시멘트 판과 납 한 겹이 그 위를 덮었다. 사고 직후, 소방대원이 현장에 투입됐다.

피폭되어 죽어가는 그에게 아내가 다가가려 할 때 의사가 소리쳤다. “가까이 다가가면 안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사고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들은 웃지 않았고, 15분만 서 있어도 코피를 흘렸다. 온몸에 구멍 하나 없이 막힌 아기가 태어났다.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과거가 아닌 미래를 읽고 있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마치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서 일어날 일들을 과거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이 목소리가 하는 말들은 경고일까, 아니면 예언일까.

과학기술에 대한 오만이 재앙을 일으켰다. 소련 핵에너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러시아의 물리학자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는 “소련의 원전은 크렘린 궁전 바로 옆 붉은광장에 세워도 될 만큼 안전하다”고 했었다. 체르노빌, 스리마일,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후에도 한국의 원전업계와 정부와 원자력학과 교수들은 원전이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활성단층 위에 세계최대 밀도로 원전을 세워놓고도 아무 일 없을 거라 한다. 14기의 원전이 몰려있는 경주·부산 원전단지 인접한 곳에 2개의 활성단층이 존재하고 여기서 최대규모 8.3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4년 전 제출됐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신규원전 건설을 허가했다.

올해는 체르노빌 사고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고 원전을 덮었던 석관에 균열이 가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새로운 석관을 덮고 있다. 여전히 기형아들이 태어난다. 그곳에 사람이 다시 살 수 있으려면 수만년의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초가을에 태풍이 한국을 강타했다. 유례없는 일이다. 원인은 높아진 해수온도 때문이라고 한다. 기후변화로 앞으로 더 자주, 더 강한 태풍이 올 것이다. 20년에 걸쳐 체르노빌 생존자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저자는 세계의 독자들에게 간곡히 말한다.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한국의 원전업계에 지금 필요한 것, 그것은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 가슴이다. 자연의 경고를 들으라. 그리고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부디 놓치지 마라.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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