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이긴 것 같다' 메시지..대선 당일 무슨 일이 벌어졌나

정용인 기자 입력 2013. 12. 7. 14:14 수정 2013. 12. 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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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선대위 공보단장의 '당선 무효 투쟁' 엄포… 대선 투표일을 전후에 벌어진 의아한 상황들, 도대체 무슨 곡절이 있었던 걸까.

'문재인 50.4%, 박근혜 48.1%.' 2012년 12월 19일 오후 기자가 받은 문자메시지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 캠프 쪽 인식도 비슷했다. 107만표에서 160만표까지. 당시 문 캠프 전략기획팀에서 제시한 숫자다. '문재인 승'이라는 것이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출처가 불명확한 '소문'이 돌았다. "언론사 차량이 문재인 후보의 집 쪽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문재인이 이긴 것 같다." 때이른 축하메시지가 문 캠프 관계자들에게 답지했다. 그리고 멘붕.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YTN 한국리서치를 제외한 방송3사의 예측은 '박근혜 당선'이었다. '혹시나' 하며 역전을 기대했던 문 후보 지지자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방송사 개표 진행 내내 단 한 차례의 역전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늦게까지 '정권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 것은 새누리당·보수 쪽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정현 당시 선대위 공보단장은 "문재인 명의의 불법 선거운동 문자가 전국적으로 뿌려지고 있다"며 기자들에게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방은 (우리가) 총을 완전히 내려놓은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는 무자비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 설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당선무효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조갑제 전 < 월간조선 > 편집장도 이날 5시30분 넘어 '한 공무원'으로부터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받을 때까지 낭패한 기분에 사로잡혔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날의 기록을 < 우리 생애의 가장 길었던 날 >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남겼다. 조 전 편집장에 따르면 투표 이틀 전, 새누리당 쪽에서는 갖고 있던 '노무현·김정일 회의록 전문 공개'를 검토하는 회의를 가졌지만, "모험할 필요 없다"는 결론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조 전 편집장은 출구조사 발표 시간이 다가오면서 "만약 문재인이 당선되면 회의록을 일찍 공개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일등공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책에 적고 있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던 도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박민규 기자

지지율 '골든 크로스' 엇갈린 주장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선거 막판에 '문재인 승리'가 기정사실화되었던 이유가 의아스럽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이전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면 전체 대선 레이스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는 한 번도 박근혜 후보를 앞선 적이 없다. 문 후보 쪽에서는 선거 막판, 이른바 골든크로스, 즉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지지율이 교차하는 순간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골든크로스가 있었다는 데 모든 여론조사 기관이 동의한 것은 아니다. 한국갤럽이 대선 결과를 종합해 발간한 책 < '12 제18대 대통령선거 투표행태 > 에 공개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의 지지율 추이에서는 서울(12월 13~14일)과 인천·경기(12월 17일) 지역에서만 해당 현상이 나타났을 뿐 전국적 범위에서 '박 후보 우세' 경향은 끝까지 지속됐다. 장덕현 한국갤럽 기획조사실 부장은 "선거일에 임박하면서 차이가 좁혀졌을 뿐 역전현상은 적어도 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의원이 이번에 낸 책 < 1219 끝이 시작이다 > 에서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리얼미터의 선거 여론조사 결과다(책 275쪽). 책에서 인용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골든크로스가 나타난 날은 12월 15일 토요일이다. 그러나 이 골든크로스는 오래 가지 않았다. 12월 17일 다시 박근혜 후보가 재역전하여 앞섰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12월 16일 밤 11시, 경찰은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의 중간수사 결과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그날 있었던 후보토론에서 12월 11일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시각차를 보였다. 경찰의 발표는 이날 TV토론에서 "선거 승리에 혈안이 된 민주당이 사건을 조작한 것이며, 젊은 여성을 장시간 감금한 인권유린이었다"는 박근혜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경찰의 편파적인 수사 발표는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것이었을까. 문 의원은 이번에 발간한 책에서 리서치뷰의 지난 8월 인천시민 100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예시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응답자 중 13.8%는 "경찰이 사실대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를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같은 여론조사기관이 전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박 후보 지지자의 약 8.3%가 문 후보를 찍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그랬다면 선거 결과가 뒤집힐 수치다.

역사에서 가정은 헛된 것이다. 문 의원은 책에서 이렇게 못을 박고 있다. "12월 19일, 저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선거였습니다. 선거에서 진 것이 그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선거가 공정하지 못한 덕으로 박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논란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문 의원이 이번에 책을 낸 것 역시 대선불복의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 의원의 회고록 발간과 관련,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2년 대선 패배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가 계시면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새 정부(김영삼 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성원하고 지켜봐줬다고 저는 기억하고 있다"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것이 품격인지는 모르겠다"고 발언했다.

문 의원 측 관계자는 이 수석의 발언과 관련, "이미 대선 직후에도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입장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명서 등을 통해 충분히 이야기했는데도 왜 '대선불복'을 꺼내드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비망록에 여당 '대선불복' 공세

사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나오는 '부정선거-정권퇴진론'에는 여러 주장이 섞여 있다. "지난 대선에서 총체적 선거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의 핵심은 국정원,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관권 선거개입이지만 더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 지난 대선 당시 유권자 개개인의 투표권 행사나 투표 결과에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반면, 지난 대선 직후부터 '대선 무효소송' 등의 활동을 벌여온 일각에서는 국정원의 광범위한 개입뿐 아니라 선관위가 개입된 개표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주장은 박창신 신부가 부정선거의 근거로 제시했던 '부정선거 백서'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관권개입 사건의혹 진상규명을 위해 289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국정원 사건 시국회의'의 핵심 실무자는 "일부에서 그런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 의혹을 제기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며 "개인적으로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한 운동을 벌여나가는 데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가 신중하게 생각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시국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이회창 후보 쪽에서 개표조작을 주장했다가 근거없다는 지적을 이미 받지 않았느냐"며 "(개표조작 주장은) 지난 대선이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이었는데 졌다는 데서 오는 인지 부조화에서 비롯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시국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잘 알다시피 닉슨 미국 대통령이 결국 물러나게 된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 도청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은 모른다, 관련되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라며 "광범위한 관권 개입이 사실로 판명난 지금 박근혜 정부가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기 때문에 정권퇴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정당성 위기는 대선 전 관권 개입 선거를 자행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대선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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