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통제 못할 괴물 풀어놨다 '똥물튄다' 외면한 시민사회도 문제"

입력 2014. 12. 29. 17:35 수정 2014. 12. 29. 17: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담회] 한홍구-이태호-이재화의 격정 토론

[오마이뉴스 손우정 기자]

환호성과 개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둘러싼 두 가지 반응이다. 오랫동안 종북 척결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장했던 보수세력은 환호성 일색인 반면, 야권과 개혁적 시민사회는 비통함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불필요한 이념갈등의 종식"을 주문했던 헌법재판소의 의도와 달리, 대한민국 사회는 또 다시 모세의 기적을 연출하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 판결을 "역사적 결정"이라 했지만, 그것이 스스로의 주장처럼 '자유민주주를 지켜낸' 것일지, 유신이 그랬던 것처럼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을 교살한' 역사적 결정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집담회

집담회 참가자들은 통합진보당 해산이 "헌법재판소가 자신을 낳아준 민주주의를 교살한 존속살해"라는 평가에 동의했다. 왼쪽부터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이재화 민변 사법위원장,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손우정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세 사람이 모여 '역사적인'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집중 성토했다.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국 사회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 정당해산 심판에서 통합진보당측 변호인을 맡았던 이재화 민변 사법위원장이다.

"헌법재판소, 결론 정해놓고 독심술로 퍼즐 맞췄다"

- 통합진보당이 헌재에 의해 해산된 지 일주일여가 지났다. 헌재 결정에 대한 총평부터 들어보자.

이재화(민변 사법위원장)

: "헌재 결정문의 핵심 키워드는 '숨은 목적', '퍼즐 맞추기', '주도세력' 세 가지다. '숨은 목적'은 대중정당에 숨겨 놓은 목적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인데, 이 주장대로라면 모든 정당이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목적은 다 허구고, 사기 집단이 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200만 명의 국민들을 사기집단에 속은 우매한 국민으로 만들었다.

'퍼즐 맞추기'는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퍼즐을 찾는 것과 같이 판결했다는 것이다. 퍼즐은 전체 그림을 정해 놓지 않으면 맞출 수 없는데, 북한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결론을 그려놓고 끼워 맞췄다. '주도 세력'은 법률가들이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예전에 있었던 국가보안법 사건을 토대로 지금의 현실을 판단했다. 한번 물든 사람은 세상이 바뀌어도 절대 안 바뀐다는 논리인데, 독심술이다. 결국 반헌법적 사고로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 "이름만 헌법재판소지, 사실은 국가보안법 재판소이다. '숨은 목적'이라는 말을 꺼내든 것은 헌재가 스스로 국가보안법 재판소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이명박 대통령도 '배후가 누구냐'고 그랬지 않나? 이것이 지배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 사회에 합리적 보수가 없다. 헌재 재판관들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인기투표를 했다면 9:0도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한 정당의 시민권에 관한 문제라면 거꾸로 0:9가 나왔어야 한다."

이태호(참여연대 사무처장)

: "과거사건에 연루된 걸로만 따지면 민족해방민중민주혁명 주장하고 식민지 반자본주의 외쳤던 사람, 북한에 가서 당원서약한 사람들도 지금 여당은 물론 청와대에도 있다. 다 20년 전 이야기다.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긴 하지만 이미 기성정당인데, 이들이 북한 사회주의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헌재가 입증 했나?

또, 정말 북한이 남한사회를 북한식 사회주의로 만드는 대남 전략을 추구하고 있을까? 아니면 양체제가 공존할 수 있는 통일방안을 통해 자기 체제의 생존을 추구하고 있을까? 그동안 (북한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탈냉전 이후에 북한이 남한의 혁명을 추구하기보다 자기 생존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헌재가 무엇을 근거로 실질적 위협을 말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건 예전에 미국이 이라크 후세인이 대량살상 무기가 있다고 단정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보다 더 근거가 박약한 것 아닌가?"

▲ 이재화 민변 사법위원장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후보 30번이었던 이재화 변호사는 그동안 진보정당에 단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소식을 접하고 직접 변호를 자청했다. 그는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1차 바리게이트가 무너진 것"으로 평가했다.

ⓒ 손우정

이재화: "그런 점이 퍼즐 맞추기라는 것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집권전략을 논의할 때, 1980년대 있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정리하고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자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을 주장했는데, 헌재에서는 그 사람의 주장을 '주도세력'의 생각이고 '숨은 목적'인 것처럼 인용했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은 그냥 평당원이었고, 토론회도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었다. 당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된 적도 물론 없다.

이후에 그 사람이 당에 들어와 활동하면서 한국사회는 식민지 반자본주의가 아니라 종속적 신자유주의체제라고 입장을 바꿨다. 이 사람이 (정당해산)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 바뀐 입장을 증언했는데, 헌재 재판관이 예전에 운동권이었다가 전향한 정부측 증인에게 '이 사람이 생각을 바꿨다고 하는데, 맞나?', '주체사상에 빠진 사람도 입장을 바꿀 수 있나?'라고 묻고 있었다. 아니, 자기가 생각이 바뀌었다는데, 이걸 왜 정부측 증인에게 묻나?

통합진보당 대리인이었던 내가 (정부측 증인인) 김영환씨에게 '당신은 지하당 활동하면서도 생각이 바뀌어서 전향했다고 하는데, 왜 합법정당 활동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나? (증인을) 만나서 물어보기라도 했나?'고 하니까 '직접 만나 보지는 않았는데, 상가집에서 만난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안 바뀐 것 같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독심술 재판이었다."

"헌재 재판관 8명, 역사에 이름 남기고 세계에 알려야"

-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엄격한 사법적 판단이었다기보다 정치적 판단이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의 존재의미를 묻는 질문까지 나오고 있다.

한홍구

: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은 헌재가 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결정이다.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진 이유는 군사독재 시절에 헌법이 유린당하고, 수많은 악법으로 사람들을 처벌했던 상황을 막기 위해 위헌법률 심판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정당해산 관련해서는 1958년 진보당을 정부의 행정처분인 등록취소로 없애버린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헌법에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보다 더 특별히 보호하라는 의미에서 정당을 헌법기관으로 격상시키고 보호 장치로 들여온 것이다. 결국 보호책임을 진 사람이 (보호해야할 대상을) 교살한 것이다."

이태호

: "헌법 재판소가 이 결정을 통해 지키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진보당 내부의 일부 구성원이 머릿속으로 혁명을 꿈꾸건, 북한 사회주의를 옹호하건 간에 지난 10여 년간 선거에서 이기면 국고보조금을 받고 국회에서 국민을 상대로 정책경쟁을 하고 그 결과로 다음 선거에 또 나가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과정 속에서 체제 내화했다.

이처럼 정당이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급진적인 정당도) 체제내화 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1980년대 이후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정치세력들을 성공적으로 체제내화 해왔고 보수 일변도 정치에 대한 민주적 다양성도 확보해온 셈이다. 헌재가 이걸 없애면, 다시 지하로 가라는 것인가?"

이재화: "경희대 정태호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링 안으로 들어와야 덜 위험하지 링 밖으로 ?아내면 혁명세력이 된다고. 독일은 공산당 해산 뒤에 (공산당이) 다시 부활했는데, 해산 청구조차 안 했다. 1956년 공산당 해산을 반성하는 의미다. 당시에는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성숙한 국민이 자체판단하면 되고, 위법한 행위는 처벌할 수 있는 형법이 있다. (부활한 공산당을 해산 안한) 독일이 망했다는 소리 들어봤나? 정당해산 제도가 없는 미국과 일본의 민주주의가 망했다는 이야기 들어 봤나? (이념이 다르다고) 정당을 해산하면 일시적으로는 얻는 게 있을지는 몰라도 너무 소중한 것을 잃는다. 사상적 스펙트럼이 그만큼 줄어든다. 운동장 반쪽만 사용하라는 이야기다."

한홍구

: "이번 해산 결정은 두 가지가 중요한데, 첫째는 한국사회의 의견분포와 다르게 8:1이 나왔다는 것이다. 둘째는 '시점'이다. 정당해산 문제가 촉발된 게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이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인데 서울고등법원에서 내란음모는 무죄가 나왔고 RO도 실체가 없다고 판결했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에서 검찰측이 법률적으로 완패한 것이다. 이게 1월 즈음 대법원 판결이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기다리지 않고 강박적으로 판결했다. 대법원에서도 내란음모가 아니라고 판결하면 (정당해산에) 부담되니까 대법 판결 전에 서둘러서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왜 하필이면 그날이 19일이냐? 이건 정말 치사한 거다. 진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재판관들이)차기 헌법재판소 소장 자리 바라면서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정상적인 운영을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다."

이태호

: "참여연대가 해산을 결정한 날 논평을 냈는데, 회원 한명이 논평이 잘못 나갔다고 항의했다. 왜 역사에 남을 반헌법적 판결을 한 헌법재판소 판관 8명의 이름을 열거해 놓지 않았냐는 거다. 8명의 이름을 국내에, 세계에 알려야 한다. 한국 헌재가 어떤 것을 실제적 위협으로 판단해서 냉전 해체 후 그나마 발전해 온 민주적 다양성, 그나마 북한보다 조금 더 나은 다양성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알려야 한다."

"일본도 이렇게 한걸음씩 가다 전쟁까지 갔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결정이 "정당에 대한 보호책임을 진 헌법재판소가 보호해야할 대상인 정당을 교살한 것"으로 평가했다.

ⓒ 손우정

한홍구: "종편방송에서 신은미씨 종북 논란을 보도하면서 각광증 환자(관심을 받기 위해 황당한 짓을 하는 사람-기자 말)라고 하더라. 오히려 지금 헌재가 딱 그거다. 헌재가 대법원에 느끼는 열등감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하려다가 17대 국회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됐다. 선출된 권력이 민주진영으로 넘어가니까 보수진영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만 남았는데, 누가 우위냐를 가지고 헌재와 대법원이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헌재와 대법원이 국가보안법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경쟁적으로 보수적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경쟁에서 헌재가 앞서간 게 <경국대전>에 관습헌법까지 동원한 행정수도 위헌 판결이다. 이번에 헌재는 민주화운동의 산물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적 탄압기구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했다."

이태호

: "'실질적 위협'으로 열거한 것들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내란사건, 비례경선 부정, 중앙위원 폭력, 관악구 부정사건이 실질적 위협이라는 건데, 내란음모죄는 고등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판결났다. 헌재는 어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위협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비례경선 부정이 실질적 위협이면 과거 한나라당의 돈봉투 사건, 차떼기 사건은 뭔가?

국회에서도 폭력사건이 비일비재한데, 중앙위 폭력을 우리 체제에 대한 실질적 위협으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당이 어디 있나? 지역구 여론조작 사건도 그렇다. 국민경선제 도입 이후 어느 정당에서나 지역경선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정치 문제다. 이게 정말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실질적 해악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한홍구

: "정부가 이런 무리수를 두는데 보수진영 내에서 아무도 그러면 안 된다고 비판의 소리가 없었다. 합리적인 보수, 민주주의의 룰을 지키는 보수가 없는 게 정말 문제다. 공안세력이 상황을 극단으로 끌고 가고 있다. 내가 그래도 내란 전문가인데, 김기춘씨가 처음 비서실장 됐을 때 대대적인 민중탄압이 있을 거라고 예언은 했지만, 원내 제3당을 해산하는 것은 상상력 바깥에 있었다.

간첩사건 정도 생각했는데, 이석기 사건이 터졌다. 내란 사건 터졌을 때도 이렇게 확대될 줄 몰랐다. 박정희 정권 때도 내란 사건이 많았고 보도용 간첩 사건도 많았다. 언론 보도용으로 터뜨리고 흐지부지 되는 거다. 법원에서 무죄가 나오니까 기소단계에서 빼거나 소요죄 정도만 넣었다. 이석기 내란 사건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내란죄로 기소까지 하고 정당까지 해산했다.

처음부터 이들이 정말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서로 격려하면서 이끌어 주다 보니까 정당해산까지 갔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정말 무서운 거다. 군국일본이 이렇게 한발씩 가다가 전쟁까지 갔다. 정당 해산까지 1년이 걸렸는데 한국 보수세력 내부에서 '이렇게 가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당을 해산까지 시키는 것은 안 되지 않냐?'는 목소리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똥물 튄다'고 외면했던 시민사회도 반성할 부분 있다"

- 이 문제가 통합진보당 해산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보수단체가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이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압수수색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 것으로 보나?

이재화

: "원칙적으로는 위헌 정당 해산 결정은 장래효만 있고 소급효는 없다. 그 전 활동은 문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활동은 문제 삼을 수 없고 합법적인 활동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건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1961년 독일 형법규정에 대해서 위헌결정을 하면서 선언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헌법학계의 통설이고, 이건 정부측 입장에 선 허영, 장영수, 정종섭(현 안정행정부 장관)도 같은 입장이다. 그런데 지금 검찰은 (통합진보당 당원들을) 이적단체로 처벌하겠다는 둥,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둥 야단법석이다. 국제적인 망신이다."

한홍구

: "정당해산의 발단이 된 사건을 역사적으로 짚어볼 필요도 있다. 이석기 의원과 일부 당원들이 2013년 5월 12일에 마리스타 수도원에 모여서 했다는 이야기는 일반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게 내란모의였는지의 여부와 별개로 일반 국민들과 동떨어진 이야기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눴을까? 역사적인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한국전쟁 이전에 남로당이 있었다. 남로당이 해산은 안 당했는데, 남로당 당원들과 외곽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을 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전쟁 나니까 그 사람들을 끌고 가서 다 죽였다.

수도원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역사적 기억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만 해도 인터넷에 찾아보면, '전쟁나면 가장 먼저 쏴 죽일 놈' 중 꽤 높은 순위에 있다.(웃음) 나는 웃고 넘어갈 수 있는데 실제 지역에서 이름 없이 활동하는 사람, 사회적 연결망이나 배경이 없어서 기댈 곳 없는 사람, 국정원 같은 곳에서 사찰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7월에 통합진보당 사람들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왜 그때 일반적인 정서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나왔었는지, 이해는 된다'고 했더니 여러 명이 울기 시작했다.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내란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1년이 지났는데 '이해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하더라. 그동안 민주화운동 내에서도 '미친놈들', '너네 때문에 똥물 튄다', '북으로 가라' 이런 이야기만 들었고 좋게 이야기해 준 게 '정신병자들, 그래도 정말 내란 일으키려 했던 건 아니니 억울하긴 할 거야' 정도였는데, '이해한다'는 말을 처음 들으니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거다.

지금은 반공 수준도 아니고 광기에 둘러싸인 분단사회인데, 권력과 매스컴이 강하게 밀어 붙이니까 점점 더 고립됐다. 그 사람들도 우리 이웃이고 형제인데, 1심 때만 해도 시민단체나 지식인 사회가 안 움직였다. 나도 그랬다. 물론 통합진보당에서 도와달라고 이야기도 안 했고, 나도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2심 때야 증인으로 나와 달라고 해서 갔는데,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시민사회가 보인 모습에서 반성해야할 부분이 크다."

이태호

: "우리도 미온적인 반응에 책임이 있는 단체 중 하나다.(웃음) 찾아가서 직접 돕지는 못했지만 사건에 대한 발언은 계속 했다. 시민사회가 주춤했던 것은 사실인데, 이 사건에 집중하지 못할 만한 사정이 있기는 했다. 내란 사건이 터지기 전에 국정원만이 아니라 군과 보훈처, 교육부까지 대선에 개입한 상황이 드러나고 있었다. 국가기구 전체가 특정 이념과 정파를 위해 활동한 것이다. 그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다. 올해에는 세월호 사건도 터졌다. 이 사건을 다루는 것과 진보당에 대한 정부의 과잉대응에 반대하는 것을 연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이재화

: "나는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0번을 받은 사람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에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정당해산청구를 했다는 뉴스를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무너지면 그동안 쌓아놨던 것들이 다 무너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통합진보당 관계자에게 전화해서 정당해산 사건 변호를 맡겠다고 자청했다.

심리를 진행하면서 솔직히 진보언론과 시민단체가 너무 야속했다. 통합진보당만의 문제가 아닌데, 통합진보당만의 문제인 것처럼 다뤘다. 정부와 헌재가 의도한 것도 그거다. 결정문을 잘 읽어보면 헌재가 간접적인 메시지를 줬다. '당원이거나 당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념 공세하지 말라'고. 재판관들 사이에서 (파장을) 어떻게 감당할거냐는 의견이 나오니까 넣은 건데, 뒤집어 보면 다른 당은 건드리지 말되, 소위 '주도세력'인 전국연합 출신들은 문제 삼으라고 한 거다."

▲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한국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우월감이 과도한 공격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공격적 우월감은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 손우정

이태호: "그렇게 거론되는 대상들이 다 20년 전에 만들어 진 조직의 인맥들이다. 내란 사건의 경우에도 경기동부연합이 모였다는데, 들여다보면 애 엄마도 있고, 애들도 있었다. 부산이나 전남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인맥들이 지속적으로 연계를 맺고 활동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인맥일 뿐인데도 무슨 전위조직 구성원인양 리스트가 다 만들어져 있다.

이 리스트를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사회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 그게 목적이다. 이 리스트가 보도연맹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나 반헌법적인 조치들을 제도적, 문화적으로 가하게 되는 중요한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다.

여기에는 또 무서운 논리가 숨어 있다. 우리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해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일반 시민 수만 명을 포함하는 대대적 압수수색과 공안탄압을 할 만큼 북이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여서인가? 아니면, 이미 체제경쟁에서 북한을 앞지를 우리 사회가 우월감에 휩싸여서 '찌질한 북한'을 추종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함부로 혐오하고 공격하는 것인가? 나는 공격적 우월감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사회에서도 우월감이나 힘이 너무 강할 때는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된다. 미국이 자신의 패권에 대해 우월감에 젖어 테러와의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 결과 세상이 나아졌나? 이라크와 아프간에 더 극단적인 무장세력을 만들었고 미국 자신도 경제위기를 겪지 않았나? 북한도 과거에 남한 체제에 대한 우월감에 젖어 있을 때 무장노선에 의존하는 실수를 했다. 남한 우익세력의 우월감과 공격성은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그리고 격변하는 동아시아 조건에서 상당히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민주주의 후퇴, 함께 뭉쳐서 2차 바리게이트 쳐야"

- 오랜 시간 성토에 가까운 평가를 해 주셨다. 문제는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냐? 방법이 있냐?'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재화

: "유신이 한국식 민주주의를 표방한 것처럼, 헌재는 민주주의를 반공주의로 이해하고 있다. 정당해산 결정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1차 바리게이트는 허물어졌다. 그럼 두 번째 바리게이트를 쳐야 하는데, 이걸 못하게 계속 야권을 분리시키려고 할 것이다.

종북몰이라는 것이 야권이 힘을 합치지 못하게 서로 다른 새장 안에 가두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나 다른 진보정당은 모두 저들이 쳐놓은 종북새장에 갇혀서 꼼짝하지 못했다. 정당해산 청구가 제기됐을 때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이 적극적으로 반대했어야 하는데 늦었다. 이후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공세가 있을 때 새정치민주연합이 나서줘야 한다.

통합진보당이 고립을 자초한 측면도 물론 있지만, 민주세력과 다른 진보세력이 '우리는 통합진보당과 달라'라고 하면서 너무 외면했다. 지금 상황은 1987년 헌법 이전 상황으로 후퇴한 것이다. 또 무너지면 유신시대까지 후퇴하고, 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각 민주세력이 자기 자리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하고, 그 토대에서 함께 민주수호를 위해 전진해야 한다. 민변은 어느 정도 결의가 모아졌다."

한홍구

: "박정희가 내란 사건을 만들면서 국회의원이 여럿 걸려들었을 때도 국회에서는 석방결의안을 의결했다. 그때 박정희가 만든 공화당 의원들도 석방결의안에 찬성표를 많이 던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동참해서 너무 놀랐다. 둘의 강령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정의당도 진보적 민주주의에 합의했던 사람들이 만든 당 아닌가? 또, 새정치민주연합은 헌재 판결에 대한 일성으로 '판결을 존중한다'고 했는데, 뭘 존중한다는 건가? 민주주의가 살해당한 것인데, 그걸 존중한다고?

지금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은 민중이 있는데, 이것을 담을 그릇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진보정당은 박살이 났다. 진보정당이 놀랍게도 (통합진보당 말고도) 세 개나 더 있더라. 변화를 바라는 민심은 폭포수와 같은데 간장종지 들고 뭘 하겠나? 일반 대중 입장에서는 그동안 (진보개혁세력에게) 밀어줄 수 있는 최대치를 밀어줬는데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 있다.

지식인 주도의 운동이 장점도 많았지만 문제도 많았다. 이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판을 짤 때다. '꿈'이라는 그동안의 성과는 계승하되, 조직문화와 주체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이태호

: "통합진보당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논쟁할 것도 있지만 헌재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논쟁이나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이미 한국사회는 사회적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하다. 국민 대다수의 사회경제적 처지가 과거에 비해 악화되고 있다. 자살율은 세계 최고, 출산율은 세계최저다.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 사회의 재생산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사회가 직면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위협이다. 일부에 북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건 없건 간에, 진보정당이 주장해온 사회경제적 정책은 우리사회가 직면한 이런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대안이었고, 효과 또한 '구체적'으로 입증되어 왔다.

이런 정당을 몇몇 법조인에 의해 해산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대한민국이 그나마 북한보다 낫다고 한다면 민주화가 있었고 민주적 다양성이 있었다는 점인데 이런 게 무너지고 있다. 진보정당만이 아니다. 성적 소수자,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공격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정략적 이유로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을 풀어놓았고 이 괴물이 우리사회를 극단적인 갈등으로 몰고 가는 상황이다. 같이 싸워야 한다."

덧붙이는 글 |

* 이 집담회는 민주노총, 서영건, 박소혜, 박정환, 강종구, 정용일, 이상범, 김은희, 박래훈, 강시원, 안영선, 오은혜, 정규식, 김보연, 윤지선, 이승철, 홍기웅, 홍명근, 장모씨님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속기: 정경윤 * 장소후원: 참여연대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자발적 유료 구독 [ 10만인클럽]

모바일로 즐기는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