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친일'로 당 대표 물러났던 신기남의 심경 "김무성은.."

2015. 8. 1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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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의겸의 우충좌돌 (25)

2004년 과거사 청산작업 한창 때 불거져…당 피해 막고 대신 사죄하려 사퇴

아버지에 고문당한 걸로 보도된 두 분 찾아뵀는데 "그런 사실 없다"고 하셔

국회서 친일잔재청산 관련 입법 앞장…아버지도 하늘에서 박수 보내셨을 것

오랜만에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같은 당 홍영표 의원은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사과하는 글을 올린 반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부친을 미화한 게 논란이 되고 있는 13일이었다.

신기남 의원은 11년 전인 2004년 꼭 이맘 때 부친 신상묵이 친일 논란에 휩싸이자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했다. 언론보도가 나온 지 사흘 만에 집권여당의 당 대표직을 던진 것이다. 그 전격성과 신속성에 당시 열린우리당 출입기자였던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뒤로 아버지 문제는 신 의원의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은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전화번호를 누른 것이다. 특히 신기남 의원은 김무성 대표와 비슷한 점이 많다. 동갑내기로 '친구의 친구'여서 1980년대부터 아는 사이였다. 1996년 15대 때 함께 국회에 등원했고, 집권여당 대표를 할 때 부친이 친일 논란에 올랐다. 물론 그 뒤 보인 모습은 판이하다. 전화 통화가 길어지자, 대화는 마포의 한 중국집으로 이어졌다.

-일제 시대 때 부친이 일본 헌병으로서 고문을 한 게 문제가 됐다.

 "그렇다. <동아일보>가 그렇게 보도했다. 그래서 당 의장을 사퇴한 직후 아버지로부터 고문을 당했다는 분들을 찾아뵀다. 김 선생님, 차 선생님 두 분이었는데, 두 분 다 아버지를 알긴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고문 같은 걸 받은 적은 없다고 하셨다. 왜 그런 보도가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오히려 그때 아버지가 수감돼 있는 두 분에게 빵을 사주는 등 따뜻하게 대해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그때 언론보도를 반박하지 그랬는가.

 "이미 당 의장직을 던진 상태라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혹시 몰라 두 분의 말씀을 녹취하고 공증까지 받아뒀다. 지금도 사무실 어느 구석에 있으니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만나보니 두 분 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앞장 서 보훈처에 신청서를 내어 김 선생님은 이듬해 독립유공자로 선정이 됐다. 차 선생님은 보류가 돼 내가 직접 변호인으로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며 노력을 기울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홍영표 의원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

 "나도 글을 찾아서 읽어봤다. 참 통절하게 반성을 했더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남들은 후손들이 사죄하라고 쉽게 말을 하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자기 아버지를 부정하는 게 아닌가.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가친척들이 다 걸린 문제다.

 우리 아버지도 일제시대 한반도 청년으로서의 한계를 벗지 못하고 일군에 들어가 복무했다. 그래도 나름의 지혜와 용기로 동포를 위해 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아버지 생전에 하지 못한 역사와 민족 앞에서의 사죄와 화해는 돌아가신 다음에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자식인 내가 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라는 막중한 자리였는데 언론보도 사흘 만에 사퇴했다.

 "여당 대표의 가족사는 휘발성이 강한 문제다. 뭔가 확실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게다가 동아, 조선 등이 내가 그만둘 때까지 결코 그만두지 않을 태세였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과거사 청산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터라 당이 입게 될 피해가 심각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최소한의 표시가 당 의장 사퇴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말렸던 것으로 아는데.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와서 사퇴를 말렸다. '나도 선거 때 장인 때문에 색깔론에 시달리지 않았나. 그래도 끝내 버텨냈다. 당신도 버텨라. 당신이 무너지면 당도 흔들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소신대로 하겠으니 양해해달라고,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후회는 없었나.

 "나중에 천천히 복기를 해보니 그때 내가 당 의장을 사퇴한 것이 당의 안정성을 해치는 단초가 되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이 들어 괴로웠다. 실제로 천정배 원내대표가 4대 개혁을 추진하면서 많이 외로워했다. 그러나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이 판단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 의장 되기 전에 친일잔재 청산에 앞장섰다.

 "2001년 4월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친일잔재청산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친일 논란에 휘말려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게 기폭제가 돼 2005년 '친일파 재산환수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친일잔재 청산에 앞장서는 나를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과연 어떤 심정일까 생각해봤다. 애비 속도 모른다고 답답해 하셨을까, 아니면 당신이 못해낸 일을 하고 있다며 박수를 보내셨을까. 나는 후자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버지도 한평생 가슴 한 복판에 죄의식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진정으로 사죄하고 화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셨을 거다. 과거사 청산에 나서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셨을 것이다."

-부친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웠다는데.

 "두 분이 대구사범 동창으로 각별한 사이셨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 때 아버지가 청첩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정도다. 아버지가 춘천에서 강원도 경찰국장으로 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춘천에서 사단장 생활을 할 때라 두 분이 자주 어울리셨다고 한다. 두 분 모두 밤늦도록 술 드시기를 좋아해 부인들 고충이 컸다고 한다."

-그럼 박정희 정권 때 출세를 할 수 있을 터인데.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인데,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 뒤 자신의 차로 직속 부관을 우리 집에 보내 쪽지를 전달했다. "상묵아! 혁명은 성공했다. 내게 와서 도와다오. 함께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인에게 반역은 없다. 당장 민정이양하고 물러나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매정하게 거절당하자 실망과 분노가 컸으리라고 추측한다. 그 뒤로 두 분의 인연이 끊겼다. 그 덕에 아버지는 84년 돌아가실 때까지 변변한 직업이 없었다. 어머니는 경성사범을 졸업한 엘리트인데도 생계 문제로 다방도 하고 안 해 본 게 없었다. 전셋집을 전전했고 대학 때 등록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서너개씩 했다. 그 점이 나하고 김무성 대표하고의 결정적 차이지. 하하."

이야기 도중 중국집 주인이 들어와 벽에 걸어 놓게 사인을 하나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신 의원은 "저를 아세요. 전 이미 잊혀진 정치인인데.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내민 종이에 글귀를 적어주었다. 하긴 53살의 젊은 나이에 여당 당대표까지 올랐다가 부친의 친일 행적 때문에 조명에서 비켜난 지 10년이 넘었다. 아버지를 원망도 할 법하건만 그는 오히려 "오히려 못난 아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아버지를 욕되게 한 건 아닌지 죄송하다"고 한다. 신 의원은 요즘 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버지 이야기가 무르익어갈수록 술병도 자꾸만 비어갔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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